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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03.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by BOOKCAST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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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의 발굴이 모범적인 것은 이곳에서 발굴되어 수습된 유물은 모두 그리스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조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의 베를린박물관이나 영국이나 프랑스의 박물관이 아니라 올림피아의 박물관에서 올림피아의 유물을 볼 수 있다. 192843년과 최근에도 발굴이 계속된 결과 스타디움도 발굴되고, B.C. 457년의 금상아제(金象牙製) 제우스상을 만든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및 사용한 도구 등도 출토되었다. 198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차를 타고 올림피아 역에 도착하니 내리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아들뿐이다.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한다.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하여 조그만 우산을 가지고 다녔기에 우산을 펴고 올림피아 거리를 걸어가서 먼저 마주한 곳이 올림픽 기념관이다. 문을 닫아 놓아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여기가 올림픽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 올림피아역 (가운데) 올림픽기념관 (아래) 올림피아 유적 설명판
 

이 기념관을 뒤로하고 걸어서 올림피아에 도달하니 관광객은 아무도 없고 나와 아들뿐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올림피아에 입장권을 끊고 들어갔다.
 
그리스의 웬만한 유적지에는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노인들이 입장권을 발권하고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라에서 노인들에게 소일거리를 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기 고장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참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피아는 거의 다 파괴되었고 옛날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건물도 몇 개 없이 돌무더기만이 뒹굴고 있다. 단지 이곳이 올림피아라는 설명이 곳곳에 있어 그 설명을 보고 ', 여기가 거기구나!' 하고 구경할 뿐이다. 먼저 보이는 유적은 온천으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며 다음 경기를 위해 관리를 하는 곳이다.
 
올림피아에 있는 알티스 성역에는 장엄한 제우스신전이 세워져 있고, 제우스 신전 뒤에는 성스러운 올리브 나무가 있는데 그 가지로 우승자를 위한 올리브 관을 만들었다. 제우스신전은 B.C. 472년 지었다고 전한다. 이 신전은 그리스에서 큰 규모로 꼽히는 신전 중 하나로 규모는 높이 21.79m, 너비 30.44m, 길이 73.70m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몇 개의 기둥과 기둥이 무너진 흔적만 남아 있다. 건축가는 엘리스 출신의 리본(Libon) 이고 건축 양식은 도리아식이다. 신전 내부에는 유명한 그리스 조각가 페이디아스(Pheidias)가 만든 천지의 최고 통치자 제우스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왕좌에 앉아 있었다. 상아와 금으로 장식된,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으로 칭송받았던 이 신상은 훗날 로마 제국이 수도를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그곳으로 옮겨갔는데, 475년에 일어난 화재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니 안타깝다. 또 정면 프리즈 천장과 기둥 사이에 해당하는 곳에는 멋진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이 조각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당시엔 초대 손님이나 올림픽 선수들을 위한 숙박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건물은 낙소스 섬의 부호였던 레오니다스(Leonidas) B.C. 330년경 설계하고 기증했다고 한다. 성역 남서쪽 가장자리에 있었으며 당시 일대에서 가장 큰 건물로 138개 기둥으로 이루어진 4개의 주랑이 있었으며 건물 가운데에는 연못을 포함한 정원이 있는 엄청난 크기의 건물이었다.

(위) 제우스신전 유적 (가운데)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이 초대되어 축하를 받았던 장소, 프리타니온 (아래) 김나지움 유적지와 선수들이 연습하던 팔라이스트라 연습장
 

제우스신전을 보고 헤라신전 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으로 가면 고대 올림픽 경기장이 나오는데 운동장 앞에는 보물창고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운동경기를 즐겨서, 전쟁을 하다가도 올림픽 기간에는 휴전을 하고 경기를 즐겼다고 한다. 오늘날 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만, 과연 오늘의 올림픽을 고대 올림픽과 같이 순수한 평화의 제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상업주의에 물들어 참가보다 메달을 따는 것에 더 열중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대의 올림픽은 오늘날의 올림픽과는 좀 다른 성격으로 제우스를 기리는 종교적 행사의 일부였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모두 개인 자격이었고 어떤 국가나 집단을 대표하지는 않았다. 선수들은 모두 남자였고 나체로 경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관중은 당연히 남자들뿐이었다. 다른 설로는 미혼의 여자는 구경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오직 한 여자만이 경기를 관람했다는데 그 특권은 엘리스의 공주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기혼 여자 가운데 테메테르 여자 신관만 구경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여자들의 경기는 올림픽과는 다른 날에 헤라 여신을 경배하는 헤라리아라는 경기를 열었다고 한다.
 
이 경기장 스타디온 의 동서 양쪽 표석 중앙부의 거리를 재면, 올림픽 스타디움의 길이는 정확하게 192.27m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단숨에 달릴 수 있는 거리이며, 그가 큰 걸음으로 쟀기 때문에 다른 스타디움보다 길다고 한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도 대리석으로 만든 출발선이 보이는데 관광객들은 여기에서 자기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되어 포즈를 취한다.
 

(위) 올림픽경기장 입구 (아래) 옛 올림픽 경기장
 

드디어 내가 이 올림피아에서 가장보고 싶었던 헤라신전이다. 올림픽이 있을 때마다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방송을 보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채화를 볼 때도 저곳을 언제 가보나 했는데 드디어 왔다. 성화 채화는 헤라신전 앞에서 하는데, 사실은 이 성화 채화는 베를린올림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헤라신전 헤라이온(Heraion)은 재화나 예술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헤라신전은 제우스신전보다 먼저 기원전 600년경 알티스라 불리는 이곳 성소에 세워졌다. 올림피아의 유적들이 모두 제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이나 헤라신전은 그래도 비교적 이 올림피아에서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유적이다. 헤라신전 남쪽에는 오각형으로 담장을 두른 펠롭스의 무덤이 있다.
 
올림피아를 돌아보는 동안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올림피아를 돌아보며 과거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경기장에서 운동경기를 하는 모습. 제우스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 수많은 관중이 모여서 함께 즐기는 모습 등등…….
 
헤라신전을 보고 올림피아를 벗어나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간다. 앞에서 말했듯이 올림피아의 유물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으므로, 그리스를 여행할 때 올림피아를 와 보아야 하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올림피아 맞은편에 있는 크지 않은 박물관이지만 그 소장품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헤라신전
 
(위에서 부터) * 올림피아에서 발굴된 청동 투구 * 제우스신전의 페디먼트 (라피타이안과 켄타우로스의 전쟁에서 평정을 잃지 않고 중심에 서 있는 아폴론) * 레슬링경기가 그려진 도기 *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벽화
 
 
(위에서 부터) * 메가라인 보물창고의 페디먼트와 프리즈 * 켄타우로스에게 추행을 당하는 히포다메이아 (히포다메이아의 얼굴 표정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각자의 상상이다. 어떤 사람은 체념을 누구는 열락을, 누구는 공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 승리의 여신 니케
 

올림피아와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올림피아를 벗어나 시내에 와서 늦게라도 점심을 먹었다. 그리스의 카페는 참 아름답게 꾸며 놓고 있다. 외양이 아름다운 카페에 들어가 양고기 꼬치와 해산물로 점심을 먹으니 후식으로 꿀을 바른 케이크 조각을 주어 맛있게 먹었다.
 
올림피아에서 많은 것을 보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왜 무엇 때문에 이 올림피아를 건립하고 제전을 열었을까? 아마도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아직은 야만의 시대였을 것이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 신에 대한 경배를 통해 질서를 얻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위) 올림피아 카페 전경 (가운데)(아래) 올림피아 유적
 

그리스는 결코 풍요로운 땅은 아니다. 오히려 척박한 땅이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초기 그리스 시절에 어떻게 하든지 전쟁에서 벗어나 보려는 시도가 올림픽제전이 아니었을까? 신에 대한 경배를 제전이라는 형태로 승화시켜 이 제전 기간은 성스러운 휴전이라는 묵시적 협정을 통해 평화를 추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피아의 많은 건물은 모두 올림픽제전을 위해 건립되었다. 하지만 지금 원형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은 없고 폐허의 유적뿐이다. 그래도 그 유적에서 과거 올림픽의 흔적이라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하다.
 
올림피아에서 기차를 타고 피르고스로 돌아와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코린토스로 간다. 또 약 4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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