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교적 늦게 아이를 낳았다. 마흔, 요즘은 그렇게 늦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기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었다. 게다가 아이 친구들 엄마 사이에선 내가 거의 ‘왕언니’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그것을 오히려 더 좋아했다. 이렇게 나이 들어서 아이를 낳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서로 관계를 구축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시켜 놓고 나서 아이를 낳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여전히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더라도 늦게 아이를 가질 것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숙해진 후에 아이 갖기를 원했으면서 외모적으로는 여전히 젊어 보이고 싶었나 보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굉장히 노력한다, 젊어 보이려고. 나이가 들면서 다들 자른다는 머리. 난 아직도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살도 안 찌려고 열심히 운동한다. 하지만 아무리 적게 먹어도 기초대사량이 젊을 때보다 낮아서 몸무게가 금방 늘어난다. 옷도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 입으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정말 늙어 보이지 않으려고, 내 나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염색하는 새치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주기를 기다리기가 힘들어졌다. 한 2주만 지나가도 이제 옆머리가 희끗희끗 해지기 시작한다. 외출할 때 메이크업보다 새치를 더 정성스럽게 커버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길어서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던 목도 이제는 주름이 지기 시작해서 더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나름 ‘동안’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이런 피드백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동갑내기인 남편하고 같이 가면 주저하지 않고 “아, 연하랑 결혼하셨군요.”라고 말하고 나이를 말했을 때 “어머 훨씬 어려 보여요.”라는 멘트를 간절히 기대하지만 이젠 전혀 듣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이 들어가고 있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끊임없는 피드백은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흘려보냈다.
그런데 아이들과 쇼핑하던 중 나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쌍둥이 딸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창신동 완구 거리를 참 좋아한다. 초등학교 들어간 아이들이 싸면 많이 살 수 있다는 돈의 개념을 이해하면서부터 용돈이 모이면 이제는 쇼핑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창신동으로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쇼핑하는 모습을 흐뭇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미소를 짓고 있는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랑 쇼핑 왔으면 돈 내달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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