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모르는 영어 약자를 보고서에 썼을 때 생기는 일
“사장님께 보고드릴 보고서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부사장님께 미리 보고하기 위한 보고서 쓸 준비하기 이전에 제가 보고한 이 보고서 내용 보고 정리해서 보고하세요.” 뭔가 돌고 도는 말, 씁쓸하다. 한편으론 서글프다. 우습다기보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 체계가 아직 잡히지 않은 작은 회사의 사례라 그러면 ‘그런가’ 하겠다. 하지만 이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한민국 최고 공기업에 다니는 분이 쓴 자조 섞인 한탄이었다.
한국 회사만의 일일까. 나름대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한다는 다른 직장인이 “윗사람이 알아듣게 보고서를 쓰다 보니 언젠가 여덟 살 우리 아들도 그걸 보고 알아듣더라”라는 자랑인지, 한탄인지 헷갈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보고 때문에 하루가 지나고, 보고서 때문에 이틀이 가는 우리의 조직문화, 개선될 수는 없을까.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것이고, 우리는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 조직문화가 개선되어 보고서 혹은 보고 형태가 달라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평화로워야 할’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보고서와 보고를 적대적으로 보면서 괴로워하느니, 어떻게 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일상에 ‘태클’ 걸지 않을지를 고민하는 게 나와 세상, 아니 직장 내의 평화를 위해서 좋은 일이니 말이다.

우선 보고서의 본질을 확인해 두자. ‘보고서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라는 것만 우선에 두고 있어도 보고서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최소한 보고서 때문에 억울할 일은 줄일 수 있을 테다.
보고서의 형태는 어떠해야 할까? 어찌해야 보고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다음의 세 가지 키워드를 기억해 두자.
첫 번째 키워드는 ‘정직’이다.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거짓 보고’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성과를 얻어내는 창의적 도구 등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 보고서에 거짓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자료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건 보고서를 쓰는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다.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여부까지 보고서를 읽는 사람에게 미룬다는 건 보고자의 태도로서 부적절하다.
두 번째 키워드는 ‘눈높이’다.
보고하는 사람의 언어로 보고서가 작성된다면 그건 실패다. 상대방이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보고서를 쓴 사람의 잘못이다. ‘윗사람이 알아듣기 쉽게 보고서를 쓰다 보니 여덟 살 아들도 이해했다’라는 경험은 답답하긴 하지만 바람직한(?) 경험이다. 참고로 모르는 용어를 보고서에 써서는 안 될 일이다. 예를 들어 ‘약자’를 쓰려면 그 용어를 알고 써야 한다.
과장으로 일하던,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임원의 호출을 받았다. 재직 중이던 회사의 서비스 중에 하나를 설명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나름대로 해당 서비스를 잘 파악하였고, 또 그것을 통해 대형고객도 꽤 수주한 터여서 그 서비스의 전문가로 이름이 있었기에 요청을 받은 것이다. 임원실에서 화이트보드에 구성도를 설명하면서 ‘잘난 체’를 하고 있었는데 담당 임원분이 물었다. “그런데 김 과장, ‘CDN’ 그게 뭐의 약자인가요?”
갑자기 말이 콱 막혔다. “그게 저… ‘C’는 ‘콘텐츠(Contents)’의 약자고, ‘D’는….” 질문에 바로 답을 못하고 허둥대고 있을 때 임원께서 말씀하셨다.
“편하게 말해도 됩니다. 괜찮아요. 다만 앞으로 혹시 누군가에게 보고하거나 보고서를 쓸 때 김 과장이 모르는 용어는 그냥 쓰면 안 됩니다. 머리에 확실히 각인되었을 때만 사용하고 잘 모르겠다면 보고서 쓸 때 괄호치고 ‘풀네임’을 적어 두세요.”
그때 참 부끄러웠다. 괜히 있어 보이려고 영어 약자를 여기저기 써둔 내 손에 화가 날 정도였다.
세 번째 키워드는 ‘논리’다.
앞의 두 키워드, 즉 정확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눈높이에 맞춰 쉽게 쓰려고 노력한다면 논리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정확하고 쉬운데 논리의 비약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 더하고 싶은 것은 보고서를 쓰고 나서 ‘어디서 찾은 자료인가요?’라는 물음을 들을 때 ‘그거 인터넷에서 찾은 건데요?’라고 말하는 것은 삼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왜? ‘뭔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쓸 때 물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 건 당연하지만, 인터넷에도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가 많으므로 출처가 분명한 기관의 사이트 내 자료를 참고하거나, 검증 등의 차원에서 약간의 노력을 더한 후에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자료입니다만 해당 자료에 대해 관련 부서에 문의하여 사실관계를 점검했습니다.”
‘말 센스’가 보고서에 적힌 ‘글 센스’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차별화하면서, 당신을 빛나게 해주는 순간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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