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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01. 고대 그리스의 심장

by BOOKCAST 202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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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신전에 올라가기 전에 옆으로 잠시 발길을 돌려 간 곳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다. 이 음악당은 아티쿠스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를 추모하며 세운 극장인데 6,000석 규모의 실내 극장이었다 한다. 지금도 객석과 무대를 복원해 야외 원형극장으로 재탄생시켜 아테네 페스티벌 기간에는 각종 연극과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객석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아주 호화로운 극장이라고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디오니소스극장이 보인다. 오늘날 서양연극의 탄생지로 불리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유적으로만 남아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때 지어진 고대 아테네의 극장으로서 드라마 예술의 근원지였으며, 소실되었다가 로마시대에 이르러 예술가이자 집정관인 리코우르고스에 의해 복구된 이후에 여러 번의 확장 공사를 통해 최대 17,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상당한 규모였다.

(위)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아래) 디오니소스극장
 

드디어 그 유명한 ‘파르테논신전’에 다다랐다. 내가 책을 통하여 보던 그 장엄한 모습은 지금 복구공사 중이라 조금 생뚱맞게 보인다. 하지만 그 전체의 규모와 자취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서양문명의 발원지인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이 신전은 B.C. 479년에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아테네인이 수호여신 아테네에게 바친 것으로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를 나타내는 걸작이다. 유네스코를 상징하는 마크로 사용될 만큼 유명한 이 신전은 B.C. 447년에 기공하여 B.C. 438년에 완성하였다. 신전 조각 대부분은 영국의 토마스 엘긴 경이 수집하여 ‘엘긴마블스’라는 컬렉션으로 대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언제 역사적 유물이 제 자리에 있을 것인지가 의문이다. 파르테논의 부조와 조각상이 파르테논에는 없고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19∼20세기 제국주의의 팽배로 인한 강대국의 약탈이 오늘의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파르테논신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전망대가 있다.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이 곳에서 사람들은 ‘내가 이곳에 왔다’라는 증명을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한다. 전망대에서 파르테논신전과 아테네의 시가지를 조망해 보는 것도 좋은 구경거리다.

파르테논신전
 

파르테논을 구경하면서 쉬다가 다음으로 간 곳이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다. 소크레테스의 감옥은 파르테논에서 ‘필로파포스언덕’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이곳을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라 칭하고 유적지로 보존을 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가면서 구경을 한다. 창살로 막힌 동굴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장소이다.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지나 ‘필로파포스언덕’으로 올라간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 서쪽 방향인 입구 쪽을 향해 건너편을 바라보면 삐죽한 기념비가 보이는 곳이다. 필로파포스는 로마시대 때 아테네에 파견된 사람인데 아테네인들에게 관대한 정치를 베풀었다. 아테네인들은 그가 죽자 B.C. 116년에서 114년 사이에 당시 뮤즈의 언덕 정상에 추모 기념탑을 세웠는데 그 이후로 뮤즈의 언덕은 필로파포스언덕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이곳에 올라와 파르테논을 바라보면 가장 아름다운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정작 전경을 볼 수 없는 아크로폴리스가 이곳에서는 훤히 보인다.

아크로폴리스언덕을 중심으로 이 일대를 구경하다 보니 점심때가 벌써 지났다. 내려오면서 길가에 많은 카페가 있어 점심을 해결하고 고대 아고라로 갔는데 무지의 소치로 예정이 뒤틀리게 되었다. 아고라에 입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오후 3시면 아고라 입장이 끝난다고 고지되어 있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 우리는 가볍게 그 주위에서 잠깐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숙소로 걸어가면서 시내를 구경하고 이런 저런 곳을 기웃거리다가 호텔 가까운 곳에 있는 옷가게에 들렀다. 겨울이라고 생각하여 한국에서 두꺼운 옷만을 가져갔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하여 옷을 좀 바꾸어야 되었다. 옷 가게에서 셔츠와 니트를 구입했는데 품질에 비하여 가격이 상당히 싸서, 전체적인 물가가 우리나라에 비하여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하고 저녁을 먹자하니 아들이 자기가 생각한 곳이 있으니 가자고 한다. 떠나기 전부터 먹는 것에 대해서는 매 끼니는 아니더라도 한 번씩은 좋은 식당에서 즐기기로 약속하였으므로 말없이 따라가니 미슐랭 별이 두 개 붙은 ‘Spondi’라는 레스토랑이다. 상당히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식당이며 격식을 갖춘 웨이터들이 서빙을 하는 곳이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부탁하니 팁을 줄 것인지를 묻는다. 준다고 하니 계산서에 덧붙여서 나온다. 참으로 합리적인 계산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들 녀석이 적당하게 시켰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가격은 아주 비싸지는 않았고, 맛있게 저녁을 먹은, 음식이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호화로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자주 먹기에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흔쾌히 지불하였다. 젊은 아들이 나이든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해 준다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모든 경비를 다 댄다고 해도 과연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는 아들이 얼마나 있을까? 2014년 아들과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러시아여행을 다녀오니 모두 놀랐던 일이 기억난다. 아들과 아버지의 여행을 나는 또 하고 있는 것이다.

필로파포스언덕에서 보는 아크로폴리스
 

나는 아들에게 지금도 고맙고 감사함을 느낀다. 아들이 아니면 내가 감히 한 달 이상을 배낭을 메고 유럽을 돌아다닐 생각을 했을까? 의문이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오면서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이런 점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자기는 계획을 다 짜 가지고 있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의견을 묻는 형식을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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