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에세이/<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

08. 줄리아가 또 사고를 쳤구나...

by BOOKCAST 2022. 3. 2.
반응형

 


 

나는 그저 하루를 무탈하게 보내길 기도했다. Stationery 사건을 겪고 나선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가 소원이었다. 컴플레인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건이 또 닥쳤다.

이번 일은 손님과 내가 서로 쿵짝이 맞지 않아 생겼다.
 VIP 손님이 내게 엽서가 들어갈 만한 열 장의 봉투를 건네며 함께 온 회사 임원들 방으로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벨맨에게 봉투 배부를 부탁했다. 그런데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 그가 화가 난 얼굴을 하고 나를 찾아왔다.

왜 카드를 미리 전달하지 않았죠?”

나는 영문을 몰랐다. 카드를 전해 줘야 하는 시간을 특정했던가? 그는 숨을 거칠게 쉬며 이 봉투가 다섯 시에 열린 칵테일파티 초대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오지 않는 리셉션 장소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배달만 요청했을 뿐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카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번 Stationery 사건 때문인지 다들 줄리아가 또 사고를 쳤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해도 설마 시간을 듣지 못했을까? 손님에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저 묵묵하게 그의 일방적인 컴플레인을 들었다. 지금은 맞서기보다 참을 때라고 판단했다.

다음 날, 그 손님은 일행과 함께 VIP 라운지를 찾았다. 라운지 운영 시간은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였는데, 그가 온 건 9 45분이 넘은 시간이었다. 보통 이 시간에 오면 미국 직원들은 마감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음식과 술은 드실 수 없다고 정중하게 안내를 한다. 이런 대응은 아무 문제가 없다. 늦게 라운지를 찾은 그들은 한잔 즐기고 싶은 눈치였다. 저녁 식사 후 따뜻한 벽난로 곁 아늑한 의자에 앉아 한잔하고 싶을 만도 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그에게 딱 잘라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기꺼이 앉으시라고 말했다.

마감 시간이 다가와서 음식을 치우고 있지만 한잔하실 수 있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다 같이 벽난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치웠던 음식을 다시 내고 시원한 맥주와 와인을 더 준비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울 때까지 기다리길 한참. 술과 안주가 모두 동이 나고 치즈와 스낵을 추가로 먹고 나서 그들은 밤 11시가 되어 자리를 비웠다. 기대하지 않았던 나의 서비스에 일행은 모두 만족해했다. 내게 컴플레인을 걸었던 VIP도 뜻밖의 서비스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매우 만족해했다. 그들은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다.

“Julia! Fantastic!(줄리아, 최고예요!) 화가 났던 그의 마음이 누그러진 것은 물론이고 부당한 항의를 받은 내 마음도 어쩐지 괜찮아졌다. 그가 내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내가 능력이 뛰어났다고 생각했다면, 그가 항의를 할 때 되받아쳤을 것이다. 혹은 그의 항의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가 업무 수칙에 맞게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잘잘못은 가려졌을지 몰라도 그 손님은 이 호텔을 다시 찾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억울한 마음을 잠시 접어 두었을 때 우리는 모두 만족스러울 수 있었다.

바둑에서는 한 수 한 수가 중요하지만 눈앞의 한 수만 보아서는 결국 패하고 만다. 때로는 한 수를 내어 주고 두 수를 가져오는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도 잃지 않으려고 바둥대는 사람을 바둑에서는 가장 초보로 친다.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다. 때로는 예전 실수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기라도 하면 엇나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한 수를 내어 줘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