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말에 따르면, 배는 11월까지만 운항하는 듯하다. 여름철에는 거의 확실하게 어떠한 종류의 고래가 보이는데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그 확률이 떨어진단다. 만약 고래를 보지 못하게 되면, 45달러를 주고 산 승선권은 다른 날 다시 배를 탈 수 있는 티켓으로 교환해 주는 모양이었다.
승선에서 하선까지 전체 여정은 4시간이 소요되었다. 객실은 난방이 되고 있었지만, 먼 바다로 나가자 맑은 하늘이 무색하게 갑판 위는 추웠고 롱패딩이 도움이 됐다. 다만 그것을 입은 이츠카는 사촌 여동생에게도 리비 일행에게도 큰 웃음을 사게 되었다. 매점에는 아동용과 성인용 두 종류뿐이었고 아동용은 레이나에게 딱 맞는 사이즈였는데 남녀공용인 성인용은 이츠카에게는 너무 커서 흡사 어린아이가 어른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크가 카메라 렌즈를 겨누자 레이나는 이츠카에게 몸을 기대고 브이자를 그려 보였지만 이츠카는 그냥 서 있었다. 보나 마나 표정이 굳어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늘에도 해수면에도 갈매기들이 아주 많다. 배는 속도를 높이며 나아가고, 차갑고 세찬 바람에 레이나의 머리칼이 나부꼈다. 너무 춥다 보니 승객 대다수는 뷰포인트에 다다를 때까지 객실에 틀어박혀 있기로 한 모양이었다.
……(중략)……
“보이프렌드는 있어?”
그 물음에 이츠카 머릿속에 즉시 ‘노’가 울려 퍼졌다. 보이프렌드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 그런 화제 자체가 이츠카에게는 ‘노’였다. 그래서 이중의 의미를 담아 노, 라고 대답하고,
“필요 없어.”
라고 덧붙였다. 모집 중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마크는 살짝 놀란 얼굴을 했지만,
“필요 없어?”
라고 되물은 후에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거 괜찮네, 필요 없다니. 되게 괜찮은 것 같아.”
“이츠카짱, 봐봐!”
뒤에서 레이나가 목소리를 높이기에 돌아보니, 날치가 소리도 없이 물에 뛰어드는 참이었다.
“봐봐, 또! 저기도!”
레이나는 눈을 빛낸다. 친절한 마크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이츠카는 대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만치에서는 리비와 퍼거스가 몸을 앞뒤로 밀착시키고서 해수면을 보고 있다.
이제 곧 고래를 볼 수 있는 뷰포인트에 다다를 것이란 안내 방송이 나오고, 승객들이 잇따라 갑판으로 올라왔다. 이츠카는 갑자기 긴장한다. 고래를 볼 수 있어서(있을지도 몰라서)가 아니라, 실망한 레이나를 위로해야 하기(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기우였다.
고래는 나타났다. 승객 대다수가 기대하고 있었던 듯싶은 혹등고래는 아니고 긴수염고래로 불리는 종류의 고래였지만 분명히 나타났고, 게다가 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나를 열광시킨 것은 그 고래가 아니라 돌고래였다. 돌고래들은 무리를 이룬 채 행여 배에 부딪히는 것은 아닐까 염려될 만큼 가까이에서 높이 뛰어오르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도 하면서 기분 좋은 듯 지나쳐 갔다.
애교 있는 얼굴과 무심코 만져 보고 싶어질 만큼 매끈매끈하고 차가워 보이는 피부,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체형. 이츠카도 추위를 잊은 채 그만 넋을 잃고 보았지만 레이나가 빠져든 정도에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처음에만 “이츠카짱, 봐봐!”라고 했을 뿐 그 후론 말 한마디 없이 온몸으로 해수면을 보고 있었다. 돌고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레이나.”
이름을 부르며 팔을 붙잡았다. 무서웠던 거다. 레이나가 당장이라도 바다에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아서. 기다란 코트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쓴 레이나의 온몸이 한낮의 햇살에 둘러싸여 있었다.
배가 항구로 돌아올 즈음엔 레이나는 평소의 레이나로 돌아와 있었다. “귀여웠지?”를 열 번쯤 반복하고, “엄마랑 새끼로 보이는 애들도 있었어. 계속 꼭 붙어서 헤엄쳤어.”라느니, “열심히 점프한 애 있었잖아. 어느 때 점프가 하고 싶어지는 걸까.”라느니, 즐거운 듯 재잘댔다. 그래도 조금 전 느꼈던 공포 ― 레이나가 바다로 빨려 들어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 는 이츠카의 가슴에도 손끝에도 또렷이 남아 있다.
리비, 마크, 퍼거스 일행과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오클라호마에 올 일 있거든 꼭 들러 달라는 말에, 도쿄에 올 일 있으면 꼭 들러 달라고 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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