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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떠난 뒤 맑음>

07. 고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by BOOKCAST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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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차가워져 있던 터라 목욕을 하기로 한 건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욕조 물에 몸을 담근 채 향긋한 비누로 팔다리를 씻으면서 레이나는 그리 생각했다. 욕실은 넓고 청결하고 쾌적하다. 다만 방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기도 했다. 산책 나간 사촌 언니가 얼른 돌아와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엄청 고프지만, 좀 있다 레스토랑에 간다(리비 일행과 약속한 가게 이름은 파이브 버거스니까 아마도 햄버거를 먹게 되겠지)는 것을 알기에 배가 고픈 것도 이제는 즐거웠다. 게다가 고래! 고래를 볼 수 있다니 굉장한 일이다. 크고, 힘세고, 귀여운 얼굴에 정직하다는 것이 레이나가 생각하는 고래다. 정직에 관해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레이나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적어도 고래는 거짓말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레이나는 고래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먹이를 물과 함께 삼킨다는 것이 그중 하나인데 씹지 않고 물째 삼켜 버리기 때문에 피노키오도 상처 하나 없이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거다.

 


목욕을 마치고 몸단장을 하고 나서 TV를 보고 있노라니 이츠카짱이 산책에서 돌아왔다.
, 그쳤어.”
라고 말하고,
요 바로 앞의 공원, 엄청 넓어. 내일 날씨 괜찮으면 걸어보자.”
라고 말하고,
슈퍼마켓이 있기에 물 사 왔어. 레이나가 좋아하는 리세스 초콜릿도.”
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비가 그친 탓일 수도 있고, 걸으면서 기분 전환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이 놓여서 레이나는 욕조 안에서 했던 생각을 입 밖에 내 본다.
저기, 있잖아, 이츠카짱. 고래가 병이 나면 수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치료할 것 같아? 배로 바다 한가운데까지 왕진하러 갈까? 아니면 포획해서 병원에 데려오려나?”
바다에서 치료하기는 어렵지 않아? 하지만 데려온다 해도 병원 안에 채 들여놓지 못할지도.”
이츠카짱은 대답이 되지 않는 대답을 하고 나서 물었다.
나갈 준비 다 됐어?”
. 다 됐어. 그런데, 그럼 어떻게 할까, 수의사 선생님은? 고래가 병이 나거나 다치면.”
몰라.”
이츠카짱은 쌀쌀맞게 말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는데, 다시 나오더니 물었다.
레이나, 수의사는 관두기로 한 거 아니었어?”
관뒀어. 관두긴 했는데. 조금 신경이 쓰여서.”
어렸을 때 레이나는 수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동물을 좋아하다 보니 다치거나 아픈 동물을 낫게 해 주면 기쁠 것 같아서였는데 그게 여의치 않은 경우도 있을 거란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치료하지 못해서 그 동물이 죽어 버리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 그래서 지금은 목장주나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가자.”
이츠카짱이 말했다.
배도 고프고, 그 사람들이랑 저녁 먹는 거, 후딱 해치우고 오자.”
라고.
가게는 호텔에서부터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있고, 도중에 길을 헤매지 않도록 이츠카짱이 아까 산책하는 김에 미리 알아봐 두었다.
밤이네!”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또다시 소리 내어 말한다. 이미 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이츠카짱도 당연히 알고 있으련만. 비는 확실히 그쳤지만 공기는 아직 서늘하니 습하다. 공원을 따라 걷다 보니 젖은 나무 냄새며 흙냄새가 진하게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늘어선 가로등의 동그랗고 하얀빛.
약속 시간인 7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리비 일행은 이미 와 있었고, 더군다나 요리까지 각자 앞에 두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감자튀김을 곁들인 햄버거와 콜라였다.
헤이.”
레이나를 알아차린 마크가 한 손을 들어 소리쳐 불렀다. 가게 안은 떠들썩하니 사람들로 북적이고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이츠카짱, 레이나 쓰러질 것 같아, 배고파서.”
사촌 언니에게 속삭이고서 새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향한다. 4인용 박스석이었지만 리비가 한쪽으로 당겨 앉아 주었기에 그 자리에 둘이 나란히 앉았다.
맞은편이 퍼거스와 마크다. 레이나는 세 사람에게 이츠카짱을, 이츠카짱에게 세 사람을 다시금 소개한다. 소개라고는 해도 이름밖에 알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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