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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2>

13. 장비는 계면쩍은 듯 말을 고쳤다.

by BOOKCAST 2022.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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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는 계면쩍은 듯 말을 고쳤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추위 따위가 겁나겠소그저 형님이 헛고생하고 공연히 속이나 썩으실까 걱정일 뿐이오.”

더 말하지 말게나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네.”

제갈량의 초가에 거의 이르는데 느닷없이 길가 술집에서 누가 노래를 불러 유비가 들어보니 이런 노래였다.
 
장사의 공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오호라오랫동안 봄날 만나지 못했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동해의 늙은이 가시덤불 떠나서
후에는 문왕과 같은 수레 탔더라
800 제후 기약 없이 한자리에 모여
흰 물고기 배에 오를 때 맹진을 건넜지
목야의 한판 싸움 피 흘러 공이가 떴는데
매처럼 날아올라 무관 중 으뜸 되었네
그리고 또 보지 못했는가
고양 땅 술꾼이 수풀 속에서 일어나
망탕의 코 큰 어른에게 길게 읍했던 일
왕자 패자 일 이야기해 어른 놀라게 하니
발 씻던 일 그치고 자리에 앉게 해 흠모했네
동으로 제나라 성 일흔두 개 앗으니
천하에 그 자취 따를 사람 없구나
두 사람 공적 이러하거늘
지금까지 그 누가 영웅을 논하려 하더냐?

처음에는 장한 사내가 품은 뜻을 펴지 못했는데밝은 정치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다음으로 동해에서 살던 강태공이 갖은 고생 끝에 주문왕이 그를 청해뒷날 그 아들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뒤엎어 큰 공로를 세운 일을 노래했다맹진 나루에서 800명 제후와 만나 강을 건너는데 흰 물고기가 배에 뛰어들어 희한한 징조를 만들었고목야 땅 싸움에서 상나라가 참패해 흐르는 피 위에 공이가 둥둥 떴다지 않은가바로 그 싸움으로 강태공은 주나라의 으뜸 공신이 되었다.

또 진나라 말년 고양에서 낮은 벼슬아치로 늙어온 역이기가 코가 커서 융준공(隆準公)’으로 불린 유방에게 찾아가 쓰인 일을 이야기했다유생을 싫어하던 유방은 역이기가 유생 차림으로 찾아왔다고 하자 하녀에게 계속 발을 씻게 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그러자 역이기는 유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다시 전하라고 했다.

유생이 아니라 고양의 술꾼이 왔다고 해라.”

술꾼이라면 유방의 비위에 맞아서 바로 역이기를 만나 중용했다뒷날 유방이 항우와 천하를 다툴 때역이기는 제나라로 가서 왕을 설득해 유방에게 항복하도록 했는데그때 제나라에는 성이 72개나 되었다.

노래에서는 젊은 시절에는 어렵게 보내다 나이 들어 현명한 임금을 만나 큰 뜻을 이룬 강태공과 역이기를 찬미했다그런데 결론은 이상했다두 사람이 그처럼 대단하니 후세 사람들은 그들에게 비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노래가 끝나자 곧 다른 목소리가 새 노래를 부르는데이번에는 상까지 두드렸다.
 
우리 황제 검을 들어 세상 깨끗이 하셔서
창업하신 뒤로 400년이 이어졌네
환제영제 말세에 화덕 쇠퇴해져
간신과 역적이 권력을 잡았더라
푸른 뱀이 어좌 곁에 날아내리고
요사스러운 무지개도 옥당궁에 내려왔지
무리 도적 사방에서 개미처럼 모이고
간웅들이 저마다 매같이 날아올라
우리 무리 휘파람 불며 손뼉이나 치거늘
갑갑하면 술집 와서 시골 술 퍼마시자
제 몸만 잘 거두면 종일 편안한데
천고에 썩지 않을 이름 탐내 무엇하리

한나라 역사를 이야기하며 말세의 어지러움을 탄식한 이 사람은 먼저 사람보다 더 분명하게 세상을 벗어나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노래를 마치고 손뼉을 치며 껄껄 웃었다.
와룡이 여기 계시나?”

유비가 술집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윗자리에 앉은 사람은 얼굴이 희고 수염이 길며아랫자리에 앉은 사람은 준수하고 비범하게 생겨 그림에 나오는 옛날 사람 비슷했다유비가 두 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물었다.
두 분 가운데 어느 분이 와룡 선생이십니까?”

수염 긴 사람이 되물었다.
공은 누구신데 어찌하여 와룡을 찾으시오?”

저는 유비입니다선생을 찾아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얻으려 합니다.”

수염 긴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와룡이 아니라 그의 친구올시다나는 영천의 석광원이고이 사람은 여남의 맹공위지요둘 다 여기 숨어 삽니다.”

유비는 매우 좋아했다.
이 비는 두 분의 크신 성함을 들어 모신 지 오랜데 다행히 기약 없이 만나게 되었습니다지금 저희를 따라온 말들이 여기 있으니 감히 두 분을 모시고 함께 와룡의 장원으로 가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석광원이 사절했다.
우리는 모두 산과 들의 게으른 무리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을 모르니물음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공은 말에 올라 와룡을 찾아보십시오.”

유비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와룡강으로 갔다초가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자 아이가 나왔다.
선생께서는 오늘 장원에 계시느냐?”

유비가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지금 대청 위에서 책을 보세요.”

유비는 대단히 기뻐 동자를 따라 들어갔다대문을 지나 중문에 이르니 문 위에 글 두 줄이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담백하게 욕망 줄여 뜻이 밝아지게 하고
차분하게 가라앉혀 멀리 헤아리려 하노라
淡泊以明志(담백이명지)
寧靜而致遠(녕정이치원)
 
유비가 글을 읽어보는데 노래를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문 옆에 서서 가만히 안을 엿보았다대청 위 화로 곁에서 한 소년이 무릎을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봉황은 천 길 허공 날아 예거니
오동이 아니고는 깃들이지 않고
선비는 한 고장에 숨어 있거니
주인이 아니면 의지하지 않노라
즐거이 농사짓나니 내 초가 사랑하고
그럭저럭 거문고와 책에 정력을 쏟으니
하늘이 도와줄 때를 기다리노라
 
유비는 노래가 그치기를 기다려 대청 위로 올라가 예절을 차려 인사했다.
이 비는 선생을 흠모한 지 오래인데 만나 뵐 인연이 없었습니다저번에 서원직이 선생을 추천해 저희가 삼가 신선의 장원에 왔으나 뵙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갔습니다이제 특별히 바람과 눈을 무릅쓰고 왔는데 높으신 모습을 뵙게 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소년은 황급히 답례하며 말했다.
장군은 혹시 저희 형을 만나시려는 유 예주 아닙니까?”

유비는 흠칫 놀랐다.
선생은 역시 와룡이 아닙니까?”

소년이 대답했다.
저는 와룡의 아우 제갈균입니다저희는 형제가 셋인데 큰형님 제갈근은 지금 강동 손중모의 막료로 계시고공명은 둘째 형님입니다.”

와룡은 지금 집에 계십니까?”

어제 최주평이 와서 바깥으로 한가히 놀이 나갔습니다.”

어디에 가셔서 한가히 노니십니까?”

제갈균의 대답은 지난번 아이의 말보다 더 기막혔다.
가끔은 쪽배를 저어 강물과 호수에서 노닐기도 하고가끔은 스님과 도사를 만나려고 산과 고개에 오르기도 하며가끔은 친구를 찾아 마을로 가는가 하면또 가끔은 거문고와 바둑을 즐기느라 동굴에 들어가기도 합니다그 오고 감을 미리 짐작할 수 없으니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유비는 이처럼 인연이 얇아서 두 번이나 현명한 이를 만나지 못하는구려!”

유비가 한탄 조로 말하자 제갈균이 위로했다.
잠깐 앉으시지요차를 올리겠습니다.”

장비는 또 짜증이 났다.
선생이 없다니 형님말에 오르시오!”

유비가 장비를 말렸다.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아가겠나?”

그리고 제갈균에게 물었다.
형님인 와룡 선생은 군사를 부리는 육도삼략에 익숙하시고 날마다 병서를 보신다고 하던데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제갈균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는 모릅니다.”

장비는 갑갑증이 났다.
그에게 물어 무얼 하오바람이 왱왱 불고 눈이 펑펑 쏟아지니 빨리 돌아가는 게 낫지.”

유비가 장비를 꾸짖는데 제갈균이 말했다.
형님이 계시지 않으니 감히 행차를 오래 머무르시게 하지 못하겠습니다다음에 답례할까 합니다.”

어찌 감히 선생께서 오시기를 바랍니까며칠 지나 이 비가 다시 오겠으니 종이와 붓을 빌려주시면 형님께 글을 남겨 유비의 성의를 알리겠습니다.”

유비 말에 제갈균이 문방사보를 내놓자 유비는 얼어붙은 붓에 입김을 불어구름 모양 꽃무늬 종이를 펴고 글을 썼다.

이 비가 오랫동안 높으신 이름을 우러러 두 번 뵈러 왔으나 헛일이 되어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허전한 마음을 어디에 비유하겠습니까이 비는 한나라 황실 후예로 그럭저럭 명예와 작위를 얻었는데엎드려 살펴보매 조정의 힘이 약해 위아래 순서가 뒤바뀌고 기강이 풀렸으며여러 영웅이 나라를 어지럽히고악당들이 임금을 속이니 심장과 쓸개가 다 갈라집니다비록 나라를 바로잡고 세상을 건질 성의는 있으나 실로 천하를 다듬을 방책이 모자랍니다우러러 바라건대 선생께서 어질고 자애로운 마음을 움직이시어 기꺼이 여망의 큰 재주를 펼치시고자방의 웅대한 슬기를 쓰신다면 천하가 참으로 행운이고 사직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먼저 이 글로 뜻을 알리고 이후에 다시 목욕재계하고 찾아와존귀한 얼굴을 뵈옵고 저의 하찮지만 지극한 정성을 털어놓을까 합니다이렇게 적으니 너그럽게 양해하시기 바랍니다건안 12년 12월 길일비가 두 번 절하고 씁니다.’

유비는 제갈균이 글을 받아 간직하는 것을 보고 문을 나섰다제갈균이 문밖에 나와 배웅해유비는 두 번 세 번 정성을 다해 인사하고 헤어졌다말에 올라 막 떠나려 하는데 아이가 울타리 밖을 바라보고 손짓하며 소리쳤다.
늙은 선생께서 오세요.”

유비가 보니 작은 다리 저쪽에서 두툼한 모자로 머리를 가리고 여우 털 갖옷으로 몸을 감싼 사람이 나귀를 타고 왔다뒤에는 푸른 옷을 입은 아이가 따르는데 술이 담겼음 직한 조롱박을 들고 눈을 밟으며 왔다.
다리를 건너자 그 사람이 시 한 수를 읊었다.
 
하룻밤 차가운 하늬바람 불더니
만 리 하늘 검붉은 구름 두껍게 끼었네
가없는 공중에는 눈송이 마구 날려
강산의 옛 모습 죄다 바꾸었구나
우러러 허공을 살펴보니
옥룡들이 어울려 싸우는 듯하네
비늘갑옷 분분히 흩날려
잠깐 사이 우주에 가득 차누나
나귀 타고 작은 다리 지나며
매화가 여위었다고 홀로 한숨짓는다
 
유비는 노래를 듣고 좋아했다.
이번에는 진짜 와룡이시다!”

굴러떨어지듯 말에서 내려 예절을 차리고 인사했다.
선생께서 추위를 무릅쓰시니 참으로 쉽지 않으시겠습니다유비가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랩니다!”

그 사람이 황급히 나귀에서 내려 답례하는데 등 뒤에서 제갈균이 말했다.
이분은 형님이 아니십니다형님의 장인 되시는 황승언 선생이십니다.”

유비는 은근히 실망했으나 드러내지 않았다.
방금 읊으신 구절이 지극히 고상하고 기묘하십니다.”

황승언이 대꾸했다.
이 늙은이는 사위 집에서 양부음》 책을 보다 이 한 편을 기억했소이다방금 다리를 지나다 우연히 울타리 사이의 매화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읊었는데귀한 손님께서 들으실 줄은 몰랐소이다.”

사위님을 만나셨습니까?”

유비가 묻자 황승언이 대답했다.
이 늙은이도 그를 보러 오는 길이외다.”

그 말에 유비는 더 할 말이 없어 신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눈보라가 더욱 기승을 부려 와룡강을 돌아보니 걱정스러워 속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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