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도 열광하는 아이들
어느 날 아침 나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어른들만이 신문을 읽거나 잡담을 나누거나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피커에서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는 방송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짜증이 난 승객들은 비행 일정을 변경하기 위해 창구로 몰려들었다. 그때 두 아이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곱 살과 여덟 살 정도 되어 보였다. 이 상황을 불평하지 않는 건 두 아이뿐인 것 같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두 아이만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닥에 주저앉더니 작은 가방에서 플라스틱 ‘돌연변이 닌자거북’ 한 무더기를 꺼내어 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닌자거북 놀이가 질렸는지 아이들은 바닥 카펫에 난 선을 밟아가며 놀았다. 카펫 한 칸마다 몇 가지 색깔이 뒤섞여 있는지를 세어보기도 하고, 하나의 카펫에서 다른 카펫으로 뛰어넘는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별것 아닌 것에도 금세 신이 나서 즐겁게 논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먼 친척뻘 되는 아주머니의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그 집에 가면 나는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서 찬장에 있는 온갖 그릇과 냄비를 전부 꺼내어 놓고 몇 시간씩을 놀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유아용 가위와 낡은 전화번호부 하나면 몇 시간이고 즐겁게 놀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포장상자가 장난감 그 자체보다도 더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기도 한다. 작가인 수잔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두 살배기 아들은 오디오테이프의 필름을 풀어헤칠 때,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쓸 때, 유리탁자에 유리장식품을 두드리면서 음악을 만들 때 가장 행복해한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에게도 따로 장난감은 필요치 않다. 내 컴퓨터를 해체하거나 카메라 렌즈를 분리하거나 내 화장품으로 얼굴에 온통 그림을 그리는 걸로 충분하다.”
앞치마가 더러워져도 괜찮아!
뉴욕에서 일곱 살 난 아들 오리온과 함께 살고 있는 젊은 엄마, 이마니 라자는 내게 아들이 가르쳐준 교훈에 대해 들려주었다.
“아이는 제게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는지,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가르쳐줘요. 아이는 정말 신기해요.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려내거든요. 색채와 구성을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끝도 없이 그려낸답니다. 기차를 너무 좋아해서 기차를 그리고 또 그리지요. 당신도 제일 아끼는 바지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거나 길 한복판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그냥 저질러버리세요!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자유롭답니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서도 아이들의 정신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엿볼 수 있다. 사진가인 제프 레니케의 작품 중에는 온갖 화려한 색채가 흩뿌려진 앞치마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 대해 레니케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홉 살에서 열한 살 사이의 아이들 열두 명을 모아 물감놀이를 하게 했어요. 손에 빨강, 노랑, 초록 물감을 찍어서 종이에 제멋대로 휘갈기며 해바라기와 소방차를 그렸죠. 그림 그리기를 마치고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앞치마들만이 남겨졌습니다. 그걸 모두 모아 제멋대로 걸어두자 그 자체로 하나의 태피스트리가 됐어요. 예술은 즐겁고 왁자지껄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오르더군요. 아이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증명할 길은 없지만 레니케가 만약 성인들을 대상으로 똑같은 물감놀이 수업을 진행했다면 앞치마는 아마 그렇게 화려한 색깔로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한 방울의 물감조차 묻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전에 들었던 미술수업이 떠올랐다. 그때 강사는 내게, 무엇을 그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그저 마음 가는 색깔을 붓에 묻혀 마음대로 끼적여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하게 했다. 그림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아무리 항의해도 강사는 “계속 그리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45분 동안이나 계속 물감을 칠하면서 몇 번이나 더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말했지만, 강사는 심지어 이젤에 종이를 고정하느라 꽂아두었던 압정을 모두 뽑아낸 뒤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여기 아직도 흰 공간이 있잖아요. 계속 그리세요.”
그때 만약 내가 아이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았더라면 그렇게 엄청난 두통과 불만에 시달리진 않았을지 모른다. 아마도 조금씩 색깔을 덧입히는 과정을 즐기며 도화지에 신나게 물감을 흩뿌리지 않았을까.
디저트부터 먹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생은 짧다. 디저트부터 먹어라.” 하지만 정말 이렇게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실제로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언젠가 강연회 일정 때문에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갔다. 그곳에서 친구 스티브 윌슨과 그의 아내 팸을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종업원은 식사 메뉴판을 들고 왔다. 우리는 디저트 메뉴를 먼저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종업원은 잠시 당황한 것 같았다.
“네, 손님. 식사는 안 하고 디저트만 드시겠다는 말씀이시죠?” 그가 말했다.
“아뇨. 식사도 하고 디저트도 먹을 거예요.” 우리는 대답했다.
“그러면 식사 메뉴 먼저 주문받고, 디저트 메뉴를 주문받으면 되겠습니까?” 10여 분 가까운 실랑이를 거친 끝에야 종업원은 우리 의도를 이해하고 디저트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처럼 디저트를 먼저 주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또 한번은 ‘디저트부터 먹는 생일파티’를 기획한 적이 있다. 나는 갖가지 맛깔스러운 디저트를 집에 차려놓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먼저 디저트를 먹은 뒤 함께 언덕 아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에 늦은 점심을 예약해둔 터였다.
친구 중 한 명은 위의 식당 종업원처럼 나의 의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밥 먹기 전에 디저트부터 먹을 수 있어? 입맛 다 떨어지게!” 당시 생일파티에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면 틀림없이 기뻐하며 탁자에 놓인 다양한 사탕을 전부 맛보았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도 만약 나처럼 식사하기 전에 디저트부터 먹고 싶은데 핑계가 마땅치 않다면 그냥 식당 종업원에게 물어봐도 된다. “애들처럼 식사 전에 디저트부터 먹을 수 있을까요?” 그는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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