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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2>

11. 제갈량은 슬기롭게 화용도 내다보고관운장은 의리 받들어 조조 놓아주다

by BOOKCAST 2022.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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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슬기롭게 화용도 내다보고
관운장은 의리 받들어 조조 놓아주다

 
장료는 화살 하나로 황개를 명중시켜 물에 빠뜨리고 조조를 구해 기슭으로 올라갔다조조가 말에 올라 달아나자 그 군사는 이미 크게 어지러워졌다.
한당이 연기를 무릅쓰고 불길을 뚫어 조조의 수군 영채를 들이치는데 별안간 군졸이 보고했다.
고물 키에서 웬 사람이 장군의 자를 높이 부릅니다.”

한당이 귀 기울여 들어보니 누군가 높이 소리쳤다.
의공(한당의 자)은 나를 구해주오!”

한당이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이는 황공복이다!”

급히 구해내니 황개는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한당이 화살을 이로 물어 뽑아내자 화살대만 나오고 살촉은 살 속에 박혀 나오지 않아급히 물에 젖은 옷을 벗기고 칼로 후벼 살촉을 파내고 깃발을 찢어 상처를 싸맸다전포를 벗어 황개에게 입히고 다른 배에 태워 큰 영채로 싣고 가 치료하게 하니황개는 헤엄을 잘 쳐서 추운 겨울에 갑옷을 입은 채 장강에 빠지고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날 장강에는 온통 불덩이가 굴러다니고 고함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었다왼쪽으로는 한당장흠의 두 패 군사가 적벽의 서쪽에서 쳐들어오고오른쪽으로는 주태진무의 두 패 군사가 적벽의 동쪽에서 쳐들어왔다한가운데로는 주유와 정보서성정봉이 거느린 대부대 배들이 모두 이르렀다.

불은 군사에 맞추어 호응하고 군사는 불의 위엄을 빌려 움직이니이는 바로 삼강의 수전이요 적벽의 격전이었다조조의 군사 가운데 창에 찔리거나 화살에 맞고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죽은 자가 얼마인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니 강에서의 격전은 더 말하지 않는다.
 
감녕은 채중에게 길을 안내하게 해 조조의 영채로 깊숙이 들어가멋도 모르는 채중을 단칼에 찍어 죽이고 말먹이 풀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멀찍이 중군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여몽 역시 십여 군데에 불을 질러 감녕과 호응했다반장과 동습 또한 각기 불을 지르고 고함을 치니 사방에서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조조와 장료가 100여 명 기병을 거느리고 불바다 속을 달려가는데 불이 붙지 않은 곳이 없었다한참 가는데 모개가 문빙을 구해 십여 명 기병을 이끌고 와조조가 길을 찾으라고 명하니 장료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림 땅이 널찍해서 갈 수 있습니다.”

조조는 곧장 오림으로 달려갔다한참 길을 다그치는데 등 뒤에서 한 떼의 군사가 쫓아와 높이 외쳤다.
역적 조조는 달아나지 마라!”

불빛 속에서 여몽의 깃발이 드러나조조는 군사를 재촉하면서 장료를 남겨 뒤를 막게 했다그런데 앞에서 또 횃불들이 일어나며 산골짜기에서 한 대의 군사가 몰려나와 높이 외쳤다.
능통이 여기 있다!”

조조는 간이 깨지고 쓸개가 부서지는 듯했다바로 이때 한 떼의 군사가 비스듬히 달려와 높이 외쳤다.
승상께서는 당황하지 마십시오서황이 여기 있습니다!”

조조의 군사가 한바탕 싸우고 길을 빼앗아 북쪽으로 달려가자 한 대의 군사가 산비탈 앞에 주둔해 있었다원소의 수하에 있다 항복한 장수 마연과 장의가 3000명 북방의 군사를 거느리고불길이 하늘을 밝히는 것을 보고 감히 움직이지 못하다 조조를 맞이한 것이었다.

조조는 두 장수에게 1000명 군사를 이끌고 길을 뚫게 하고 나머지 군사는 자신을 보호하게 했다힘이 빠지지 않은 군사를 얻으니 조조는 좀 든든해졌다마연과 장의가 기병을 거느리고 나는 듯이 달려가니 십 리도 못 가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일면서 한 떼의 군사가 나타나앞장선 장수가 높이 외쳤다.
나는 동오의 감흥패다!”

마연이 맞서 싸우려다 감녕의 칼에 맞아 땅에 떨어지고장의가 창을 꼬나들고 나갔으나 감녕이 버럭 호통 치며 창을 내찔러 미처 손을 놀려보지도 못하고 죽어 버렸다후군이 나는 듯이 달려가 조조에게 보고했다.

조조는 이때 합비에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며 손권이 그 길목을 막은 줄을 몰랐다강에서 불빛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손권은 동오의 군사가 이겼음을 알고 곧 육손에게 불을 질러 신호를 올리게 했다태사자가 신호를 보고 육손과 군사를 합쳐 공격하니 조조는 이릉을 향해 달려가다 길에서 장합을 만나 뒤를 막게 했다닫는 말을 채찍질해 밤새껏 달리다 돌아보니 불빛이 차츰 멀어져 조조는 그제야 마음이 진정되어 물었다.
여기는 어디냐?”

형주에서 항복한 장수들이 대답했다.
여기는 오림의 서쪽이고 의도의 북쪽입니다.”

조조가 살펴보니 나무가 우거지고 산천이 험한 곳이었다조조가 말 위에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껄껄 웃어대니그 웃음이 그칠 줄 몰라 장수들이 물었다.
승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크게 웃으십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웃는 게 아니라 다만 주유는 꾀가 적고 제갈량은 슬기가 모자라다고 웃는 것이오만약 내가 군사를 부린다면 미리 여기에 한 떼의 군사를 매복시키겠소그렇게 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겠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쪽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리면서 불빛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조조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한 떼의 군사가 곁에서 쳐나오면서 높이 외쳤다.
조자룡이 제갈 군사의 명을 받들고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조조는 서황과 장합에게 조운을 맞아 싸우게 하고 연기와 불을 무릅쓰고 달아났다병법에 돌아가는 군사는 치지 말고 궁지에 빠진 도적은 쫓지 마라고 이른 것을 떠올린 조운이 쫓지 않고 깃발만 빼앗아조조는 몸을 뺄 수 있었다.

날이 부옇게 밝아오는데 검은 구름이 땅을 덮었다동남풍은 아직도 그치지 않는데 별안간 소나기가 억수로 퍼부어 갑옷이 푹 젖었다일행이 비를 무릅쓰고 나아가니 모두 비에 젖어 마른 곳이 한 치도 없었다아침이 되자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멎었다.

장졸들이 모두 굶주려 조조의 명령으로 군사들이 마을에 가 식량을 빼앗아 와 불씨를 찾아 막 밥을 짓는데 뒤에서 한 무리 군사가 달려와 조조는 몹시 당황했다그런데 다행히 이전과 허저가 모사들을 보호하고 와서 조조는 대단히 기뻐 군사들에게 길을 가라고 이르고 물었다.
저 앞은 어디 땅이냐?”

한쪽은 남이릉으로 가는 큰길이고 한쪽은 북이릉으로 가는 산길입니다.”

어느 길로 가면 남군강릉과 가까우냐?”

북이릉으로 해서 호로구를 지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조조가 북이릉으로 가게 해 호로구에 이르니 장졸들이 모두 굶주리고 맥이 풀려 걸음을 걷지 못했다말도 지칠 대로 지쳐 쓰러져 죽는 놈이 많았다조조가 잠시 쉬라고 이르자 장졸들은 말에 솥을 달고 온 사람도 있고 마을에서 빼앗은 쌀도 있어산 옆의 마른 곳을 골라 밥을 짓고 말고기를 베어 구워 먹었다사람들은 모두 젖은 옷을 벗어 바람에 말리고 말들은 죄다 안장을 벗기고 들판에 내몰아 풀뿌리를 뜯게 하는데나무가 듬성듬성한 숲에 앉은 조조가 하늘을 우러르며 또 허허 웃어댔다.
방금 승상께서 주유와 제갈량을 웃으시다 조자룡을 이끌어내고 숱한 군사를 잃으셨는데 지금 어찌하여 다시 웃으십니까?”

나는 제갈량과 주유가 아무래도 슬기와 꾀가 부족하다고 웃소만약 내가 군사를 부린다면 여기에도 한 떼의 군사를 매복해 편안히 앉아 지친 적을 기다리게 했을 것이오그러면 우리가 설사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심하게 다치는 것은 면하지 못할 것이오그들이 이것을 내다보지 못했으니 내가 웃는 것이오.”

이때 전군과 후군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조조는 깜짝 놀라 갑옷을 버리고 말에 오르고 군사들은 말을 거두지 못한 자들이 많았다어느새 사방에서 불길과 연기가 솟아 한데 합치는데 두 산 사이의 길목에서 한 무리 군사가 늘어서니장비가 긴 창을 가로 들고 말 위에서 높이 외쳤다.
조조 도적놈은 어디로 가느냐!”

조조의 장수들은 장비를 보고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허저가 안장 없는 말을 타고 장비와 싸우러 달려가니 장료와 서황도 말을 달려 협공했다양쪽 군사들이 어지러이 싸워 한 덩이로 엉키는데 조조가 먼저 말을 몰아 몸을 빼자 장수들도 제각기 몸을 빼어 달아났다장비가 뒤에서 쫓아왔으나 조조가 죽기 살기로 구불구불 내달려 차츰 멀어졌다장수들을 돌아보니 거의 다 상처를 입었다.
한참 길을 가는데 군사가 아뢰었다.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으니 어느 길로 갈지 승상께서 정해주십시오.”

어느 길이 가까우냐?”

큰길은 좀 평평한데 50여 리 더 멀고오솔길은 화용도로 가는데 가깝기는 하지만 땅이 좁고 길이 험하며 구덩이가 울퉁불퉁해 가기 힘듭니다.”

조조가 군사를 보내 산에 올라가 살펴보게 하자 돌아와 보고했다.
오솔길의 산 옆에는 몇 군데 연기가 일어나지만 큰길 쪽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조조가 곧 화용도로 가는 오솔길로 가게 하니 장수들이 물었다.
연기가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군사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 길로 가십니까?”

조조가 설명했다.
병서에 허하면 실하게 하고실하면 허하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제갈량은 꾀가 많아 일부러 사람을 시켜 산속의 후미진 곳에 연기를 일으켜 내 군사가 감히 산길로 가지 못하게 하고오히려 큰길에 군사를 매복하고 우리를 기다릴 것이오내가 이미 다 헤아렸으니 그 계책에 걸릴 수 있겠소?”

장수들이 입을 모아 칭송했다.
승상의 신묘하신 헤아림은 사람들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조조가 장졸들을 이끌고 화용도로 가니 사람들은 배가 고파 쓰러지기 직전이고 말은 한없이 지쳐 곧 넘어지려 했다머리가 그슬리고 이마가 데인 자들은 겨우 지팡이를 짚고화살에 맞고 창에 찔린 자들은 간신히 발을 움직였다갑옷은 푹 젖고 병기와 깃발은 정연하지 못했다이릉 길에서 급히 쫓기다 보니 태반이 맨말을 타면서 안장이며 고삐며 옷들을 죄다 내버린 것이다한겨울의 무서운 추위 속에 고생이 말할 수 없었다.
화용도를 향해 십 리도 가지 못해 앞에서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앞에는 산이 후미지고 길이 좁은데 아침에 비가 내려 구덩이에 물이 고였습니다그 물이 흐르지 않아 진흙탕에 말발굽이 빠져 나아갈 수 없습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군사는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어찌 진흙탕 때문에 가지 못하겠느냐!”

명령을 내려 늙고 약하거나 상처를 입은 자들은 뒤에서 천천히 걷게 하고건장한 자들은 흙을 나르고 나무를 묶으며 풀을 옮기고 갈대를 날라 구덩이들을 메우게 했다.
즉시 움직여라명령을 어기는 자는 목을 치겠다!”

엄한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는 모두 말에서 내려 나무를 찍고 참대를 쓰러뜨려 산길을 메웠다조조는 뒤에서 쫓아올까 두려워 장료와 허저서황에게 100명 기병을 이끌고 감독하게 하는데 꾸물거리는 자들은 당장 목을 베게 했다군졸들이 배가 고프고 지쳐 땅에 쓰러지는데조조의 호령으로 사람과 말이 쓰러진 자들을 짓밟으며 나아가니 죽은 자가 얼마인지 셀 수 없었다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자 조조가 화를 냈다.
살고 죽는 것은 운명에 달렸거늘 울긴 어찌 우느냐다시 우는 자가 있으면 당장 목을 친다!”

군사들은 세 몫으로 나뉘어 한 몫은 뒤에 떨어지고한 몫은 구덩이를 메우며한 몫은 조조를 따랐다험준한 곳을 지나자 길이 좀 평탄해졌다조조가 돌아보니 겨우 300여 명 기병이 따라오는데 옷이나 갑옷을 제대로 차려입은 자는 하나도 없었다조조가 빨리 가자고 재촉하니 장수들이 애원했다.
말이 모두 지쳤으니 잠깐 숨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형주로 달려가 쉬어도 늦지 않소.”

또 몇 리를 가지 못해 조조가 말 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허허 웃었다.
사람들은 모두 주유와 제갈량이 슬기가 넉넉하고 꾀가 많다고 하던데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능한 무리들이오이번에 진 것은 내가 적을 깔보았기 때문이오만약 이곳에 군사를 약간만 매복시켰더라면 우리가 모두 꼼짝 못하고 밧줄에 묶이지 않겠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포 소리가 !’ 울리더니 500명 칼잡이들이 나타나 벌려 섰다앞장선 대장이 청룡도를 들고 적토마에 올라 가로막으니 다름 아닌 관우였다조조의 군사는 그만 넋이 허공에 달아나고 간이 떨어져 서로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조조가 사람들 속에서 말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기를 무릅쓰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자 장수들이 어려워했다.
사람은 겁을 먹지 않더라도 말이 힘이 다했으니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에서도 정욱이 꾀를 냈다.
욱은 평소에 운장이 윗사람에게는 거만하게 굴지만 아랫사람은 차마 깔보지 못하고 강한 자를 업신여기지만 약한 자는 못살게 굴지 않으며은혜와 원망이 분명하고 신용과 의리를 중히 여기는 것을 잘 압니다승상께서는 옛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니 지금 친히 나서시어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면 이 난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에 조조가 나아가 인사의 뜻으로 몸을 약간 굽히며 말을 걸었다.
장군은 헤어진 다음 별 탈 없으시오?”

관우도 말 위에서 몸을 약간 굽히더니 대답했다.
관 아무개가 제갈 군사의 명령을 받들고 여기서 승상을 기다린 지 오랩니다.”

조조가 싸움에 지고 형세가 위급해 여기로 왔는데 갈 길이 없어졌소장군은 옛날의 정을 무겁게 여기기 바라오.”

옛날 관 아무개는 비록 승상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지만 이미 안량의 목을 자르고 문추를 베며백마의 에움을 풀어 보답했습니다오늘 일이야 어찌 감히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공무를 폐하겠습니까?”

조조가 또 말했다.
다섯 관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베던 때를 아직 기억하시오대장부는 신의를 무겁게 여기는 법이오장군은 춘추를 깊이 꿰뚫었는데유공지사가 자탁유자를 쫓은 일을 모르시오?”

옛글에 밝은 조조답게 관우가 좋아하는 춘추시대 이야기를 들먹였다활 솜씨로 소문난 자탁유자가 정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치자 위나라에서는 유공지사를 장수로 삼아 맞서 싸우게 했다정나라 군사가 크게 패해 유공지사가 쫓아가는데 자탁유자를 따르는 사람이 재촉했다.
위나라의 군사가 가까이 다가옵니다대부께서는 어서 활을 쏘십시오.”

오늘 내가 병이 있어 활을 들지 못하겠다추격하는 군사가 따라오면 나는 틀림없이 죽겠구나!”

수레에 앉아 달아나는 자탁유자를 위나라 군사가 거의 따라잡았다이에 자탁유자가 물었다.
나를 쫓는 자는 누구냐?”

위나라 장수 유공지사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나겠구나!”

자탁유자가 안도의 숨을 내쉬자 사람들이 이상해했다.
유공지사는 위나라의 으뜸가는 명궁이고대부와 이전에 교분이 없는데 어찌 살아난다고 하십니까?”

나와 직접 교분은 없지만 그는 윤공지타에게 활을 배운 적이 있다윤공지타는 바로 나의 제자로 매우 정직한 사람이니 그 제자도 반드시 바른 사람일 것이다그렇다면 그는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유공지사가 쫓아와 소리쳤다.
어르신께서는 어이하여 활과 화살을 드시지 않습니까?”

오늘 내 팔이 아파 활을 잡지 못하겠네.”

그러자 유공지사가 말했다.
제가 옛날에 윤공지타에게 활 쏘는 법을 배웠는데그는 어르신께 재주를 배웠습니다저는 차마 어르신에게서 나온 재주로 도리어 어르신을 해치지는 못하겠습니다비록 이러하나 오늘의 일은 임금의 일이니 감히 완전히 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유공지사가 살촉을 뽑고 화살을 네 대 쏘고 돌아가니 자탁유자는 목숨을 부지하고 정나라로 돌아갔다맹자》 <이루하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의리를 산처럼 무겁게 여기는 관우는 옛날 조조가 베푼 은혜가 떠오르고 정이 되살아나는데다섯 관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벤 일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그때도 조조가 놓아주지 않았던가그런 데다 가만히 살펴보니 조조의 군졸들이 모두 당황하고 두려워 눈물을 흘렸다더욱이 차마 그들을 죽일 수 없어 관우는 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리고 군사들에게 명했다.
사방으로 벌려 서라.”

이는 분명 놓아주겠다는 뜻이라 조조는 장수들과 함께 일제히 말을 달려 그의 곁을 지나가버렸다관우가 되돌아서자 조조는 이미 지나간 다음이고아직 지나가지 못한 군사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 울면서 땅에 엎드려 절했다관우는 한층 측은한 마음이 들어 차마 죽일 수 없어 머뭇거리는데 장료가 말을 달려 이르렀다관우는 장료를 보자 또 옛정이 솟아나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는 모두 놓아 보냈다.


화용도를 벗어난 조조가 골짜기 어귀에 이르러 따라오는 장졸들을 돌아보니 겨우 기병 27명이 남았을 뿐이었다날이 저물어 남군에 가까이 가는데 횃불들이 환하게 길을 밝히면서 한 떼의 인마가 길을 가로막았다.
내 목숨이 끝장났구나!”

조조가 깜짝 놀라는데 말 타고 순찰하는 군사가 앞으로 달려와그제야 조인의 군사임을 알아보고 마음이 놓였다조인이 조조를 맞아 이야기했다.
싸움에 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감히 멀리 찾아 나설 수 없어 부근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마터면 자네와 만나지 못할 뻔했네.”

조조가 무리를 이끌고 남군에 들어가 쉬니 뒤이어 장료도 도착해 관우의 덕을 이야기했다패잔군이 장수들을 따라 속속 남군으로 돌아와 조조가 장교들을 점검해보니 상처를 입은 자가 극히 많았다조조는 모두 쉬며 치료하게 했다.

조인이 술상을 차려 침울한 마음을 풀어주는데 조조는 느닷없이 하늘을 우러러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모사들이 모두 자리에 있다 물었다.
승상께서는 호랑이의 굴에서 빠져나오실 때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셨는데이제 성안에 이르러 사람은 이미 음식을 먹고 말도 먹이를 얻게 되었습니다지금 바로 군사를 정돈해 원수를 갚아야 하거늘 어이하여 오히려 통곡하십니까?”

내가 곽봉효를 생각하고 우는 것이오만약 봉효가 살아 있었다면 절대로 내가 이처럼 큰 손실을 입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오!”

조조는 가슴을 탁탁 치며 목 놓아 울었다.
슬프구나봉효여아프구나봉효여아쉽구나봉효여!”

모사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부끄러워했다.

이튿날 조조가 조인을 불렀다.
내가 잠시 허도로 돌아가 군사를 정돈하고 반드시 다시 와 원수를 갚을 것이니 자네는 남군을 잘 보존하게나에게 계책이 하나 있어 비밀히 남겨둘 테니 급하지 않으면 열지 말고 급하게 되면 열어보게이 계책에 따라 움직이면 동오는 감히 남군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걸세.”

조인이 물었다.
합비와 양양은 누가 지킬 수 있겠습니까?”

형주는 자네에게 맡겼고양양은 이미 하후돈에게 지키게 했네합비는 가장 요긴한 땅이라 장료를 주장으로 삼고 악진이전을 부장으로 해서 지키게 했네무슨 움직임이 있으면 나는 듯이 달려와 보고하게.”

조조는 군사를 점검해 허도로 돌아갔다형주에서 항복한 사람들도 모두 허도에서 쓰려고 데려갔다조인은 조홍을 보내 이릉을 지키게 해남군과 호응하는 기세를 갖추면서 주유에 대비했다.
 
한편조조를 놓아준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니 여러 길의 군사들이 말이며 병기며 물자며 군량 따위를 많이 얻어 하구에 돌아와 있었다관우 혼자만 사람 하나 말 한 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마침 대청에서 승전을 축하하던 제갈량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고 관우를 맞이했다.
장군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공로를 세워 천하 사람들을 위해 큰 해를 없앴으니 먼저 축하를 드리겠소!”

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갈량이 또 말했다.
장군은 혹시 우리가 멀리 나와 마중하지 않았다고 불쾌해하시오?”

제갈량은 관우 곁의 사람들을 나무랐다.
너희는 어찌하여 먼저 와 보고하지 않았느냐?”

관우가 입을 열었다.
관 아무개는 특별히 죽여 달라고 청하러 왔소.”

조조가 혹시 화용도로 오지 않았소?”

분명히 그곳으로 왔는데관 아무개가 무능해 그가 몸을 빼고 말았소.”

제갈량이 또 물었다.
어떤 장수들을 잡아 왔소?”

하나도 잡지 못했소.”

제갈량이 매섭게 말했다.
이는 장군이 조조의 옛날 은혜를 생각해 일부러 놓아준 것이오이미 군령장을 받아두었으니 군법에 따르지 않을 수 없소.”

그는 무사들에게 호령해 관우를 장막 밖으로 끌어내 목을 치라고 명했다.
 
이야말로
 
죽음을 무릅쓰고 지기에게 보답하니
의로운 이름 천 년 후에도 우러르네
 
관우의 목숨은 어떻게 될까?
 

싸움은 주유가 하고 성은 유비 차지
 
조인은 동오군사와 크게 싸우고
제갈량은 처음 주공근 화 돋우다
 
제갈량이 관우를 죽이려 하자 유비가 나서서 부탁했다.
옛날 우리 세 사람이 결의할 때생사를 같이 하겠노라고 맹세했소지금 운장이 비록 군법을 범했지만 차마 전날의 맹세를 저버릴 수는 없으니 잠시 잘못을 적어두었다 그가 앞으로 공로를 세워 죄를 씻게 해주기 바라오.”

다른 사람들도 애원해 제갈량은 관우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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