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문제해결법
옛날에 어느 귀족이 소총사격술을 가르치려고 아들을 군사학교에 보냈다. 5년 후 아들은 사격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고, 졸업식에서 학위와 함께 금메달을 받아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증명하였다.
졸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말을 쉬게 하려고 작은 마을에 들렀다. 그런데 어느 집 안마당에서 마구간 벽에 분필로 그려진 동그라미들과 정중앙에 남은 총탄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아들은 깜짝 놀라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완벽히 한가운데에 총을 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군사학교에서 공부한 그 누구이기에, 도대체 어떤 메달을 받았기에 이다지도 뛰어난 사격술을 갖추었단 말인가?
한동안 궁금해하며 생각을 거듭한 끝에 아들은 그 명사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건 너덜너덜한 넝마를 걸친 맨발의 작은 소년이었다. “누구에게 배웠기에 이리도 총을 잘 쏘느냐?” 아들이 물었다.
소년은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벽을 여러 번 쏘았습니다. 그리고 분필을 가져다가 총알 자국 주변에 동그라미를 그렸지요.”
어린 시절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운동화 끈 매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나 역시 창의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운동화 끈 한쪽 끝으로 고리를 하나 만들고, 다른 한쪽 끝으로 그 고리를 한 바퀴 두른 뒤에 다시 첫 번째 고리 사이를 어찌어찌 통과시켜서 두 번째 고리를 만든다. 나는 그 ‘평범한 방법’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끈의 양쪽 끝에 각각 고리를 만든 다음 두 고리를 그냥 묶어버렸다.
이렇게 특이한 방식으로 신발 끈을 묶는 것 자체가 내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문제든 여러 가지 해결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여러분도 살면서 늘 안 된다고만 말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또 다른 길, 즉 대안은 분명 있게 마련이다.
언젠가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에 직면하여 한 발자국조차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과연 아이들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보라. 예를 들어, 어떤 부모가 집을 부동산에 내놓으면서 불시에 손님이 찾아올 것에 대비해 아이에게 매일 아침 침대를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의 엄마는 매일 아침 아이방에 올라가서 방 상태를 확인했다. 방은 늘 깨끗했고, 엄마는 기쁘면서도 의아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비밀이 밝혀졌다. 어느 날 밤 아들의 방에 올라간 엄마는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든 아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창의력의 열쇠는 지능이 아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이 이끌던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자신들을 고용한 후작이 휴가를 보내주기로 약속해놓고도 몇 년 동안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이든은 〈고별 교향곡〉을 작곡하여 무대를 열었다. 처음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전원이 무대에 등장하여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지만, 맡은 부분이 끝나면 단원들은 하나하나 무대를 떠났다. 악장이 거듭될수록 무대 위의 연주자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교향곡이 거의 끝날 무렵 무대 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고, 후작은 그제야 하이든의 메시지를 이해했다고 한다.
우리는 하이든과 같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생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고정관념 자체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창조성에 한계를 부여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아주 오래전에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대단히 창의적인 사람들의 지능은 덜 창의적인 동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창의력의 열쇠는 지능이 아닌 일을 즐겁게 처리하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연구자들이 이것을 ‘더 아이처럼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불렀다.
국경출입국 심사관들 중에서도 아이들처럼 고정관념을 깨뜨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있었다. 심사관들은 항상 라디오 소리나 자동차엔진 소리 등 갖가지 소음을 이겨내며 차창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리쳐 질문을 한다. 그 역시도 늘 목이 쉬고 아프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는 질문을 아주 조용하게 입모양만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듣고 있던 음악과 자동차 시동을 끄고 창문을 내려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창의력을 다시 배울 수 있을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창의력은 나이가 들수록 감퇴한다. 창의력의 감퇴는 심지어 아주 어린 나이부터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여섯 살짜리 아이들의 90퍼센트는 창의적이다. 하지만 여덟 살 아이들을 살펴보면 그 수치는 10퍼센트까지 떨어진다.
그러니 대부분의 어른들이 어렸을 때보다 훨씬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건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장난스러움과 창의력을 몰아내는 건 바로 부모와 교사들이다. 얌전히 좀 있으라고, 더 진중해지라고 아이들을 타박하고, 아이들이 던지는 장난스럽고 창의적인 물음에는 이런 ‘질문’으로 응수한다. “너 언제 철들래?”
만화가 휴 매클라우드의 말처럼, 유치원에서는 우리 모두가 색색의 크레파스를 받지만, 사춘기가 오면 받았던 크레파스를 모두 빼앗기고 지루한 것들만을 억지로 손에 쥐게 된다. 대수학이나 역사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목소리는 ‘제발 내 크레파스를 돌려주세요’라고 애원하고 있다.
아이들의 창의력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하다 보면 어른들도 잃어버렸던 크레파스와 창의적인 영혼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을 차단해야 한다. 사람들이 핸드폰에 대고 끊임없이 떠드는 소리,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잔디 깎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전기톱 소리와 같은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나 나만의 조용한 공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방해받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여러분도 뜨거운 물로 긴 샤워를 하면서 아주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여주는 부드러운 물살과 우리의 생각만으로 그 공간이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게으름 역시 창의력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깊은 밤 침대에 누워 생각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둘 때나, 정원에서 땅을 팔 때, 숲속에서 느릿느릿 걸어 다닐 때를 떠올려보라.
내가 책에 쓰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 중 상당수는 매일 아침 강아지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할 때 떠오른다. 이미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라도 그런 시간을 거치면 더욱 명료해진다. 또는 매일 밤,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을 때나 잠을 잘 수 없어 뒤척이는 한밤중에도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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