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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2>

03. “주유는 꾀가 많습니다. 게다가...”

by BOOKCAST 2022.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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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주유가 장졸들을 점검하고 장군부에 들어가 떠나는 인사를 하니 손권이 말했다.
“경은 먼저 가시오. 내가 곧 군사를 일으켜 뒤따르겠소.”

주유가 노숙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면서 같이 가자고 청해, 제갈량도 기꺼이 배에 올랐다. 수많은 배가 돛을 올리고 하구를 향해 구불구불 나아가, 세 갈래 강물이 합치는 삼강구에서 50여 리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물과 언덕에 영채를 세워 길이가 50여 리에 이어졌는데, 제갈량은 다만 쪽배 하나에 몸을 붙였다. 주유가 제갈량을 청했다.
“옛날 조조의 군사는 적고 원소의 군사는 많은데, 오히려 조조가 원소를 이긴 것은 허유의 꾀를 써서 먼저 오소에 쌓아둔 군량을 못 쓰게 만든 때문이오. 지금 조조 군사는 83만이고 우리 군사는 겨우 5만이니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소? 역시 조조처럼 먼저 적의 군량을 못 쓰게 만들어야 그다음에 깨뜨릴 수 있을 것이오. 내가 조조의 군량과 말먹이 풀이 모두 취철산에 쌓여 있음을 알아냈소. 선생은 그곳에 오래 살아 지리를 잘 알 것이니 감히 선생과 관운장, 장익덕, 조자룡에게 폐를 끼치려 하오. 나도 군사 1000명을 내어 돕겠으니 선생은 밤을 이용해 취철산으로 가서 조조의 군량 길을 끊어주시오. 서로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이니 사양하지 않으시면 고맙겠소.”

제갈량은 주유의 속셈을 단번에 알아챘다.
‘나를 설득하지 못하니 계책을 써서 해치려는 것이다. 내가 사양하면 반드시 그의 웃음거리가 되니 먼저 대답하고 따로 대책을 만들어보자.’

제갈량이 선선히 응하자 주유는 대단히 기뻐했다. 제갈량이 떠나고 노숙이 가만히 주유에게 물었다.
“공이 공명을 보내 군량을 빼앗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이오?”

주유가 꿍꿍이를 말해주었다.
“내가 공명을 죽이고 싶은데 남의 비웃음을 자아낼까 두려워, 조조 손을 빌려 뒷날의 걱정거리를 없애려는 것이오.”

그 말을 듣고 노숙이 제갈량을 찾아가 주유의 생각을 아는지 살피는데, 그는 조금도 난처한 기색 없이 군사를 점검해 떠나려 했다. 노숙은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말로 건드려보았다.
“선생의 이번 걸음이 성공할 수 있겠소?”

제갈량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물에서 싸우는 수전, 뭍에서 걸으며 싸우는 보전, 말 타고 싸우는 마전, 수레 몰고 싸우는 차전, 이런 모든 싸움의 묘한 이치를 다 꿰뚫고 있는데 어찌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겠소? 강동의 공과 주랑 같이 한 가지에만 능한 이들과는 비할 바가 아니오.”

“나와 공근이 한 가지에만 능하다는 것은 무슨 말이오?”

“강남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았소. ‘길에서 매복하고 관을 지키는 데는 자경보다 센 이 없고, 강물에서 싸우는 데는 주랑보다 센 이 없다네.’ 공은 뭍에서 길에 매복하고 관을 지킬 따름이요, 공근은 물에서나 싸울 줄 알지 뭍의 싸움은 못 한다는 말이오.”

노숙이 돌아가 말을 전하자 주유는 발끈했다.
“내가 어찌 뭍에서 싸움을 못 한다고 업신여기는가? 그가 갈 것 없소! 내가 직접 1만 기병을 이끌고 취철산으로 가서 조조의 군량 길을 끊겠소!”

노숙이 다시 주유의 말을 전하니 제갈량은 웃었다.
“공근이 나에게 조조의 군량 길을 끊으라고 한 것은 실은 조조의 손을 빌려 나를 죽이려는 꾀였는데, 내가 말 한마디 던져 장난쳤더니 공근은 벌써 받아들이지 못했소. 지금은 사람을 쓸 때이니 오후와 유 사군께서 마음을 합치시기만 바라야 하오. 그렇게 해야 일이 성공할 수 있소. 만약 서로 꾀를 부려 해치려 들면 대사를 그르치게 되오. 조조 도적놈은 지모가 많아 평생 적의 군량 길을 끊는 데에 이골이 났으니 어찌 강한 군사로 습격에 대비하지 않겠소? 만약 공근이 가면 반드시 조조에게 잡히고 마오. 그러니 먼저 물에서 싸워 북쪽 군사의 기세를 꺾고, 그다음 따로 계책을 찾아 조조를 깨뜨리면 되오. 자경이 좋은 말로 공근에게 알려주면 고맙겠소.”

노숙이 그날 밤 제갈량의 말을 전하니 주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발까지 탁탁 굴렀다.
“이 사람의 재주와 식견이 나보다 열 배는 높으니 지금 없애지 않으면 뒷날 반드시 우리의 화가 될 것이오!”

노숙이 권했다.
“지금은 사람을 쓸 때이니 나라를 무겁게 알기 바라오. 조조를 깨뜨린 다음 생각해도 늦지 않소.”
 
이때 유비는 유기에게 강하를 지키게 하고 장수들을 거느리고 하구로 갔다. 멀리 장강 남쪽 기슭에 깃발들이 어슴푸레 보이고 과(戈)와 극(戟)이 가득했다. 동오에서 이미 군사를 움직인 것을 알고 유비는 강하의 군사를 모두 번구 땅으로 옮겨 주둔하고 부하들에게 물었다.
“공명이 동오로 간 다음 소식이 없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소. 누가 가서 허실을 알아보고 돌아와 보고하려오?”

미축이 가겠다고 나서서, 양과 술 따위 선물을 갖추어 동오로 보냈다. 미축이 쪽배를 타고 물길을 내려가 곧장 주유의 큰 영채에 이르러, 유비가 주유를 존경하는 뜻을 전하며 술과 예물을 올리니 주유는 잔치를 베풀어 대접했다.
“공명이 여기 온 지 오래라 함께 돌아가려 합니다.”

미축이 청하자 주유는 구실을 댔다.
“공명은 지금 나와 함께 계책을 내어 조조를 깨뜨리려 하는데 어찌 곧 떠날 수 있겠소? 나도 유 예주를 만나 함께 좋은 계책을 의논하고 싶은데 대군을 거느린 몸이라 잠시도 떠날 수 없으니 예주께서 이곳으로 와주시면 더없이 좋겠소. 따로 일이 있어 얼굴을 맞대고 상의해야 하오.”

미축이 응낙하고 돌아가니 노숙이 주유에게 물었다.
“공은 현덕을 만나 어떤 일을 의논하려 하오?”

주유가 노숙에게는 속셈을 숨기지 않았다.
“현덕은 이 세상의 사나운 영웅이라 없애지 않을 수 없소. 내가 지금 기회를 빌려 이곳으로 유인해 죽일 것이니, 나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실로 나라를 위해 뒷날의 걱정거리를 없애려는 것이오.”

노숙이 두 번 세 번 말렸으나 주유는 듣지 않고 비밀 명령을 내렸다.
“현덕이 오면 칼잡이 50명을 벽의 휘장 뒤에 매복시켜 내가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나와서 손을 써라.”

이런 줄도 모르고 미축이 번구로 돌아가 주유의 뜻을 전하니, 유비가 쾌속선을 한 척 마련해 곧 떠나려 하자 관우가 말렸다.
“주유는 꾀가 많습니다. 게다가 제갈 군사의 편지도 없으니 이 초청에는 거짓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섣불리 가셔서는 아니 됩니다.”

“내가 지금 동오와 손잡고 함께 조조를 깨뜨리려 하는 터에 주랑이 나를 만나려고 하는데도 가지 않으면 동맹이 제대로 맺어지지 못하네. 서로 의심하고 꺼리면 어찌 일이 이루어지겠나.”

“형님께서 기어이 가시겠다면 이 아우가 함께 가겠습니다.”

장비도 빠지기 싫은 모양이었다.
“나도 따라가겠소.”

“운장만 나를 따라가세. 익덕과 자룡은 영채를 단단히 지키게. 내가 얼른 갔다 돌아오겠네.”

유비가 관우와 함께 쪽배에 오르니 가까운 부하 20여 명이 따랐다. 나는 듯이 노를 저어 강동으로 가는데 유비가 살펴보니 강동의 몽충과 싸움배, 깃발, 갑옷, 무기들이 좌우로 벌려진 품이 사뭇 정연해 속으로 매우 기뻤다. 유비가 오는 걸 알고 동오 군사가 부리나케 보고하자 주유가 물었다.
“배 몇 척을 가지고 오느냐?”

“배는 한 척뿐이고 따르는 사람은 20여 명입니다.”

주유는 씩 웃었다.
‘이 사람 목숨이 끊기게 되었구나!’

칼잡이들을 매복시키고 유비를 맞아들이자 관우와 20여 명 부하가 따라왔다. 예절을 차려 인사를 마치고 주유가 상석을 권하니 유비는 사양했다.
“장군은 명성이 천하에 널리 떨치셨는데, 이 비는 재주 없는 사람이니 어찌 장군께 무거운 예절을 차리게 하겠소?”

각기 주인과 손님 자리에 나누어 앉자 주유가 잔치를 베풀어 대접했다.
이때 제갈량이 우연히 강변에 갔다가 유비가 그곳에 와서 주유와 만난다는 말을 듣고 흠칫 놀라 급히 중군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다. 주유 얼굴에 살기가 흐르는데, 양쪽 바닥까지 휘장이 드리웠으니 그 안에 칼잡이들이 빼곡하게 들어섰음이 분명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깜짝 놀라 돌아보니 유비는 말하고 웃는 모습이 태연한데, 그 뒤에 한 사람이 허리에 찬 검을 틀어쥐고 섰으니 다름 아닌 관우였다.
‘운장이 있으니 주공께서 위험하지는 않겠구나.’

제갈량은 안심하고 강변으로 돌아가 유비를 기다렸다.
이때 유비는 주유와 술을 마시다가 물었다.
“지금 장군이 조조를 막는 데 군사를 얼마나 얻으셨소?”

“3만입니다.”

유비에게는 뜻밖이었다.
“그것으로 조조의 83만 군사를 막아내겠소?”

“군사가 많고 장수들이 우글거린다 해서 두려워할 나위가 있습니까? 이 유는 3만이면 넉넉합니다. 예주께서는 이 유가 조조를 깨뜨리는 것을 구경이나 하십시오.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는 격입니다!”

유비는 부끄러워하며 사과했다. 또 술이 몇 순 돌고 주유가 일어나 잔을 잡아 술을 권하는데, 별안간 유비 등 뒤에 선 관우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얹은 그의 모습을 보고 주유가 급히 유비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시오?”

“내 아우 관운장이오.”

“옛날 안량과 문추를 벤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소.”

소스라쳐 놀란 주유는 식은땀이 등을 적셔 곧 술을 따라 관우에게 권했다. 이윽고 노숙이 장막에 들어오자 유비가 말했다.
“공명은 어디 계시오? 수고스럽지만 자경이 그를 불러와 만나게 해주시오.”

주유가 말렸다.
“조조를 깨뜨린 다음 만나셔도 늦지 않습니다.”

유비는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관우가 눈짓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비는 잠시 도독과 헤어지겠소. 적을 깨뜨려 공을 이룬 다음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축하를 드리겠소.”

유비가 주유와 헤어져 강가에 오니 제갈량이 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크게 기뻐하자 제갈량이 물었다.
“주공께서는 오늘의 위험을 아십니까?”

유비는 깜짝 놀랐다.
“만약 운장이 아니었으면 주공께서는 그 자리에서 주랑에게 해를 입을 뻔했습니다.”

제갈량의 설명을 듣고 유비는 칼끝에서 목숨이 살아났음을 깨닫고 함께 번구로 돌아가자고 청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따로 생각이 있었다.
“이 양은 비록 호랑이 입속에 있으나 태산처럼 끄떡없습니다. 주공께서는 그저 배와 군사를 마련해 제가 쓰기만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11월 20일, 갑자일에 자룡에게 쪽배를 저어 남쪽 기슭에 와서 기다리게 해주십시오. 절대 어기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유비가 궁금해 묻자 제갈량은 대답을 미루었다.
“동남풍이 불면 양은 반드시 돌아갑니다.”

유비가 다시 물으려 하는데 제갈량은 군사를 재촉해 배를 띄우더니 돌아가 버렸다.
 
이튿날 주유는 조조의 수상 영채를 살펴보려고 누각이 있는 큰 배에 북과 악기를 싣고, 수행하는 장수들에게 강한 활과 센 쇠뇌를 들게 해서 구불구불 나아갔다. 조조 영채 부근에 이르자 주유의 명령으로 닻이 내리고 북소리, 음악 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가만히 조조의 수군 영채를 훔쳐본 주유는 깜짝 놀랐다.
“수군의 묘한 이치를 깊이 터득해 만든 영채다. 수군 도독이 누구냐?”

“채모와 장윤이라 합니다.”

주유는 속으로 궁리했다.
‘두 사람은 강동에 오래 살면서 물싸움법을 깊이 익혔다. 내가 반드시 계책을 써서 먼저 두 사람을 없앤 후에야 조조를 깨뜨릴 수 있다.’

주유가 배 위에서 술을 마시며 경치를 감상하듯 한참 영채를 엿보니 조조가 뒤늦게 알고 배를 풀어 주유를 사로잡으라고 명했다. 수군 영채 안에서 깃발이 움직이자 주유가 급히 닻을 거두게 하니 양쪽에서 일제히 노를 저어 누선이 새가 날아가듯 재빨리 움직였다. 조조의 배들이 나왔을 때는 이미 십몇 리 밖으로 떠나 따라잡을 수 없었다. 조조 장수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가자 조조가 물었다.
“오늘 주유가 우리 영채를 실컷 훔쳐보았으니 어떤 계책으로 깨뜨려야 하겠소?”

장막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저는 어릴 적부터 주유와 함께 공부하며 사이가 두터웠습니다. 이제 썩을 줄 모르는 세 치 혀를 믿고 강동으로 가서 그를 구슬려, 이곳에 와서 항복을 드리게 하겠습니다.”

 


조조가 보니 양주 구강군 사람 장간인데 자는 자익으로 군의 막료로 있었다.
“무엇을 가지고 가려 하는가?”

“아이 하나가 따라가고 배를 저을 사람 둘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조조가 매우 기뻐 술상을 차려 전송하니, 갈포 두건을 쓰고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장간은 쪽배를 타고 곧장 주유의 영채에 가서 일렀다.
“옛 친구 장간이 찾아왔다고 주 도독에게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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