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본삼국지 2>

09. 만사를 갖추었으나 동남풍이 없구나

by BOOKCAST 2022. 3. 8.
반응형

 


 

바람의 방향을 보고 주유가 까무러쳐서, 사람들이 급히 구해 장막으로 돌아가니 장수들이 찾아와 놀라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강북에 100만 무리가 호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먹이를 삼키려고 하는데 도독께서 이렇게 정신을 잃으시면 어떻게 하오?”

장수들은 황급히 사람을 보내 오후에게 알리고 의원을 청해 치료했다. 주유가 쓰러지자 노숙은 울적하고 답답해 제갈량을 찾아갔다.
“공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제갈량이 물었다.
“이건 조조의 복이고 강동의 화요.”

노숙이 대답하니 제갈량은 웃었다.
“공근의 병은 이 양이 치료할 수 있소.”

“정말 그렇게 되면 나라가 참으로 다행이겠소!”

노숙은 바로 제갈량과 함께 주유를 보러 갔다. 노숙이 먼저 장막에 들어가 보니 주유는 이불을 감싸고 누워 있었다.
“도독의 병세는 어떠하시오?”

“가슴과 배가 안에서 무엇이 휘젓듯이 아프고 자꾸만 까무러치오.”

“무슨 약을 드셨소?”

“속이 메슥거려 약이 내려가지 않소.”

“방금 공명에게 가보았더니 그가 도독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소. 지금 장막 밖에 와 있으니 불러들여 치료하면 어떻겠소?”

주유가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아 제갈량을 모셔 들이게 하니 그가 들어와 말했다.
“며칠간 도독의 얼굴을 뵙지 못했는데, 귀하신 몸이 불편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화와 복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으니 어찌 스스로 장담하겠소?”

제갈량이 웃었다.
“또한 ‘하늘의 풍운조화는 헤아릴 수 없다’는 말도 있지요. 사람이 역시 어찌 헤아리겠소이까?”

그 말을 듣자 주유는 낯빛이 변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제갈량이 물었다.
“도독께서는 가슴속에 번뇌가 쌓인 듯한 느낌이 드십니까?”

“그렇소.”

“반드시 시원한 약으로 풀어야 합니다.”

“이미 시원한 약을 먹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소.”

“반드시 먼저 그 기(氣)를 다스려야지요. 기가 순하게 되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자연히 낫습니다.”

【제갈량이 ‘하늘의 풍운조화’니 ‘시원한 약’이니 ‘기’를 들먹이자 주유는 생각되는 바가 있었다.】

“기를 순하게 하려면 어떤 약을 먹어야 하오?”

“이 양에게 처방이 있으니 곧 도독의 기가 순해지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의 가르침을 바라오.”

주유가 청하자 제갈량은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더니 사람들을 물리치고 가만히 글을 썼다.
‘조조를 깨뜨리려면 불로 공격해야 하는데 만사는 모두 갖추었으나 다만 동남풍이 모자라는구나.’
제갈량이 글을 건네며 말했다.
“이것이 도독께서 앓고 있는 병의 뿌리입니다.”

주유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명은 참으로 신선이다! 벌써 내 걱정거리를 알았구나! 그러니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웃으며 청했다.
“선생이 이미 내 병의 뿌리를 알았으니 어떤 약으로 고쳐야 하오? 일이 위급하니 곧 가르쳐주기를 바라오.”

“이 양은 비록 재주 없으나 일찍이 기이한 사람을 만나 기문둔갑의 천서(天書)를 전해 받았습니다. 그래서 위로는 바람을 부르고 비를 불러올 수 있고, 귀신을 부리고 신을 내몰 수 있습니다. 중간으로는 진을 치고 군사를 늘여 세워 백성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며, 아래로는 길함을 찾아가고 흉함을 피해 자기 몸을 온전하게 보존하여 해를 끼치는 일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도독께서 동남풍을 쓰시겠다면 남병산에 단을 하나 쌓으십시오. 그 단의 이름은 칠성단이라 하니 높이는 9자이고 3층으로 짓되, 120명이 깃발을 들고 에워싸게 해야 합니다. 이 양이 단 위에서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부는 세찬 동남풍을 빌어 도독이 군사를 부리는 데 도움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주유는 미심쩍었으나 밑져야 본전이었다.
“사흘 낮 사흘 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하룻밤만 세찬 바람이 불면 대사가 이루어지오. 그런데 일이 눈앞에 닥쳤으니 늦추어서는 아니 되오.”

“동짓달 20일 갑자 날에 바람을 빌려 22일 병인 날에 멎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갈량의 말에 주유는 크게 기뻐 후닥닥 일어났다. 곧 명령을 내려 건장한 군사 500명을 내어 남병산에 단을 쌓게 하고, 120명 군사에게 깃발을 들고 단을 지키면서 명령을 듣게 했다.

제갈량은 주유와 헤어져 노숙과 함께 남병산으로 갔다. 지세를 살펴보더니 동남쪽의 붉은 흙을 가져다 단을 쌓게 하니 단의 둘레는 240자에 층마다 높이가 3자이니 모두 9자였다.

제갈량은 동짓달 20일 갑자 날의 좋은 시간을 골라 목욕재계하고 도복을 입고 맨발 바람에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단 앞에 와서 노숙에게 일렀다.
“자경은 공근을 도와 군사를 움직이시오. 만약 이 양이 바람을 빌었는데 효험이 없더라도 나무라지 마시고, 일단 동남풍이 일어나면 할 일을 하시오.”

노숙이 돌아가고 제갈량은 단을 지키는 장졸들에게 당부했다.
“함부로 자기 방위를 떠나서는 아니 된다. 머리를 맞대거나 귀에 입을 대고 수군거려서도 아니 된다. 실수해 소리를 질러서도 아니 된다. 놀라거나 이상하다고 떠들어서도 아니 된다. 명령을 어기는 자는 목을 치겠다!”

제갈량은 천천히 단에 올라 방위를 살펴보고 자리를 정하더니, 향로에 향을 꽂아 불을 붙이고 물그릇에 물을 붓고는 하늘을 우러러 가만히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단에서 내려와 장막에 들어가 잠깐 쉬더니 군사들에게 서로 차례를 바꾸어 밥을 먹게 했다. 제갈량이 하루에 세 번 단에 오르고 세 번 내려오는데 동남풍은 보이지 않았다.

주유는 정보와 노숙을 비롯한 사람들을 장막에 청해 동남풍을 기다리게 했다. 일단 바람이 불기만 하면 곧 군사를 움직여 진군할 채비를 하면서, 오후 손권에게 사람을 보내 뒤를 받쳐달라고 요청했다.
주유가 장막 안에 앉아 일을 의논하는데 오후의 사자가 와서 보고했다.
“오후께서는 배를 영채에서 85리 떨어진 곳에 정박하시고 도독의 좋은 소식만 기다리십니다.”

주유는 노숙에게 말해 여러 대의 장수와 군사들에게 두루 알리게 했다.
“배와 병장기, 돛과 노 따위를 점검하고 명령이 떨어지면 한 시도 늦추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 명령을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다스린다.”

명령을 받은 장졸들은 저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는 손바닥을 썩썩 비비면서 싸울 채비를 했다. 그러나 22일이 차츰 저무는데도 날씨는 여전히 맑고 미풍마저 불지 않았다. 주유가 노숙에게 말했다.
“공명의 말이 황당하오. 한겨울에 어떻게 동남풍을 부르겠소?”

그러나 노숙은 여전히 제갈량을 믿었다.
“내가 헤아려보면 공명은 반드시 거짓말을 하지 않소.”

한밤중이 지나자 별안간 바람 소리가 윙윙 일어나며 깃발이 움직였다. 주유가 장막에서 나가 보니 깃발 끝이 서북쪽으로 날리면서 눈 깜빡할 사이에 동남풍이 세차게 불어 주유는 질겁했다.
“이 사람은 하늘의 조화를 빼앗는 방법과 귀신이 짐작하지 못할 술법이 있으니 그대로 두었다가는 동오의 화근이 되고, 주유의 큰 걱정거리가 된다. 일찌감치 죽여 뒷날 걱정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유는 급히 장막 앞의 두 장수 정봉과 서성을 불렀다.
각기 100명을 데리고 가되, 서성은 강으로 가고 정봉은 땅으로 가서 모두 남병산 칠성단 앞에 이르러 아무 말도 묻지 말고 제갈량을 잡아서 목을 쳐라. 그리고 그 머리를 들고 와서 상을 청하라.”

두 장수는 명령을 받들고 떠났다. 서성이 배에 타니 칼잡이 100명이 노를 젓고, 정봉이 말에 오르니 활잡이 100명이 각기 군마를 다그쳤다. 남병산은 큰 영채에서 겨우 10여 리여서 두 패의 군사는 길에서 마침 맞받아 일어나는 동남풍을 만났다. 정봉의 기병이 먼저 남병산에 이르니 희미하게 새벽이 밝아오는데 깃발을 든 군졸들이 바람을 받으며 단에 서 있었다.
제갈량은 방금 단을 내려갔습니다.”

정봉이 부랴부랴 내려가 찾아보는데 서성의 배가 이르니 강변의 군사가 보고했다.
어젯밤에 쾌속선 한 척이 저 앞의 여울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제갈량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배에 타자 물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정봉과 서성은 물과 뭍으로 나뉘어 쫓아갔다. 서성의 명으로 배의 돛이 한껏 올라가서 바람을 받아 배가 재빨리 움직였다. 저 앞에 배가 보이는데 그다지 멀지 않아 서성이 뱃머리에 서서 높이 외쳤다.
제갈 군사는 가지 마시오! 도독께서 청하시오!”

제갈량은 고물에 서서 껄껄 웃었다.
도독께 군사나 잘 부리라 전하시오. 이 양은 하구로 잠시 돌아갈 터이니 뒷날 다시 만나 뵐까 하오.”

서성은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잠깐만 멈추어 서십시오. 요긴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속을 제갈량이 아니었다.
내가 이미 도독이 나를 용납하지 못해 반드시 사람을 보내 해칠 줄을 헤아렸소. 그래서 미리 조자룡에게 와서 맞이하게 했으니 장군은 쫓아올 필요가 없소.”

서성은 앞의 배에 돛이 없어 속도가 느린 것을 넘보고 한사코 쫓아갔다. 배가 바짝 다가드는데 활을 든 조운이 시위에 살을 먹이고 고물에 서서 높이 외쳤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명령을 받들고 특별히 군사를 맞이하러 왔는데 네가 어찌하여 쫓아오느냐? 원래 화살 한 대에 너를 쏘아 죽이려 했으나 그러면 양쪽의 좋은 사이가 틀어질 테니 너에게 내 재주만 보여주겠다!”

조운이 시위를 놓으니 윙 날아온 화살은 바로 서성이 탄 배의 돛 줄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돛이 주르르 떨어져 배는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물살에 밀려 옆으로 돌아섰다. 그것을 본 조운이 배의 돛을 모두 올리게 해 바람을 타고 가버리니 그 배는 새가 나는 듯이 움직여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언덕 위에서 정봉이 서성을 불러 말했다.
제갈량의 신묘한 지략과 기이한 계책은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네. 게다가 만 사람이 당하지 못할 용맹을 지닌 조운이 그를 보호하고 있네. 자네는 그가 당양 장판파에서 싸운 일을 아는가? 우리는 그냥 돌아가 보고를 올리면 그만일세.”

두 사람이 돌아가 제갈량이 미리 조운과 약속해 가버렸다고 하자 주유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이처럼 슬기와 꾀가 뛰어나니 내가 아침저녁으로 편안히 보내지 못하겠다!”

노숙이 옆에서 말했다.
먼저 조조를 깨뜨린 다음 생각합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