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본삼국지 2>

12. 초가에 누운 용(龍) 찾아가는 유비 세 형제

by BOOKCAST 2022. 4. 28.
반응형

 


 

유비는 날을 잡아 관우, 장비와 함께 제갈량의 집을 찾아 길을 떠났다. 제갈량은 공명(孔明)이라 불리고, 누운 용을 뜻하는 와룡선생이라고도 했다.
멀리 바라보니 산 아래 밭에서 사람 몇이 호미를 들고 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푸른 하늘은 둥그런 뚜껑인 듯
넓은 땅은 네모난 바둑판인 듯
흑과 백으로 나뉜 세상 사람
오가며 영광과 모욕 다투네
영광 얻은 자는 편안하고
모욕당한 자는 수그러드는 법
남양에 숨어 사는 이 있으니
베개를 높이 하고 잠을 자누나
 
노래를 듣고 유비가 말을 세우고 농부에게 물었다.
“이 노래는 누가 지었소?”

“와룡선생이 지은 노래입니다.”

“와룡선생은 어느 곳에 계시오?”

농부가 멀리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산 남쪽에 쭉 뻗어 나간 높은 언덕을 와룡강이라 합니다. 언덕 앞에 성긴 숲이 있는데 그 숲속 초가가 바로 제갈 선생께서 베개를 높이 고이신 곳입니다.”

유비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말을 채찍질해 나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멀리 와룡강이 보이는데 과연 경치가 뛰어났다.

후세 사람이 시 한 편을 지어 특별히 와룡이 살던 곳을 노래했다.
 
양양성 서쪽 20리 떨어진 곳
뻗어 나간 언덕은 흐르는 물을 베고 누워
높은 언덕 구불구불 구름 밑동 누르고
돌고드름 아래로 물 졸졸 날아내리네
형세는 고단한 용 돌 위에 서린 듯
모양은 외로운 봉황 솔 그늘에 내린 듯
나무문 절반 닫혀 초가집 가리니
그 안에 고명한 이 누워 일어나지 않누나
긴 참대 엇갈리어 푸른 병풍 늘어서고
사계절 울타리엔 들꽃이 향기롭네
침상 머리에 쌓은 것은 모두 누런 책이요
자리에서 오가는 이 무식한 자 없더라
푸른 원숭이 문 두드려 과일 바치고
늙은 학 집 지키며 밤에 경을 듣는다
주머니에 든 거문고 옛 비단에 싸이고
벽에 걸린 보검에는 별 일곱 개 돋쳤다
초가집 안 선생은 유독 우아하거니
한가할 때 손수 농사를 짓누나
봄날의 우레가 꿈 깨우기만 기다린다
한 소리 길게 질러 천하 안정시키려고
 
유비가 장원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직접 사립문을 두드리니 아이가 나와 누구냐고 물었다.

“한나라 좌장군, 의성정후 겸 예주 목으로 신야에 주둔하는 황숙 유비가 특별히 선생을 찾아뵈러 왔다.”

아이가 쫑알거렸다.
“나는 그렇게 긴 이름은 외우지 못하는데요.”

유비는 전하기 쉽게 다시 말했다.
“그냥 유비가 찾아왔다고 하면 된다.”

“선생님은 오늘 아침에 나가셨어요.”

유비가 은근히 맥이 풀려 물었다.
“어디로 가셨느냐?”

“자취가 정해지지 않으셔서 어디로 가셨는지 몰라요.”

“언제 돌아오시느냐?”

“돌아오시는 때도 정해지지 않았어요. 사나흘 만에 오실 때도 있고 10여 일 지나서 오실 때도 있거든요.”

 


뜻밖의 대답을 들은 유비는 속이 허전해지면서 몹시 실망했다. 성급한 장비가 재촉했다.
, 만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돌아가면 그만이오.”

잠깐 기다려보세.”
유비가 말하는데 관우도 장비와 생각이 같았다.

일단 돌아가고, 다시 사람을 보내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유비는 그 말에 좇아 아이에게 당부했다.
선생께서 돌아오시면 유비가 뵈러 왔다고 전해라.”

그리고 말에 올라 조금 가다가 말을 세우고 융중의 경치를 돌아보았다. 과연 산은 높지 않아도 아름답고, 물은 깊지 않아도 맑으며, 땅은 넓지 않아도 평탄하고, 숲은 크지 않아도 무성했다. 원숭이와 학이 사이좋게 지낼 만하고, 소나무와 참대가 어울려 푸르른 빛을 돋우었다.

유비가 탐스럽게 구경하는데 별안간 한 사람이 나타났다. 풍채가 늠름하고 용모가 시원스러운데, 머리에는 소요건을 쓰고 몸에는 검정 무명 두루마기를 걸쳤다. 그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산의 후미진 오솔길을 걸어왔다.
이분이 틀림없이 와룡 선생이시다!”

유비는 한마디 짧게 외치고 급히 말에서 내려 인사했다.
선생은 와룡이 아닙니까?”

그 사람이 되물었다.
장군은 뉘시오?”

유비올시다.”

나는 공명이 아니라 그의 벗인 박릉의 최주평입니다.”

제갈량은 아니었으나 유비는 역시 반가웠다.
오랫동안 높은 성함을 받들어오다 오늘 다행히 만나 뵙습니다. 잠깐 여기 앉으시지요. 한마디 가르침을 받을까 합니다.”

두 사람은 숲속 바위 위에 마주 앉고, 관우와 장비는 곁에 모시고 섰는데 최주평이 물었다.
장군은 무엇 때문에 공명을 만나려 하십니까?”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고 사방이 들끓으니, 공명을 만나 나라를 안정시킬 방책을 구할까 해서입니다.”

최주평이 웃음 지었다.
공은 난리를 평정하려는 뜻을 품으셨는데, 그 마음은 비록 어집니다만 한스럽게도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이치를 모르십니다.”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이치란 어떤 것입니까?”

유비가 묻자 최주평이 길게 말을 시작했다.
장군이 버리지 않으신다면 한마디 들어보십시오. 예로부터 다스림이 끝에 이르면 어지러움이 생기고, 어지러움이 극에 이르면 다스림이 이루어졌으니, 음과 양이 줄어들었다 늘어나는 도리나 추위와 더위가 왔다 갔다 하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다스림에는 어지러움이 있게 마련이고, 어지러움이 더없이 심해지면 다스림이 일어납니다. 마치 추위가 끝나면 따스해지고 따스함이 끝나면 추워지면서 사계절이 서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예로부터 다스림과 어지러움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늘 변했습니다. 한나라 고조께서 흰 뱀을 베고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무도한 진나라를 뒤엎으시니, 어지러운 세상이 끝나고 평안히 다스려지는 세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애제, 평제 시대까지 200년간 오래 태평스럽더니 왕망이 황제 자리를 빼앗아, 평화로운 다스림으로부터 어지러운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광무제께서 중흥하여 조상의 사업을 다시 일으키시니 또 어지러움으로부터 잘 다스려지는 세상으로 바뀌었는데, 지금까지 200년이 지나자 백성이 오래 평안하다가 다시 사방에서 창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바로 잘 다스려지던 세상에서 어지러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때이므로 급하게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장군은 공명에게 비틀어진 하늘땅을 돌려놓고 찢어진 세상을 깁도록 하려 하시는데, 일이 쉽사리 되지 않고 공연히 정신과 힘만 낭비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늘에 따르는 자는 편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힘들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운수가 정해지면 이치로 빼앗을 수 없고, 인간이 억지로 해서는 아니 되느니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최주평의 말은 그러나 유비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선생 말씀은 참으로 고명하신 견해입니다. 하지만 이 비는 한나라 황실 후예로서 기필코 한의 조정을 보좌해야 하므로 어찌 감히 운수와 운명에만 맡기겠습니까?”

최주평은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산과 들에 사는 이 사내와는 천하의 일을 논할 바가 못 됩니다. 장군이 물어보시기에 제가 함부로 지껄였습니다.”

유비는 알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다.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명께서는 어디로 가셨는지 아십니까?”

나도 그를 찾아보려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선생께서 저희와 함께 변변찮은 저희 현으로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유비의 초청을 최주평은 사절했다.
어리석은 이 사람은 한가하고 편안히 보내기를 좋아해, 공을 세우고 이름을 알리는 데는 뜻을 잃은 지 오랩니다. 뒷날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최주평은 두 손을 맞잡아 인사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유비가 아우들과 함께 말에 오르니 장비가 투덜거렸다.
공명도 만나지 못했는데 도리어 이따위 썩은 선비를 만나 쓸데없는 한담을 오래도 했소!”

관우가 물었다.
주평의 말이 어떠합니까?”

이것도 숨어 사는 이의 말일세. 나도 번연히 아는 바이지. 지금은 어지러움이 극에 이른 때인데 성인께서 하신 말씀이 있네.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이 말이야 물론 맞는 말이지. 하지만 한나라 황실이 위태롭고 사직이 무너지며 백성이 거꾸로 매달린 듯 위급한데, 나는 황실 종친이고 게다가 여러분이 힘을 다해 보좌하니 어찌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위험을 구하지 않겠는가? 차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단 말일세.”

관우가 찬성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회왕이 밝지 못함을 알면서도 굴원이 힘을 내어 충고를 드린 것은 굴원이 왕실과 같은 씨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운장이 내 마음을 아는군.”

전국시대 위대한 시인 굴원은 초나라 회왕이 진나라와 교섭에서 늘 속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어리석은 행위를 여러 번 말렸으나 벼슬을 잃고 유배되고 말았다. 회왕이 진나라 왕을 만나러 갔다가 납치되어 끌려가자 굴원은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세 사람은 신야로 돌아왔다. 며칠 지나 유비가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니 제갈량이 돌아왔다고 해서 떠날 채비를 갖추자 장비가 말렸다.
한낱 시골뜨기인데 형님이 몸소 가실 게 뭐요? 사람을 보내 불러오면 그만이오.”

유비가 꾸짖었다.
자네는 맹자의 말을 듣지 못했는가? ‘현명한 이를 만나려 하면서 도에 따르지 않으면 마치 그가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문을 닫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하셨네. 공명은 당대의 큰 현인이신데 어찌 다른 사람을 보내 불러오는가?”

유비가 다시 융중으로 떠나니 관우와 장비도 따랐다.
건안 12(207) 12, 때는 한겨울이라 날씨가 무섭게 추운데 검붉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몇 리도 가지 못해 북풍이 윙윙 불어대며 눈송이가 흩날렸다. 눈이 뒤덮인 산은 옥돌을 모은 듯하고, 눈송이를 덮어쓴 숲은 은으로 단장한 듯했다. 가뜩이나 시큰둥하던 장비가 또 물러서려 했다.
하늘은 차고 땅은 얼어붙어 아직 군사도 움직이지 않는데, 먼 길을 가서 쓸모없는 사람을 보는 게 무엇이 바람직하오? 차라리 신야로 돌아가 눈보라나 피합시다.”

유비는 단호했다.
나는 공명에게 성의를 알리고 싶네. 아우는 추위가 겁나면 먼저 돌아가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