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기계발/<아이처럼 놀고 배우고 사랑하라>

02. 세상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살아가라.

by BOOKCAST 2020. 5. 29.
반응형

 


반응형


초심시작하는 마음으로


선불교에서는 시작하는 마음,  초심을 강조한다. 초심이란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열정적이고, 비어 있으며, 준비된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초심에 관해서라면 아이들보다 더 훌륭한 전문가는 없다. 아이들은 실제로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세상은 외부의 영향으로 오염되어 있지 않다. 물론 안타깝게도 아이들 역시 어른이 되면서 서서히 초심을 잃어가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우리에게 일상의 향기를 음미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다. 바버라 게이츠가 초심에 관해 딸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들어보자.
 
한번은 케이틀린을 데리고 친구의 액세서리 전시회에 갔다. 색색의 화려한 보석이 가득했다. 특히 귀걸이 디자인이 아주 색달랐다. 화려한 휘장을 두른 자그마한 사람이 허리춤에 올린 팔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와 나는 케이틀린의 놀라워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귀여운 광대모양 귀걸이를 흔들어 보였다. “이 아줌마는 다리가 세 개야!” 아이의 말에 친구가 웃으며 응해주었고, 우리는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아이는 또 한 번 놀라워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엄마, 근데 얘는 다리가 두 개야!” 다리가 두 개라니! 지금껏 다리 두 개의 마법 같은 감동을 잊고 있었다니! 그리하여 아이는 내게 포용에 대한 또 하나의 가르침을 주었다. 응가를 통해 고통스럽다거나 혐오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것들까지도 편견 없이 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평소 아무 생각 없이 간과해버리던 생명의 평범함까지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를 바꾸어준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기는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심리학자이자 행복 해결법(Happiness Solution) 저자 앨런 게티스는 휴대전화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때문에 조바심이 나고 짜증이 났던 그는 마음속으로 기다리다 늙어 죽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휴대전화를 사려고 기다리다가 정말로 죽어버려서 1년 동안을 땅에 묻혀 있었다고 생각해봐. 그리고 얼마 후에 마법처럼 살아 돌아오는 거지. 내가 죽었던 바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거야.’

그는 말한다. “이제 나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행위를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줄이 길다고 짜증을 내는 대신 다른 것들을 바라본다. 주변에 있는 온갖 것들을 쳐다보느라 잔뜩 신이 난 아이들. 줄이 점점 길어지는 가운데 주어진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가게 종업원들. 여기저기에 가득한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들. 파랑, 빨강, 초록, 보라, 그리고 노랑. , 저 색깔들을 보라. 그리고 키와 몸매, 피부색까지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나는 휴대전화 가게 앞에서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계

 

나는 켄 데이글(Ken Daigle) 목사가 운영하는 샌프란시스코 유니티 교회의 영성센터에 다니고 있다.
데이글 목사에 따르면, “초심은 어떤 교훈이든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주 멋진 전략이다. 초심을 통해 여러분은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잠시 의도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면 선생님이나 멘토가 제안하는 활동이 일견 아무리 비논리적이고 사소하고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해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여러분은 무제한적인 가능성을 경험한다.”

아이들은 세상의 이치가 어떻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끝없는 가능성으로 채운다. 다음 사례를 읽어보자.

어느 아버지가 말했다. “저에게는 세 딸이 있습니다. 각각 열 살, 여덟 살, 여섯 살이지요. 어느 날 큰아이가 오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이제부터는 아빠 차 타고 학교에 가지 않을래요. 애들이 비웃는단 말이에요. 다른 애들은 다 걸어서 등교하니까 저도 할 수 있어요.’ 그러자 일곱 살짜리 둘째가 말했다. ‘아빠. 나는 학교까지 걸어가기 싫어요. 차로 태워다주세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막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막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중간까지만 데려다주세요. 나머지 반은 걸어갈게요.”
이처럼 무엇이든 하나로 정해진 정답이란 없다. 마음속에 언제나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가지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반면에 어른들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우겨대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틀린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고집을 조금 꺾고, 어떤 상황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새롭고도 보람 있는 일이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관점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관점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를 둘러싼 분란이 저절로 잦아들면서 선택지도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특별함을 찾아 봐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에 따르면 발견이란 새로운 지형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어른에게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새로운 눈을 갖는 것과 같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 지역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느 은퇴 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전역의 산을 다니며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여정이 특별했던 건, 마치 아이처럼 기쁘게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내는 그녀의 모습 덕분이었다. 그녀는 수시로 가던 길을 멈추고 특별한 것을 찾아냈다. 무당벌레 한 마리에도, “, 정말 특별해!”라고 외쳤고, 주황색 양귀비꽃에도, “, 정말 특별해!”,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에도 , 정말 특별해!”가 터져 나왔다. 그녀에게는 심지어 평범한 회색 돌멩이나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마저도 특별했다.

 

 

 

아마도 아이들이 그 나이든 교사에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진정으로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많은 것들에서도 놀라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른들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의 특별함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 프로그램은 바로 그런 어른들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아침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면서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아침인사를 나눠보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걸어가기 때문이다.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에 완전히 몰두한 나머지 거의 부딪힐 뻔하며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변환경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감사해 하지 않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물며 그 안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기란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