뉴욕에 사는 30대 독신 변호사 미란다는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검사 결과, 오른쪽 난소의 배란이 멈춰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불쑥 의사에게 묻습니다.
“난소가 파업을 일으킨 건가요?!”
그날 밤 미란다는 세 명의 절친들 앞에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말합니다.
“원인은 하나야. 오른쪽 난소가,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일 따윈 없다며 스스로 포기한 거야. 내가 승산도 없는 사건을 던져버리는 것과 같은 셈이지.”
“하지만 왼쪽은 나오잖아?”라고 묻는 캐리에게 미란다는 한숨을 쉬면서 말합니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낙제야. 참 아이러니하지. 하버드까지 나온 여자의 난소가 말이야….”
그때까지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었고, 피임약을 먹으며 조심하던 미란다였지만 결국 그와 헤어졌습니다. 더욱이 난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자 이번에는 난소자극호르몬(배란을 촉진하는 호르몬)을 먹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직장동료 남성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그녀는 이 화제를 꺼냈습니다.
“최근에 지금까지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났어.”
“무슨 일인데?”
“최근 알게 된 건데, 난소가 파업을 일으켜 배란이 잘 안 돼. …나머지 난소도 망가지면 아이를 못 낳게 돼. 그래서 일단 호르몬제를 먹고 있지만 난자 냉동을 고민 중이야.”
그 말을 들은 상대는 놀랍니다.
“난자를 냉동한다고?”
“응. 정자은행이 아닌 난자은행인 셈이지. 그렇게 하면 압박감이 사라질 것 같아. 언제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시간제한도 없어지고.”
상대는 말도 안 된다는 어조로 “하지만 그건 문제가 많아.”
“어떤 문제?”
“어떤 문제라니…생식의료라는 게 말이 돼? 아이를 낳고 싶다고 해서 50세가 넘은 여성이 아기를 낳아도 된다고 생각해?”
상대는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를 낳아야 하는 운명이 아닌 여성들도 있잖아. 세상은 그렇게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 아니겠어? 생식의료라는 건 과학의 남용이라고 생각해. 명품 정자를 만들어내고 인공 자궁을 만들고. 차라리 온 세상의 남자를 없애버리는 게 어때?”
어이없는 표정으로 상대의 말을 듣고 있던 미란다는 마지막 말을 듣자 감정이 폭발해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내리쳤습니다.
“이봐! 머리에 이모작하고 있는 주제에 과학이 뭐가 어째?(상대 남성은 최근 머리에 모발이식을 시작) 주제넘게!”
그 후 미란다는 호르몬제 복용을 멈추었습니다. 그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가 아닙니다. 아직은 33세에 지금 한쪽 난소는 정상이라 단념하기에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냉동고를 열면서 생각합니다.
‘아마 언젠가는 난자를 냉동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난자의 냉동보존은 일단 연기되었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 시즌2, 에피소드 11 <연애의 진화형 Evolution>
이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읽고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나요? 미란다에게 열띠게 과학을 강의한 남성처럼 ‘난자 냉동이라니! 미친 짓이야’라며 어이없어하는 쪽입니까? 또는 ‘과학자는 정말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야.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생식의료로 여성의 선택의 자유가 확대된다면 세상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의문을 품는 쪽입니까?
분명 새로운 과학기술이나 의료기술이 등장하게 되면 반드시 그 기술과 인간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됩니다.
반대로 미란다에게 공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물학적 시계’를 의식한 그녀의 불안을 잘 안다. 여성은 커리어를 쌓을 시기와 출산 적령기가 겹쳐 있어, 일이냐 출산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커리어 여성들은 항상 괴로워한다”고.
그리고 “이러한 고뇌를 해결하고 그녀들이 ‘일과 출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방법이 있다면 난자 냉동을 이용해도 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인간이 생식기술에 접근할 권리를 인간(이 경우는 여성)의 ‘행복추구권’이라는 관점에서 인정하려는 입장입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자신의 재능을 살려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쌓으면서도 연애만큼은 학습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랑에 상처받고 때론 크게 좌절하면서도 용감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들이 때로 사랑에 애태우며 결혼을 꿈꾸는 것은 남몰래 자신의 생물학적 시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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