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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SNS 인문학>

05. 근자감_ 허세와 긍정의 힘을 가르는 한 끗 차이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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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감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허구적 근자감’이고 다른 하나는 ‘태도적 근자감’이다. ‘허구적 근자감’은 지금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사실’과 관련된 근자감이고, ‘태도적 근자감’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근자감이다. 앞의 시험을 앞두고 철야기도로 성적을 올리려 한 것과 청 왕조 때 무술 단련으로 총알을 피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의화단의 경우는 ‘허구적 근자감’에 해당한다. 시험 볼 내용에 대해 전혀 공부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지금 현재의 ‘사실’, 사람이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고 중력 때문에 사람이 맨몸으로는 날 수 없다는 ‘사실’과 관련된 근자감이기 때문이다. 유방과 카이사르의 낙천적 성격은 ‘태도적 근자감’에 해당한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관련된 근자감이기 때문이다.

현재 존재하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지금 당장 가져올 수 없는 결과를 자신하는 것은 허세이자 정신승리다. 따라서 ‘허구적 근자감’은 부정적 측면의 근자감이다. 미래에 발생할 일에 대한 낙관적 ‘태도’는 비관적 ‘태도’에 비해 성공 확률을 크게 높인다. 낙관적 태도는 시도 자체를 있게 하고, 나아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모색하고 노력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도적 근자감’은 긍정적 측면의 근자감이다. ‘허구적 근자감’, ‘태도적 근자감’, 둘 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지만, ‘허구적 근자감’은 사람을 퇴보시키고, ‘태도적 근자감’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근자감은 종교와 많이 닮았다. 먼저,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그렇다. 근자감은 자신을 믿고 종교는 신을 믿는다. 그리고 종교 역시 근자감과 같이 ‘허구적 믿음’과 ‘태도적 믿음’으로 나뉜다. ‘허구적 믿음’은 ‘허구적 근자감’과 같이 지금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사실’과 관련된 믿음이다. 종교 역시 지금 당장 기대하는 ‘믿음’인 경우, 눈앞 ‘사실’의 인과관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못한다. 혹시라도 가져오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글자 그대로 ‘기적’인 경우다. 기적은 당연히 일반적이지 않다.

‘태도적 믿음’은 ‘태도적 근자감’과 같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믿음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자신의 기도를 신이 반드시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태도는 아무 믿음도 없는 경우에 비해 그 일이 이루어질 확률을 크게 높인다. 앞의 낙관적 태도처럼, 그 믿음이 지속적인 간절한 기도와 함께 밤낮으로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자감이나 종교 모두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관련된 믿음이라면 ‘긍정적 근자감’, ‘긍정적 믿음’이 되겠지만, 지금 현재의 사실적 근거가 없는 기대에 대한 믿음이라면 그것은 허구로, ‘자기 기만적 근자감’, ‘실망으로 끝나기 쉬운 믿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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