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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04. 신들의 전쟁에서 인간의 역사로

by BOOKCAST 2022.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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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찍부터 반드시 오기를 기대했던 트로이에 왔다.

내가 트로이를 꿈꾸며 동경했던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50여 년도 더 되는 옛날에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처음에는 소설로 읽었을 때, 이 이야기가 실제 역사의 현장을 호머가 대서사시로 썼고, 슐리이만에 의해 트로이가 발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언젠가는 꼭 트로이를 내 눈으로 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야 트로이를 오게 되었다. 저번에 터키 일대를 여행할 때 트로이를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기에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트로이를 가자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이 일정을 짜 보고는 좀 어렵다고 했지만 내가 강권하여 트로이를 보는 여정으로 바꾸었다. 여기에는 아들도 트로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파도키아에서 버스로 약 5시간을 걸려서 앙카라에 도착하여 앙카라공항에서 오후 11시 40분 비행기로 차낙칼레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이다. 차낙칼레(Çanakkale)는 항구도시로 차낙칼레 주의 주도이며,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킬리트바히르(Kilitbahir)시와 마주 보고 있다. 차낙칼레는 고대부터 해상 교통수단 및 해군 시설이 발달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군 기지의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차낙칼레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로 향하는 항구도시이기도 하며, 1차 세계대전 때 방어 진지 역할을 한 치멘리크 요새(Çimenlik Fortress)가 이곳에 있다. 시 외곽으로는 고대 유적지가 많고 특히 남쪽의 트로이 Troy 가 유명하며, 해안에는 브래드 피터가 주연한 영화 <트로이>의 대형 목마가 세워져 있어 최근에는 관광지로도 각광받는 곳이다.

빨리 호텔을 찾아가서 잠을 자고 일어나 호텔에 부탁하여 택시를 불러 드디어 트로이로 향했다. 트로이뿐만 아니라 터키는 교통편이 좀 좋지 않으니 터키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없는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택시비가 우리보다 엄청 싸니 택시를 타기를 권하고 싶다. 트로이까지 왕복 30Km도 더 되는 거리인데 우리가 트로이를 관광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다시 시내까지 데려다주는 요금으로 우리 돈으로 약 50,000원 정도에 계약하고 편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에서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가장 큰일인데 편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엄청 절약된다. 물론 비용이 너무 많이 들면 시간을 절약하는 의미가 없지만…….

호머에게는 일리오스라 불리었던 트로이는 아나톨리아 지방 북서부, 스카만데르 강의 북쪽과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km 떨어진 트로아스 평야 히사를리크언덕에 있다. 학자들은 이 유적지를 결코 ‘트로이’ 미국식 나 ‘트루바’ 터키식 ‘트로야’ 독일식 등으로 부르지 않고 ‘히사를리크언덕’이라고만 부른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트로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로 이미 확정되기 때문이다. 이곳은 바다에서 6km정도 떨어져 있어 바다로부터의 습격을 받을 위험은 적었으나 바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에게해와 흑해를 잇는 헬레스폰트 다르다넬스 해협의 입구에 있어, 옛날부터 번영을 누려왔다.

이 트로이의 발굴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 간단하게 말하겠다.

어릴 때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읽고 이것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라고 믿은 독일 고고학자 슐리이만이 1870년 4월, 이 지역에서 처음 발굴을 시작하여 1873년 6월 드디어 트로이의 유적을 발견했다. 그 후 1930년대 칼버트의 연구와 슐리이만의 노력으로 발견된 트로이는 도시 위에 도시가 건설되어
있는 대단히 복잡한 복합 유적으로, 유적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세한 설명은 줄인다.

TROIA가 뚜렷이 새겨진 설명판
 

트로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슐리이만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호머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시대만을 염두에 두고 발굴했기 때문에 B.C. 2,000년 이후의 유적은 파괴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리스 이후의 유적은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트로이는 폐허로 온전하게 갖추어진 유적은 없다. 그러나 여기는 트로이다.

트로이에 도착하여 택시 기사에게 기다리라 하고 구경을 나서니 처음 눈에 띄는 것이 거대한 목마다. 물론 조금도 고증이 되지 않고 현대에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그냥 트로이를 말할 때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목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차낙칼레 항구에 서 있는 브래드 피터 주연의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목마가 더 잘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나는 이 목마가 더 친근감이 들었다. 영화의 목마는 너무 세련된 모습인데 과연 그 시대에 그렇게 세련되게 만들었을까? 그냥 거대한 나무 말을 만들었지 않았을까?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목마에 대한 기록만 있지 어떤 모양인지는 모른다. 아니 진짜로 목마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위) 트로이 유적지의 목마 (아래)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
 

트로이 유적지는 기원전 3,000년 전 청동기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의 유적층이 겹겹이 쌓여 있어 시기별로 9층으로 표시해 놓았다. 트로이 유적지를 처음으로 발견한 독일의 슐리이만 참호라고 부르는 곳은 트로이 1시기 기원전 3,000년의 거주지로 추정되며, 그가 당시에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유적을 발굴하기 위하여 무분별하게 파헤쳐 놓았다.

트로이 2기의 유적에는 성안으로 들어가는 경사로가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곳이 슐리이만이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유물을 발견한 장소로 1992년에 처음 발견된 상태로 원형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위) 성안으로 들어가는 경사로 (아래) 오데온
 

의식을 행하던 유적의 남서쪽에 있는 성역에서는 최근에 발굴된 당시 제단으로 사용되었던 장소와 우물을 볼 수 있다.

오데온은 9기에 만들어진 로마 극장으로 거의 완전하게 복원되어 있다. 마지막 9기는 기원전 150년 무렵부터 로마시대였던 서기 500년까지로 추정된다. 이곳은 로마의 시조인 아이네이아스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로마황제들의 관심이 많았던 곳이다. 이 오데온과 극장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한때는 번성했으나 차츰 쇠퇴하다가 5세기 말경 지진에 의해 파괴되고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스에서 엄청난 규모의 원형극장만 보다가 조그마한 오데온을 보니 더 정감이 갔다.

트로이 전쟁이 신화냐? 역사냐? 하는 의문은 슐리이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질문이었다. 전쟁의 시작은 신화에 기초한다. 어느 날 여신 헤라와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다투는 일이 있었다. 심판을 맡았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그리스 제일의 미녀 헬레네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부녀였던 헬레네를 빼앗긴 남편 메넬라오스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미케네의 왕 아가메논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규모 원정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쳐들어갔다. 수많은 영웅과 신들이 양쪽의 군대에 참가하여 전투를 벌이고 여러 신화적 이야기가 전개되며 이후 10년 동안 양측의 싸움으로 수많은 영웅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그리스는 ‘트로이의 목마’ 작전이 성공을 거두어 마침내 길고도 지루했던 전쟁은 끝을 맺게 되었다.
이것이 흔히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트로이 전쟁’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한 줄거리다.

과연 트로이 전쟁은 헬레네 때문에 일어났을까? 정말 신들이 인간의 전쟁에 개입한 것일까? 호머가 역사에 기초하여 꾸민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트로이는 지중해 교통의 요충지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교역을 하는데 가장 큰 불안 요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가메논을 중심으로 한 미케네와 그리스 연합군과 아나톨리아의 트로이군이 해상 무역을 두고 벌인 전쟁이라는 것이 역사의 진실일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말했다. 트로이에 가봤자 폐허만 볼 뿐이고 실망한다고. 물론 트로이는 폐허지만, 역사의 엄청난 현장이기에 트로이 유적을 보고 나니 큰 감동이었다. 트로이를 보면서 영화에서 보던 트로이의 한 장면을 실감하고, 그리스 연합군과 맞서고 있는 트로이 군대를 생각해 본다. 이 역사의 현장이 지금 폐허면 어떠랴. 내가 여기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므로 가장 복받은 여행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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