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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2>

15. 초가에 앉아 천하를 셋으로 나누다.

by BOOKCAST 2022.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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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또 두 시간이나 서 있었다온몸이 욱신욱신 쑤셔왔으나 억지로 버티면서 떠나지 않았다그제야 제갈량이 잠에서 깨어나 시를 읊었다.
 
큰 꿈에서 누가 먼저 깨어났더냐
평생에 나 스스로 자신을 아노라
초당에서 봄 잠 실컷 자고 나니
창문 밖에 해가 뉘엿뉘엿 하구나
 
제갈량이 시를 읊고 몸을 뒤집더니 아이에게 물었다.
바깥손님이 와 계시지 않느냐?”

아이가 대답했다.
유황숙께서 여기 서서 기다리신 지 오랩니다.”

제갈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찌 일찍 알리지 않았느냐내가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제갈량은 뒤채로 들어가 다시 한참이 지나서야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나와 유비를 맞이했다유비가 보니 키가 여덟 자에 얼굴은 머리에 쓰는 관에 다는 옥처럼 아름다웠다머리에는 푸른 비단 띠로 만든 윤건을 쓰고 몸에는 새털로 짠 학창의를 걸쳤으니이 세상을 떠난 신선 같은 기풍이 있었다.

유비가 절을 하며 입을 열었다.
한나라 황실의 끄트머리 후예이고 탁군의 어리석은 사내인 유비는 우레를 듣듯이 선생의 크신 성함을 들어 모신 지 오랩니다전에 두 번 찾아왔으나 한 번도 뵙지 못해천한 이름을 글에 적어 상 위에 남겼는데 보셨는지요?”

제갈량은 담담히 대꾸했다.
“남양의 시골 사람은 게으름에 몸이 젖었는데 장군께서 여러 번 잘못 왕림하시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마치고 손님과 주인 자리에 나뉘어 앉았다. 아이가 올린 차를 마시고 제갈량이 말했다.
“전날 글을 보고 장군께서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스럽게도 이 양은 나이가 어리고 재주가 서툴러, 내리시는 물음에 드리는 답이 그릇될까 두렵습니다.”

유비는 이미 제갈량에게 반했다.
“사마덕조의 가르침과 서원직의 말이 어찌 빈 소리이겠습니까? 선생께서 이 비를 비천하다고 버리지 마시고 가르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덕조와 원직은 세상의 고명한 선비들입니다. 이 양은 한낱 농부인데 어찌 감히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겠습니까? 두 분은 잘못 추천하셨습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아름다운 옥을 버리고 거친 돌멩이를 얻으려 하십니까?”

“대장부가 세상을 경영할 기이한 재주를 지녔으면서 어찌 수풀과 샘을 더불어 헛되이 늙어가십니까. 선생께서 천하 백성을 생각하시어 이 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가르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유비가 끈질기게 청하자 제갈량은 빙그레 웃었다.
“장군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유비는 곁의 사람들을 물리치고 삿자리 위에서 무릎걸음으로 바싹 다가가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았다.
“한의 황실이 기울고 간신들이 권력을 훔쳤으니, 이 비는 모자란 힘을 아랑곳하지 않고 천하에 대의를 펴려 합니다. 그런데 슬기가 모자라고 방책이 부족해서 할 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선생께서 어리석은 이 사람을 깨우쳐 어려움을 풀어주시면 실로 행운이겠습니다!”

제갈량은 드디어 마음을 털어놓고 유비를 위해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동탁이 역적 짓을 시작한 뒤로 천하에 호걸들이 너도나도 일어났습니다. 주를 가로 타고 군을 아울러 차지한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조조가 세력이 미치지 못하면서도 원소를 이긴 것은 하늘이 도와주는 때를 잘 만났을 뿐 아니라 사람의 꾀도 역시 빛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조는 100만의 무리를 거느리며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실로 그와 다툴 수 없습니다. 강동을 차지한 손권은 이미 3대를 거쳤는데, 나라는 험하고 백성은 깊이 따르며, 현명하고 유능한 이들이 크게 힘을 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돕는 힘으로 삼아야지 적으로 대해서는 아니 됩니다. 형주는 북으로는 한수와 면수를 막고 남으로는 남해에 닿았으며, 동으로는 오군과 회계에 이어지고 서로는 파·촉 땅과 통하니, 이는 싸움을 할 땅이라 참된 주인이 아니면 지켜낼 수 없습니다. 이야말로 하늘이 형주를 장군께 주는 격인데, 장군께서는 받으실 뜻이 있으십니까? 익주는 험하고 꽉 막혔는데 기름진 들판이 1000리나 펼쳐졌으니, 이는 하늘이 만들어준 곳간이라 고조께서는 그 고장에 의지해 황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익주는 백성이 넉넉하고 나라가 부유한데 주인인 유장은 사리에 어둡고 나약해 사람을 아낄 줄 몰라서, 슬기롭고 재능 있는 이들이 영명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황실의 후예이신데 거기에 더해 신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셨고, 영웅들을 품에 끌어안으시며 현명한 이를 그리워하기를 목마른 자가 물을 바라듯 하십니다. 그러니 형주와 익주를 가로 타고 앉아 험악한 곳을 지키시고, 서쪽으로는 융인의 여러 무리와 화해하시며, 남쪽으로는 이(彛)와 월(越)의 종족을 어루만지시면 됩니다. 바깥으로 손권과 손잡고 안으로 힘을 기르시다 천하에 변화가 생기기를 기다려, 상장 하나를 보내 형주 군사를 이끌고 완성과 낙양으로 나가게 하시고, 친히 익주 무리를 거느리고 진천으로 나아가시면 백성이 누군들 광주리에 음식을 담고 항아리에 술을 채워 맞이하지 않겠습니까? 실로 이렇게 되면 대업을 이룰 수 있고, 한의 황실이 흥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 양이 장군을 위해 생각한 바이니 장군께서 시행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수와 면수는 지금부터 자주 나오는데, 원래 강이 둘이지만 하나를 가리키기도 한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강은 면수라 부르고 서쪽에서 흘러오는 강은 한수라 불렀다. 두 강이 합쳐진 큰 강은 면수 또는 한수라고 하며 하구에서 장강으로 흘러든다. 앞으로 유비 일생은 이 강들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된다.】

말을 마치자 제갈량은 아이를 시켜 둘둘 만 그림을 꺼내 걸게 하더니 그림을 가리키며 유비에게 말했다.
“이것은 서천 54개 고을 그림입니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시려면 북쪽으로는 조조가 천시(天時)를 차지하게 하고, 남쪽으로는 손권이 지리(地利)를 차지하게 하면서 스스로는 인화(人和)를 차지하시면 됩니다. 먼저 형주를 손에 넣어 집으로 삼고, 서천을 쳐서 사업을 벌여 솥의 발처럼 셋으로 갈라진 형세를 이루면, 그다음 중원을 노릴 수 있습니다.”

 

천시는 하늘이 돕는 때를 말하는데여기서는 황제를 끼었다는 뜻이다지리는 유리한 땅을 가리키고인화는 집단의 화목한 인간관계를 말한다.

제갈량의 말을 듣자 유비는 일어서서 삿자리 바깥으로 나가 손을 맞잡고 고마워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길을 꽉 가로막은 수풀이 모두 걷힌 듯 눈앞이 환해집니다이 비는 구름 안개를 걷어내고 푸른 하늘을 보는 듯합니다그런데 형주의 유표와 익주의 유장은 모두 한나라 황실 종친인데이 비가 어찌 차마 그 땅을 빼앗겠습니까?”

제갈량이 대답했다.
“양이 밤에 천상을 살펴보니 유표는 인간 세상에 오래 남아 있지 못합니다. 또 유장은 업적을 세울 주인이 아니니 익주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장군께 들어옵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후세에 ‘융중대’라 불리는 이 한 편의 말은 제갈량이 초가를 나서기 전에 벌써 천하가 셋으로 나뉠 것을 알았음을 보여주니, 참으로 만고의 사람들이 미치지 못할 바라고 하겠다.
유비가 절하면서 청했다.
“이 비는 비록 이름이 보잘것없고 덕이 부족하나, 선생께서는 비를 비천하다 버리지 마시고 숲에서 나와 도와주시기 빕니다. 이 비는 두 손 맞잡고 밝은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제갈량은 사절했다.
“양은 농사를 즐긴 지 오래고 세상일에 응수하는 데 게을러서 그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청했다.
“선생께서 나오시지 않으면 천하 백성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눈물이 두루마기 소매를 적시고 옷자락까지 다 젖으니 제갈량은 그 마음을 보고 드디어 대답했다.
“장군께서 버리지 않으시니 개와 말의 수고를 다 바치겠습니다.”

유비는 대단히 기뻐 곧 관우, 장비를 불러 제갈량에게 절하면서 금과 비단 따위 예물을 바치게 했다. 제갈량이 사양하며 받지 않자 유비가 권했다.
“이것은 큰 현인을 맞이하는 예물이 아닙니다. 그저 이 비의 자그마한 마음을 나타낼 뿐입니다.”

제갈량은 그제야 예물을 받았다.
유비와 관우, 장비 일행은 장원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제갈균이 돌아오자 제갈량이 부탁했다.
“내가 유황숙께서 세 번 찾아주신 은혜를 입어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너는 여기서 농사를 지어라. 밭을 묵혀서는 아니 되느니라. 내가 공을 이룬 다음 돌아와 숨어 살겠다.”
제갈량이 초가를 나올 때 나이 27세였다.
 
유비 3형제는 제갈량과 함께 신야로 돌아왔다. 유비는 제갈량을 스승 모시듯 하면서, 같은 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자며 종일 천하의 일을 의논했다.
제갈량이 말했다.
“조조가 기주에 현무지를 만들어 수군을 조련하고 있으니 반드시 강남을 침범할 뜻이 있습니다. 강 너머로 가만히 사람을 보내 형편을 알아보도록 하십시오.”

유비는 사람을 보내 강동에 가서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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