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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05.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도시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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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테신전
 

도시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를 위한 신전은 이 도시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긴 건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내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유적지다. 12세기의 지진으로 폐허가 된 곳에 지금은 높은 기둥이 14개 늘어서 있지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떠올릴 만한 그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아프로디테 신전은 철저히 파괴되고, 5세기 말에는 교회로 전용되고 관련 유적이나 유물은 전부 말살된다. 기독교가 우상숭배라는 차원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유적들도 파괴한 일이다. 신전의 서쪽에는 나르텍스 고대 기독교 교회에서 본당 입구에 짓는 넓은 홀, 동쪽에는 기독교 성화가 그려진 아프시스(교회당 동쪽 끝에 튀어나온 반원형 부분)가 지어졌고, 신전 정원에는 무덤이 만들어지면서 중요한 유적이 파괴되었다. 현재 이슬람국가의 고대 유적 파괴 문제가 세계적 뉴스로 취급되고 있지만, 기독교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4세기 이후 파괴한 유적은 21세기를 조족지혈로 여길 정도로 엄청났다.
 
스타디움은 약 30,000명을 수용했다고 하는 엄청난 크기의 로마식 경기장으로 현재 터키에 남아 있는 경기장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길이가 약 270m, 폭이 약 60m인 타원형 경기장으로 현대의 경기장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고 이 경기장 관중석 어디에서나 경기장이 잘 보이게 설계되어 있다. 그 당시에 이 조그마한 도시에 이런 거대한 경기장이 왜 필요했는가? 아마도 각 지방에서 참가한 선수들이 아프로디테를 경배하는 경기를 열었을 것이다.

스타디움
 

하드리아누스의 욕장은 2세기경 하드리아누스황제가 이곳을 다녀간 기념으로 건설한 욕장이다.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여 탈의실과 냉탕과 온탕을 갖추었고, 대리석으로 만든 풀장도 있는 당시의 인구로 볼 때 거대하고 화려한 욕장이다.
 
남쪽 아고라는 '티베리우스황제에게 바친다'라는 비문이 있어 티베리우스의 주랑이라고도 불린다. 넓은 공간의 가운데에 있는 저수지는 길이가 약 260m, 폭이 약 25m에 깊이가 1.2m로 하드리아누스 욕장을 위한 물 저수지로 사용되었으며, 홍수를 통제하기 위해 물을 저장하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발굴되지 않아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고 짐작만 할 뿐이다.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시작하여 기원전 27년에 완공하였다는 극장은 약 8,000명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최전성기의 인구는 2만 명 정도라고 전하는데, 원형극장에서는 오락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의식과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할 가치와 상식을 공연하였다고 한다. 오이디푸스 신화와 같은 교훈극이 당시의 연극이었으니 그리스 연극은 시대를 넘어서 인간 모두에게 전해질 교훈이자 상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 남쪽 아고라(티베리우스의 주랑) (아래) 극장의 모습
 

이 극장은 케난 에림 교수가 발굴을 결심했을 때는 마을이 위에 있었는데, 1966년 이 마을을 이주시키고 본격적인 발굴을 하였다. 마을이 있었던 덕분에 극장의 원형이 거의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고, 많은 조각과 비문들을 발견하였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많은 유물이 있어야 하나, 비잔틴시대에 기독교로 변하는 과정에서 아마 거의 대부분이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원형 극장은 다른 지역의 극장과는 달리 등받이를 갖춘 의자 좌석으로 관람하기 편한 앞줄과 한가운데 특별석이 많다.
 
아프로디시아스 입구에서 왼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보이는 약 10m 높이의 거대한 기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각종 신의 모습과 더불어 로마황제 네로의 조각품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3층 구조로 된 건물은 1층은 기둥, 2층과 3층이 조각형태의 입체 벽화로, 전체 길이는 80m 정도다. 세바스테이온(Sebasteion) 이라 불리는 건축물로 로마황제를 신으로 모신 기념 사원, 즉 신전이다.
 
이 곳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곳이었는데 1970년 발굴에서 80여 점의 입체 조각벽화가 발견되어 아프로디시아스박물관에 80여 점 전부를 전시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최고 수준의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대리석 조각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흥미롭게 황제의 조각이 그리스 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 로마는 황제를 인간이기보다는 신으로 받드는 사회로, 곳곳에서 황제의 신전을 만들려고 하였고, 황제신전을 만들려면 로마로부터의 특별한 허락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식민지와 도시는 개별적 차원의 황제신전을 갖고 있지만, 아프로디시아스는 로마황제 모두를 기리는 종합신전을 갖고 있다. 그만큼 아프로디시아스는 특별한 곳이었다.

세바스테이온의 웅장한 모습
 

아프로디시아스박물관의 규모는 다른 유명한 박물관에 비해 아주 작지만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은 어느 곳보다 알차다. 박물관은 하드리아누스의 욕장, 티베리우스의 주랑, 극장, 그리고 세바스테이온(Sebasteion)의 입체조각벽화 등 이곳에서 발굴된 조각상과 부조를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비록 이 조그만 도시 아프로디시아스에서 발굴된 유물만을 모아 놓았지만, 질적인 면에서 다른 박물관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로마시대의 최고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로디시아스박물관의 백미로 꼽히는 세바스테이온에서 1970년 발굴된 80여 점의 입체 조각벽화는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보물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아프로디테 입상은 오랜 세월을 지나 세상에 나와 완전한 모양이 아닌 몸체만 남아 있다. 머리와 팔은 어디에 있는가? 5세기경 기독교도가 파괴한 뒤 아무렇게나 버린 것이다.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위) 80여 점의 벽화조각 (왼가운데) 네로와 아그리피나 (아래) 아우구스투스와 빅토리아
 
(위) 승리의 여신 니케상 (아래) 안키세스와 아프로디테
 

옷을 입은 자세로 서 있는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미의 여신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하다. 의상 앞면 한가운데는 땅의 여신 게(Ge)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os), 태양의 신 헬리오스(Helios)와 달의 여신 세레네(Selene)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또 염소 머리에다 물고기 몸을 한 상상의 동물에 올라선 반라의 여인 조각도 의상의 다리 부분에 새겨져 있다. 아프로디테 입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관능적 차원의 미의 상징과 거리가 멀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포용하는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한층 강하다. 아프로디테가 가진 원래의 미와는 다른 이미지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의 가설이 있겠지만 나는 로마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를 온 우주의 어머니로 형상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이런 것을 알았더라면 박물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 아쉬운 마음만을 가득한 채 아프로디시아스를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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