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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아이처럼 놀고 배우고 사랑하라>

05. 왜 어른은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까?

by BOOKCAST 2020.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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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크리스 클라크 엡스타인은 질문하는 아이들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 이렇게 썼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아이들은 질문에 대한 답이 옳은가는 고사하고, 답이 무엇인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왜?’라는 질문 자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저 묻는 것이 좋아서 끝도 없이 질문을 해댔다.”


크리스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서너 살 정도 된 아이들에게는 삶의 목적이 단 하나다. 바로 배움이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아이들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 집중한다. 어떤 질문인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어떤 질문을 하든 뭔가 새로운 배움이 제공되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치프 루츠는 손녀의 ‘왜’ 세상이 어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손녀딸이 세상을 탐험하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손녀만큼이나 신이 난다. 지금은 모든 것이 “그게 뭐야?”라는 말로 끝난다. 나는 아이들 넷을 키우며 이미 이 단계를 거쳐봤기 때문에 다음 단계가 ‘왜?’라는 걸 알고 있다. 앞으로 모든 새로운 것들이 ‘왜?’라는 질문을 만나면서 손녀는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모든 답을 자신만의 세계관에 맞게 재구성할 것이다.

 

 


 

‘왜?’라는 물음은 그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왜’라는 질문을 통해 세상의 근원을 향해 나아간다. ‘왜’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판단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왜’를 묻지 않고, 모든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는 어째서 ‘왜?’라고 묻기를 그만두었을까? 나는 우리가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길들여졌다고 생각한다. 공공연하게 질문하지 말라고 통제한 사람은 없었지만, 어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는 질문들을 꺼려 하는 주변 반응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리더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우리는 이제 ‘왜?’라는 질문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동료들을 자극하여 현 상황을 개선해나갈 수 있다.

 

 

‘이게 뭐야?’ 단계


엘리너 루스벨트는 요정이 나타나서 곧 태어날 아이에게 단 한 가지 특별한 재능을 선물해준다고 하면, 꼭 받아야 할 재능은 바로 ‘호기심’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아기들을 보살피는 이 세상 모든 요정들이 그 임무를 이미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못 믿겠다면 주변 아이들을 한번 관찰해보라. 아이들의 호기심은 한계를 모른다.


이스라엘에 있는 어느 친척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에게는 아주 어린 아들이 있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집에 머물렀는데, 아이는 나와 자신의 부모에게 끝도 없이 이런저런 물건을 들고 와서 “이게 뭐야?”라고 물었다. 곧 우리 중 한 사람이 대답해주면 아이는 그 물건을 내려놓고 다른 물건을 들고 와서는, 다시 “이게 뭐야?”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정말이지 끝없는 질문의 행렬이었다.


내 딸 사라 역시 아주 어렸을 때는 “이게 뭐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사라가 일곱 살일 때의 일이다. 우리는 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종업원이 가져온 첫 번째 음식은 계란말이 비슷한 음식이었다. 하나를 꺼내어 자르자 사라는 “그 안에 뭐가 있어?”라고 물었다. 그리고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사라는 첫 번째 질문이나 그에 대한 답과는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빠, 레즈비언이 뭐야?”


 

“만약에” 단계


노린 브라만이라는 내 동료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다. 그녀는 이 정도면 아이들이 거치는 질문의 단계들은 거의 다 지나갔겠지 하고 생각하던 바로 그때 한 아이가 던진 또 하나의 새로운 질문의 단계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큰아이는 숙제하기 싫다고 떼쓰는 기색도 없이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막내는 한참 폭군으로 군림하던 ‘미운 세 살’ 시기를 마침내 벗어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유치원생 정도는 이제 잘 통제할 수 있다며 자만했다. 하지만 그때 둘째 딸 안네마리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새로운 질문의 단계, 바로 “만약에" 단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이 나오기를 한참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안네마리(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는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를 궁금해 했다. 몇 가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안네마리는 만족하지 못했다.


“나 너무 배고파서 토할 것 같아!” 아이는 큰 소리로 선언하듯 말했다. ‘쉿’ 하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지만 오히려 아이를 더 자극할 뿐이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진짜로 토하면 어떻게 될까?” 안네마리가 말을 이었다. 못 들은 척하고 대강 넘어가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만약 끝도 없이 계속 토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만하라고 아이에게 경고했지만 안네마리에게는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관중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누가 옆을 지나가다가 내 음식에 토하면 어떻게 될까? 만약 종업원이 그걸 치우려고 하는데 또 토를 하면 어떡하지?”


우리 주변 테이블에 앉은 가족들이 수저를 내려놓고 위협적으로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만약 누가 내 요리 위에 토를 했는데 모르고 먹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 말이 끝나자 식당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졌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주변을 둘러보자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큰 딸 로즈마리는 휴지로 입을 틀어막았고, 나는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막내 로이 마이클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다 어디 갔어?” 로이는 물었다.


그 뒤로 한참 동안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식당에 갈 때면 배고픈 아이들의 입을 막기 위해 꼭 간식을 챙겼다. 그러면서도 늘 안네마리가 과연 그다음 ‘단계’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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