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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생활·요리/<놓아주는 엄마 주도하는 아이>

05. 아이를 ‘생각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정지시간'

by BOOKCAST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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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시간이 아이를 
‘생각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과학자들은 두뇌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두뇌가 어떤 과제에 몰두했을 때 혹은 외적 자극을 처리할 때 어떤 일을 하는지 탐색하는 데에만 집중해왔다. 그들은 최근에서야 나머지 시간에 두뇌가 무엇을 하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은 우리가 과제나 목표에 집중하고 있을 때 두뇌의 일정 부위들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1997년 그와 워싱턴대학의 동료들이 모여 이 부위들을 분석하고 거기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1년에 이르러서야 라이클은 무엇이 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지, 즉 무엇이 깨어 있으나 집중하지 못하는 두뇌를 만드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우리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활성화되고, 우리의 의식 네트워크는 찰나의 휴식을 취한다. 눈을 감고 깊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두뇌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자신에 대해, 과거와 미래에 대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생각들은 자아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또 이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고, 공감력도 발달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적 성찰에 관한 거의 모든 일이 일어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사람을 ‘생각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가치와 재능을 깨닫게 해준다. 친구와 입씨름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 다툼 때문에 기분은 안 좋지만 바쁜 일들에 치여 다시 생각할 여력이 없다. 다음 날 아침에 샤워할 때가 되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친구가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궁금해진다. 기분이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고 친구의 생각을 짐작해 본다. 그 사건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그 문제가 점점 대단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때 사건을 떠올리려면 정지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정지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면 분노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는 채 그 분노를 쌓아두게 된다. 두뇌는 쓰는 대로 개발된다. 그렇다면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자신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건을 지나치게 반복 재생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반추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매일 ‘스트레스가 없는’ 정지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몇 분의 정지시간이 주어지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두뇌로 하여금 분석과 비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만들게 한다. 하지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있어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어떤 과제에 집중했을 때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메리 헬렌 이모르디노-양은 두뇌 시스템을 두 상태로 보았다. 먼저 목표 중심의 과제에 참여할 때 활성화되는 ‘외면을 보는(looking out)’ 과제-양성(task-positive) 상태. 다른 하나는 ‘내면을 보는(looking in)’ 과제-음성(task-nagative) 혹은 휴식 상태이다. 주소지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험공부까지 집중이 필요한 외적 과제에 초점을 맞출 때면 두뇌에서 ‘내면을 보는’ 공상 부분은 불이 꺼진다. 공상에 들어갈 때는 ‘외부를 보고’ 분명한 과제를 하는 능력이 멈춘다.

현대사회에서는 일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연구는 휴식 상태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한다. 전설적인 인지심리학자 제롬 싱어는 마음이 자유롭게 떠돌 수 있는 휴식 상태야말로 사실상 우리의 ‘기본(default)’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싱어는 자신의 1966년작 《공상(Daydreaming and fantasy)》에서 공상, 상상, 환상은 건전한 삶의 필수 요소라고 했다. 이런 요소들에는 자기 인식, 창조적 사고, 사건과 상호작용의 의미에 대한 고찰, 타인의 관점 수용, 도덕적인 추론 등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아하!” 하며 깨닫는 순간을 뜻한다. 음악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신경과학자 대니얼 J. 레비틴은 통찰이 과제 집중 상태일 때보다 휴식 상태일 때 찾아온다고 강조한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지 못한 것들을 연결하는 일은 모든 걸 내려놓고 쉴 때 이뤄진다. 이를 통해서 이전에는 풀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카를로 로벨리가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 말했듯,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돌파구를 찾은 것은 그가 1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아무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가끔 강연이나 들으러 다닌 때였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설정과 해제가 효율적일수록 인생의 사건들을 잘 처리할 수 있다. 공상에서 빠져나와 여러 자극을 받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면 두뇌는 미리 준비한다. 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기억과 사고의 유연성, 독해 등 인지 능력에 대한 시험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정신적으로도 더 건강하다. ADHD, 불안장애, 우울증, 자폐증, 조현증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외부와 내면을 오가기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지나친 몽상에 빠지거나 자기 생각에 매몰되고 만다.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온-오프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한다. 집중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눈앞에 있는 경우 우리는 그 생각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지루함’을 경멸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누가 더 바쁜지 경쟁한다. 인간의 가치가 효율성에 달린 것처럼 말이다. 이런 사고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가족끼리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간다고 생각해 보라. 아이들은 무언가를 듣거나 보거나 게임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창밖을 내다보고,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공상하는 법을 잊었다. 심리학자 애덤 콕스는 50년 전의 아이들이 가만히 있는 상태로 1~2시간을 보낼 때 지루함을 느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겨우 30초 만에 지루함을 느낀다고 한다. 극히 활발한 10대들은 지루함을 불안으로 느끼고 ‘끊임없는 연결의 혼돈은 이들을 달래는 친숙함’으로 느낀다. 어른들도 다르지 않다. 운전하다가 만나는 빨간 불에서 속도를 줄이며 그 잠깐 동안에 휴대폰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활동과 휴식을 번갈아 가져야 한다. 의사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을 때 혹은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곧바로 잡지를 집어 들거나 휴대폰을 확인하는가? 그 대신 몇 분이라도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어떨까? 운전하거나, 걷거나, 운동하기 위해서 뛸 때 나 팟캐스트를 듣는 대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자극이 산재한 세상이기 때문에 더 의식적으로 정지시간을 가져야 한다. 등산이나 캠핑이 잠시 숨을 돌릴 기회가 되긴 하지만, 조만간 산이나 캠핑장에서도 세상과 연결되지 않는 곳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휴대폰을 가지고 가지 않거나 꺼놓기로 ‘선택’해야 한다.

이 글을 읽은 뒤에 전과 다르게 해주기를 바라는 단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게 놓아두라는 것이다. 기술의 편재성만큼이나 큰 문제가 바로 우리 부모들이다. 네드가 코칭하는 아이 중 성취도 높고 스트레스 많은 한 아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1~2시간의 휴식을 가지는 것뿐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을,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진짜 휴식 말이에요. 하지만 그럴 때면 부모님은 말씀하시죠. ‘시험 준비를 더 해야 하지 않니? 밀린 공부는?’”

우리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연이은 여러 활동으로 일정을 짠다. 하지만 공상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다.


아동 심리학자 린 프라이는 여름 방학이 시작될 때면 자녀들과 자리에 앉아서 아이들이 자유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목록으로 만들어보라 한다. 아이들이 지루하다고 불평할 때 자신들이 만든 이 목록을 참조하게 한다.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정하는 사람은 아이들 자신이어야 한다. 부모가 그 시간을 채워서는 안 된다. 고독을 견디는 법, 자신을 편하게 느끼는 법은 어린 시절에 습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 목록의 상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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