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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2>

06. 승상! 화살을 고맙게 받았소이다!

by BOOKCAST 20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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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은 슬그머니 가볍고 빨리 움직이는 배 20척을 내어 각기 30여 명씩 배치하고, 장막과 풀 단 따위도 갖추어 제갈량이 쓰도록 했다. 그런데 제갈량은 첫날과 두 번째 날은 움직이지 않고, 사흘째 되는 날 한밤중에야 가만히 노숙을 배로 청했다.
특히 자경과 함께 가서 화살을 가져오려 하오.”

제갈량은 확실한 설명을 미룬 채 20척 배를 긴 밧줄로 잇게 하고 북쪽 기슭을 향해 나아갔다.
이날 밤 장강에는 안개가 한층 심해 얼굴을 맞대고도 서로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자욱한 안개였다. 그래서 옛사람이 두꺼운 안개가 강에 드리우다라는 부()를 지었는가.
 
크도다, 장강이여! 서쪽으로는 민산과 아미산에 닿았고 남쪽으로는 삼오(장강 하류)의 땅을 통제하며 북쪽으로는 구하(황하 아홉 지류)를 아울렀구나. 백 갈래 강물을 모아 바다로 들어가고, 만고의 세월을 거쳐 파도를 일으키네. 그리하여 용백(전설 속 거인)과 해약(바다의 신), 강비(여신), 수모(물의 여신) 따위가 있는가 하면 긴 고래는 1000길에 이르고 천오(강물의 신)는 머리가 아홉 개나 되니, 귀신이며 괴물이며 이상한 것들이 모두 여기에 모였더라. 대체로 여기는 귀신들이 의지하는 곳이요, 영웅들이 싸우고 지키는 곳이더라. 때는 음양이 어지러워졌고 어둠과 밝음이 갈라지지 않았다. 넓은 하늘이 한 빛깔이 되어 놀라는데 불시에 안개가 사방에서 모여든다. 비록 장작에 불을 지피더라도 앞을 볼 수 없고 다만 징 소리 북소리만 들리누나. 처음에는 하늘땅이 막 이루어질 때처럼 어슴푸레하여 겨우 남산의 표범을 감추더니 차차 꽉 차면서 북해의 곤(전설 속 대어)을 홀리려 하는구나. 위로는 높은 하늘에 닿고 아래로는 두꺼운 땅에 드리우니 머나멀고 넓고 넓어 끝이 없더라. 수고래, 암고래는 물에서 나와 파도를 일으키고 교룡은 깊은 물에 잠기어 숨을 내쉰다. 또 장마철에는 축축해지고 봄날에는 음산해 추위를 자아내나니 어둡고 흐리고 아득하구나. 동쪽으로는 시상의 기슭이 사라지고 남쪽으로는 하구의 산이 없어진다. 싸움배 1000척은 모두 바위틈 사이에 빠지고 고깃배 하나가 놀랍게도 파도 위를 넘나든다. 심지어 푸른 하늘에 빛이 없어 아침 해가 빛깔을 잃고 대낮이 누르스름하게 흐려지는가 하면 붉은 산이 푸른 물빛으로 변한다. 홍수를 다스린 대우(전설 속 사람)의 슬기로도 그 깊고 얕음을 잴 수 없고, 눈이 밝은 이루(전설 속 사람)의 시야도 어찌 지척을 가려보랴? 이리하여 풍이(물의 신)는 파도를 그치고, 병예(바람의 신)는 일을 마친다. 물고기와 자라는 자취를 감추고, 새와 짐승들도 종적을 숨긴다. 신선이 사는 봉래의 섬이 사이가 끊어지고, 창합(전설 속 하늘 문)의 궁전을 가만히 감싼다. 갑작스레 내달리니 소나기가 올 듯하고, 분분히 잡다하게 떨어지니 찬 구름이 어울리는 듯하다. 그 속에는 독사가 숨겨졌으니 안개 때문에 병을 일으키는 기운으로 변하고, 안에는 요귀가 감추어져 안개를 믿고 화가 되더라. 질병과 재앙을 인간 세상에 내리고 바람과 먼지를 장성 밖에 일으키더라. 작은 백성이 만나면 젊은 나이에 일찍 죽거나 다치고, 높은 어른이 만나면 감개무량하더라. 대체로 원기를 되돌려 태초 시대로 돌아가게 하고 천지를 아울러 대자연으로 만드누나.
 
이날 밤 새벽이 가까울 무렵 조조 수군 영채에 다가가자 제갈량이 배를 돌렸다. 뱃머리는 서쪽으로 하고 고물은 동쪽으로 하여 한 줄로 늘여놓더니 배 위에서 북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게 했다. 노숙은 깜짝 놀랐다.
조조 군사가 일제히 나오면 어떻게 하오?”

제갈량은 빙긋이 웃었다.
내가 헤아려보건대 조조는 반드시 겹겹의 안개 안에서 감히 나오지 못하오. 우리는 그저 술이나 따르면서 즐겁게 노닐다 안개가 걷히면 돌아갑시다.”

북소리와 고함이 들리자 모개와 우금은 부리나케 조조에게 보고했다. 조조는 수군이 정연하지 못해 몸소 강변에 와서 지휘하고 군사를 배치하다가 명령을 전했다.
두꺼운 안개가 강을 덮었는데 적이 갑자기 왔으니 반드시 매복이 있다. 절대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수군에 활과 쇠뇌를 많이 배치해 어지러이 화살을 날리도록 하라.”

또 뭍의 영채에서 장료와 서황을 불러 활과 쇠뇌를 쓰는 군사를 3000명씩 이끌고 급히 와서 수군을 도와 화살을 날리게 했다. 모개와 우금이 벌써 활과 쇠뇌 군사를 앞으로 보내 살을 날리고 있는데, 뭍의 장졸들도 이르러 1만여 군사가 강을 향해 살을 날렸다.

 

 

새벽녘이 되자 제갈량은 배를 돌리게 했다. 이번에는 배를 반대로 두게 하여 더욱 바짝 다가들어 화살을 받으며 북을 두드리고 고함치게 했다. 한참이 지나 해가 높이 떠올라 안개가 흩어지자 제갈량이 배를 되돌려 세우니 20척 배의 양쪽 풀 단들에는 화살이 빼곡하게 박혔다. 제갈량은 여러 배의 군사들에게 똑같이 소리치게 했다.
승상! 화살을 고맙게 받았소이다!”

조조가 알았을 때는 이미 동오의 배들은 빠른 물살을 따라 20여 리를 돌아간 뒤였다. 쫓아보았자 따라잡을 수 없어서 조조는 뉘우쳐 마지않고, 북군의 장수들은 한숨을 풀풀 쉬었다.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배마다 화살 5000여 대는 있소. 강동의 힘은 조금도 쓰지 않고 화살을 10만 대 넘게 얻었소. 이 화살들로 조조의 군사를 쏘면 아주 편하지 않겠소?”

선생은 참으로 신선이시오! 오늘 이처럼 두꺼운 안개가 낄 것을 어떻게 알았소?”

장수가 된 사람이 천문에 통하지 않고 지리를 모르며, 기문(奇門)을 알지 못하고 음양에 밝지 못하며, 진 치는 그림을 볼 줄 모르고 군사의 형세에 어둡다면 그저 하찮은 사람이오. 이 양은 사흘 전에 벌써 오늘 큰 안개가 낄 것을 미리 내다보았기에 감히 사흘 기한을 잡았소. 공근이 나에게 열흘 안으로 화살을 모두 갖추라고 하면서도 일할 장인과 쓰일 물품들을 마련해주지 않으니, 이 시시한 죄명을 빌려 나를 죽이려 한 것이 분명하오. 그러나 내 목숨은 하늘에 달렸으니 공근이 어찌 나를 해칠 수 있겠소?”

노숙은 절을 하며 탄복했다.
배가 기슭에 닿자 주유가 화살을 나르라고 보낸 500명 군사가 벌써 강변에 와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량은 그들에게 배에서 화살을 뽑게 해서 10여만 대를 모두 중군 장막에 날라 바치게 했다.
노숙이 안에 들어가 제갈량이 화살 얻은 이야기를 해주자 주유는 깜짝 놀라 후유 한숨을 쉬었다.
공명의 신과 같은 계책과 기묘한 헤아림은 내가 도저히 따르지 못하겠소!”

이윽고 제갈량이 영채로 들어오자 주유는 장막 아랫자리로 내려가 맞이하면서 부러운 듯 칭찬했다.
선생의 신묘한 헤아림은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탄복을 자아내게 하오.”

제갈량은 겸손했다.
자그마한 속임수가 무엇이 희한할 게 있겠습니까?”

주유는 제갈량을 청해 함께 술을 마시다가 말했다.
어제 우리 주공께서 사자를 보내 나아가라고 재촉하셨는데, 이 유는 아직 기이한 계책이 없으니 선생이 가르쳐주시기 바라오.”

제갈량은 여전히 겸손을 보였다.
이 양은 녹록하고 평범할 뿐인데 어찌 묘한 계책이 있겠습니까?”

전날 조조의 수군 영채를 살펴보니 지극히 정연하고 법도가 있어 쉽사리 공격할 수 없었소. 오늘 선생도 그 움직임을 살펴보셨소. 이 유가 계책을 하나 궁리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으니 선생이 결정해주시면 고맙겠소.”

도독께서는 잠깐 말씀을 멈추시지요. 각기 손에 글을 써서 같은가 봅시다.”

주유가 먼저 손바닥에 가만히 글자를 쓰고 붓을 넘겨주자 제갈량도 가만히 글을 썼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앉아 손을 내밀어 서로 글자를 들여다보고는 모두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주유의 손바닥에 불 화()자가 있는데, 제갈량의 손에도 똑같은 글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모두 호탕하게 웃으며 글자를 지웠다.
우리 두 사람 소견이 똑같으니 더 의심할 게 없소. 말을 흘리지 않으면 고맙겠소.”

주유가 당부하자 제갈량이 대답했다.
양쪽 집의 큰일을 흘릴 리 있겠습니까. 이 양이 헤아려보니 조조는 비록 두 번이나 나의 이 계책에 걸렸으나 틀림없이 대비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또 이 계책을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도독께서 마음껏 쓰시면 됩니다.”

술을 다 마시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장수들은 아무도 그 일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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