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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

07. 당신이 있어 호텔을 다시 찾을 것입니다.

by BOOKCAST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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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직원으로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중대한 결격 사유니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VIP에게 컴플레인까지 받았으니 근무 자격 미달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어도 호텔 측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설사 내가 이곳에서 잘린다고 하더라도 그 손님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었다. 리츠칼튼에는 손님이 말하지 않아도 손님에게 만족스러운 환경을 갖추기 위해 데이터를 구축해 둔다. VIP 손님 정보를 기록한 데이터베이스를 살펴봤다. 그는 보스턴에 있는 회사 임원이고 아들 셋을 두었으며 커피는 무설탕 감미료를 넣어 마시고, 신문은 월스트리트 저널을 선호한다는 걸 파악했다.

나는 아침 일찍 VIP 라운지에 출근했다. VIP 라운지는 VIP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다이닝룸으로 하루 다섯 번에 걸쳐 식사와 음료, 술이 무료로 제공된다. VIP 라운지는 인기가 많아서 하루 종일 좌석이 꽉 차 있곤 했다. 나는 창가 테이블에 월스트리트 저널을 놓고 그를 위한 자리를 맡아 두었다.

자리가 하나둘씩 차고 마침내 그가 라운지에 들어왔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였는지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님, 저 테이블이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다시 한번 말하자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창가 테이블로 향했다. 나는 계속 그를 살피며 그가 커피를 다 마신 타이밍에 맞춰 무설탕 감미료를 쥐고 테이블로 갔다. 커피 주전자를 들고 그의 컵에 커피를 채웠지만 역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소한 땡큐도 없었다. 그가 떠나는 날까지 나는 매일 창가 옆 테이블을 맡아 두었다. 그가 떠나는 날 그에게 카드를 썼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쿠키를 준비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지만 그게 나의 진심이었다.
카드와 함께 준비한 쿠키는 리츠칼튼에서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쿠키였다. 다들 집에 갈 때 한두 개쯤 챙겨 가길 원하는 선물이었다. 나는 박스에 쿠키를 꽉꽉 채워 벨맨을 통해 그에게 전달했다.
며칠 후 총지배인이 나를 불렀다. 이제 정말 해고되는 걸까?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총지배인 사무실로 들어가자 그가 내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줄리아, 당신의 정성과 끈기에 놀랐습니다. 그런 일이 생긴 뒤로 나를 피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피했을 텐데요. 이를 만회하기 위해 3일 내내 정성 가득한 서비스를 보여 주는 당신의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까지 챙겨 주는 세심함에 더욱 놀랐습니다. 처음엔 당신 때문에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는 당신이 있어 리츠칼튼을 다시 찾을 것입니다.
 
그 후 그 손님은 내가 일하는 호텔에 세 명의 아들과 함께 찾아왔고 우리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펜타곤 시티로 옮긴 후에도 그곳을 방문해 주었다.

스테이셔너리 사건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 사건을 마냥 덮으려고만 했다면, 혹은 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손님을 탓했더라면 이런 미담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내 부족한 점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셈이다. 실수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실수를 대처하는 내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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