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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2>

04. 조조가 화를 냈다. “오히려 그쪽의 비웃음만 받았군!”

by BOOKCAST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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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들과 일을 상의하던 주유는 장간이 왔다는 말을 듣고 웃었다.
나를 설득하러 세객이 왔구려!”

장수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일러 모두 명을 받고 나갔다.
주유는 옷매무시를 바로잡고 관도 똑바로 써서 훌륭한 차림을 하고따르는 사람을 수백이나 이끌고 나가 앞뒤로 둘러서게 하는데 모두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꽃무늬를 수놓은 모자를 쓰게 했다.
푸른 옷을 입은 아이 하나만 달랑 데리고 온 장간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버젓이 걸어왔다주유가 머리를 숙여 맞이하자 장간이 인사했다.
공근은 헤어진 다음 별 탈 없는가?”

주유가 물었다.
자익이 수고하네강을 건너고 호수를 지나 먼 길을 왔으니 조 씨를 위해 세객 노릇을 하려는가?”

장간은 깜짝 놀랐다.
내가 그대와 헤어진 지 오래라 특히 찾아와 옛정을 이야기하려 하는데 어찌하여 세객 노릇을 한다고 의심하는가?”

내가 비록 사광(師曠)처럼 귀가 밝지는 못해도 줄을 뜯으며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그 고상한 뜻을 알기는 하네.”

사광은 춘추시대 진()나라의 악사로 눈이 멀었으나 귀가 특별히 밝아서, 어느 곡이 망국의 음이라고 지적했다는 이야기가 아주 유명하다. 주유 또한 음률에 밝아, 술을 많이 마시고도 누가 거문고를 잘못 뜯으면 돌아보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잘생긴 주유가 돌아보기를 바라 일부러 줄을 잘못 뜯었다는 일화까지 있었다.

장간이 난처해 뻗대보았다.
그대가 옛 친구를 이렇게 대한다면 물러가겠네.”

주유가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나는 다만 형이 조 씨를 위해 세객 노릇을 할까 두려웠는데 그런 마음이 없다면 어찌 빨리 가시나?”

주유는 장간과 함께 장막에 들어가 명령을 내렸다.
강동의 영웅호걸들을 모두 불러 자익과 만나게 하라.”

잠시 후 앞에 금 그릇은그릇이 차려지는데 누런빛흰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문관과 무장들은 각기 비단옷을 차려입고장막 아래의 편장과 비장들은 죄다 은 갑옷을 걸치고 두 줄로 나뉘어 들어왔다주유는 모두 장간에게 인사하게 하고 양쪽에 나누어 앉혔다굉장한 잔치가 벌어져 승전을 알리는 음악이 일어나고사람들이 번갈아 잔을 잡고 술을 권했다주유가 모두에게 말했다.
이분은 내 어릴 적 동창에다 단짝 친구요비록 강북에서 왔지만 조 씨의 세객은 아니니 공들은 의심하지 마시오.”

그리고 허리에 찬 검을 풀어 태사자에게 넘겨주었다.
공은 내 검을 차고 술상을 감독하시오오늘 잔치에서는 술 마시며 다만 친구의 정만 이야기는 것이니 만약 조조와 동오의 군사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당장 목을 치시오!”

태사자가 검을 받아 허리에 차고 자루를 틀어쥐고 자리에 앉으니 장간은 너무 놀라 감히 더 말을 하지 못했다주유가 또 말했다.
내가 군사를 거느린 다음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소오늘 옛 친구를 만났는데 의심하거나 거리끼는 일이 없으니 모처럼 취하도록 마셔야겠소.”

말을 마치자 주유는 껄껄 웃으며 술을 입에 쏟아부었다자리에서는 술이 마구 오가고일어나 잔을 잡고 술을 권하는 사람은 반드시 재주를 하나씩 자랑해야 했다주유는 허허 웃으면서 즐겁게 술을 마셨다.


차츰 술기운이 오르자 주유가 장간의 손을 잡고 장막 밖으로 나가니 좌우의 군사들이 투구 쓰고 갑옷 입고 과와 극을 들고 정연히 서 있었다.
내 군사가 제법 강하고 씩씩하지?”

참으로 곰 같고 호랑이 같은 장사들일세.”

장간이 건성으로 대꾸하는데 주유가 장막 뒤로 데려가니 군량과 말먹이 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내 군량과 말먹이 풀이 꽤 넉넉하지?”

군사가 정예하고 군량이 넉넉하다더니 과연 소문이 헛되지 않았네.”

주유는 짐짓 취한 척 허허 웃어댔다.
이 주유가 자익과 공부할 때는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 몰랐네.”

형의 높은 재주로 보면 실로 과분하지 않네.”

장간이 말 나가는 대로 대꾸하자 주유가 장간의 손을 잡았다.
대장부가 세상을 살면서 자기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났으니 밖으로는 주인과 신하의 의리를 지키고안으로는 혈육의 정을 맺었으며말씀을 올리면 꼭 들어주시고계책을 드리면 반드시 따라주시면서화를 당하거나 복을 누리거나 다 함께 해주시네가령 소진장의육가역이기가 다시 살아나 폭포처럼 거침없이 입을 놀리고 날카로운 칼처럼 혀를 굴리더라도 어찌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나하물며 책에서 글귀나 따다 외우는 썩은 선비들이 일방적인 말로 나를 쉽게 설득할 수 있겠나?”

주유가 또 껄껄 웃으니 장간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가슴이 칼에 찔리는 듯했다주유는 다시 장간의 손을 잡고 장막으로 들어가 술을 마셨다.
이분들은 모두 강동의 영웅호걸들이니오늘 이 모임은 군영회(群英會=영웅들의 모임)라 부를 만하리!”

날이 저물도록 술을 마시다 장막에 불을 밝혔다주유가 일어나 검을 춤추며 노래를 지어 부르니 사람들이 손뼉 치면서 분위기를 돋우었다.
 
장부가 세상을 사는 데는 공명을 세워야 하고
공명을 세우고 나면 평생 위로가 되리
평생 위로가 되니 내 장차 취하리라
내 장차 취하려 하니 미친 듯 노래 부른다
 
노래를 마치자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웃는데 장간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밤이 깊어 장간이 더 마시지 못하겠다고 사양하자 사람들은 모두 물러갔다주유가 말했다.
자익과 한 침상에서 잔 지 오래되었네오늘 밤에는 발바닥을 맞대고 자보세.”

주유는 잔뜩 취한 모습으로 장간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옷도 벗지 않고 침상에 쓰러진 주유가 왈칵왈칵 토하니 마치 이리가 자고 난 자리의 풀을 헤집어놓은 듯 어지러웠다.

장간은 잠이 올 리 없었다베개에 엎드려 있다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일어나 보니 가물거리는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주유는 드르렁드르렁 우레 울리듯 코를 골았다장막 안을 둘러보니 상 위에 둘둘 말린 문서가 한 묶음 있었다슬그머니 다가가 훔쳐보니 주유가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었다그런데 그중 한 통에 채모와 장윤이 삼가 봉합니다라고 쓰여 있어서 깜짝 놀라 가만히 읽어보았다.

저희는 벼슬이나 녹봉을 바라 조조에게 항복한 게 아니라 형세가 그렇게 만들었을 따름입니다이제 북군을 속여 수군 영채 안에 가두었는데그럴 만한 틈이 생기면 곧 조조 도적놈의 머리를 잘라 도독께 바치겠습니다조만간 사람이 도착하면 글로 소식을 알릴 것이니 의심하지 않으시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먼저 이 글로 답을 드립니다.’

채모와 장윤이 동오와 결탁했구나.’

장간은 가만히 글을 옷 속에 감추었다다른 편지들을 뒤적여보려는데 침상 위에서 주유가 몸을 뒤채자 급히 등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주유가 웅얼거렸다.
자익며칠 안으로 자네에게 조조 도적놈의 머리를 보여주겠네!”

장간이 되는 대로 응대하자 주유가 또 중얼거렸다.
자익가만…… 내가 자네에게 조조 도적놈의 머리를 보여주겠다니까…….”

장간이 속을 캐내려고 물어보니 주유는 다시 잠들어버렸다장간이 침상 위에 엎드려 뜬눈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새벽이 가까워지자 웬 사람이 장막에 들어와 불렀다.
도독께서는 깨어나셨습니까?”

주유는 꿈에서 갑자기 깨어난 듯 그에게 물었다.
내 침상 위에서 자는 사람은 누구냐?”

도독께서는 자익을 청해 함께 주무셨는데 잊으셨습니까?”

내가 평소에 취한 적이 없는데 어제 취한 끝에 실수했구나무슨 말이나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강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소리를 낮추어라!”

주유가 나지막하게 호통쳐 말허리를 자르더니 장간을 불렀다.
자익!”

장간이 자는 척하자 주유는 살금살금 장막에서 나갔다장간이 귀를 돋우어 훔쳐 듣는데 밖에서 말했다.
장 도독과 채 도독께서 급히 손을 쓰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뒤의 말은 너무 낮아 들리지 않았다이윽고 주유가 장막에 들어와 다시 불렀으나 장간이 대답 없이 이불로 머리를 감싼 채 자는 척하자 더 부르지 않고 제대로 옷을 벗더니 자리에 누웠다.
장간은 생각했다.
주유는 꼼꼼한 사람이라 날이 밝아 글이 보이지 않으면 나를 해친다.’

새벽까지 누워 있던 장간이 일어나 주유를 부르자 이번에는 그가 잠이 들었다장간이 두건을 쓰고 살금살금 장막에서 나와 아이를 불러내 곧장 영채 문을 나서자 지키는 군사가 물었다.
선생은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여기 있으면 도독의 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일찍 작별하네.”

군사는 막지 않았다장간이 배에 올라 부리나케 노를 저어 돌아가 뵈니 조조가 물었다.
자익이 한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주유는 도량이 넓고 정취가 고상해 말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조가 화를 냈다.
일은 이루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쪽의 비웃음만 받았군.”

비록 주유를 설득하지는 못했으나 승상을 위해 한 가지 일을 알아냈으니 좌우를 물리쳐주시기 바랍니다.”

장간이 편지를 꺼내 보이고 밤에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자 조조는 크게 노했다.
두 도적놈이 이처럼 무례하단 말인가!”

곧 채모와 장윤을 장막 아래로 불렀다.
내가 너희 두 사람에게 빨리 나아가게 하려 한다.”

채모가 곤란해했다.
군사가 아직 익숙하게 훈련되지 못해섣불리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조조는 화를 냈다.
군사가 익숙하게 훈련되면 내 머리를 주유에게 바치겠지?”

채모와 장윤이 조조의 말뜻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서 급히 대답을 못 하니조조가 호령해 두 사람을 끌어내 목을 치게 했다잠시 후 무사들이 머리 둘을 장막 아래에 바치니 조조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계책에 걸렸구나!’

채모와 장윤이 죽자 장수들이 들어와 까닭을 물었다조조는 계책에 걸렸음을 뻔히 알면서도 시인하기 싫었다.
두 사람이 군법을 우습게 알고 날짜를 질질 끌어서 죽였네.”

장수들은 모두 탄식하며 놀라 마지않았다조조는 그들 가운데 모개와 우금을 골라 수군 도독을 맡게 했다.

소식이 강동에 전해지자 주유는 크게 기뻐했다.
내가 걱정한 것은 두 사람뿐이었는데 이제 내 걱정이 사라졌소!”

노숙이 감탄했다.
도독이 이처럼 군사를 부리는데 조조 도적놈을 깨뜨리지 못할까 걱정할 게 무엇이겠소?”

그러나 주유는 꺼림칙한 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헤아려보면 장수들은 이 계책을 모르는데 제갈량만은 속일 수 없을 것이오자경이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보고 바로 알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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