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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갖고 싶어>

04. 제공된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비밀이란?

by BOOKCAST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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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 치료 현장에서는 의료진과 커플 모두가, 임신하여 아이를 탄생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그 아이가 성장하여 10대가 되었을 때 DI를 이용한 사실을 전해야 할지, 전한다면 어떻게 전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기를 팔에 안는 순간 치료에 대한 모든 것은 잊어버리세요.”라고 말하는 의사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커플과 그 아이에게 있어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게이오대학에서 DI로 태어난 것을 실명으로 공개한 남성은 DI의 가장 큰 문제는 태어난 아이가 커다란 정신적 부담을 강요당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전상의 루트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부모가 아이에게 이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마이니치신문 <논점> 2013.3.17)
 
자신의 뿌리, 유전자의 반을 모르고 있는 것 즉, 도너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DI라는 방법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불안과 결핍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어둠 속에 내던져진 것과 같은 느낌이고, 어쨌든 불안합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유전상의 아버지를 찾게 된다면 나에게 뚫려 있는 반쪽 구멍이 메워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도 우선 아이에게 AID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정확히 전달해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유전상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정자제공 219)
 
또 하나의 문제는 부모가 아이에게 이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에게 있어 부모와의 신뢰 관계와 자기 정체성의 붕괴, 나아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DI로 태어난 여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태어난 당사자에게 무엇이 문제냐 하면, 부모가 아이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에요. 태생이라는 것은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토대가 되는 것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경험을 축적하여 자기 자신이 완성되어 가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 토대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느낌이에요.”
부모 자신도 이 기술을 선택한 것에 대해 긍정하지 못하니까 숨기는 것이죠. 부모의 숨기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질수록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또 자신이 DI로 태어난 것을 알게 된 사람 중에는 부모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라고 집안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성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계속 있었어요. 아이는 자기의 가정밖에 모르지만 무언가 굉장히 무거운 느낌.”
그리고 DI로 태어난 사실을 알았을 때 역시 그렇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피가 이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 역시 그랬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무엇 하나 닮은 데가 없다는 건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건 이해가 되었는데, 나머지는 전부 거짓말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앞에 있는 현실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한 일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어요. 37년간이나 속은 것에 대한 분노, 그와 동시에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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