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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아이처럼 놀고 배우고 사랑하라>

06. 아이들에게서 용서의 기술을 배우다.

by BOOKCAST 2020.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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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도 한순간 친구에게 크게 화를 내곤 한다. “너 미워! 너랑은 절대로 안 놀 거야. 절대로!” 하지만 몇 분 후면 모든 것은 용서된다.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어울려 논다.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용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뉴욕 브롱크스 지역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5층의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아파트마다 이웃과 함께 사용하는 통풍구가 있었으며, 거기에는 손으로 직접 끌어올려 사용하는 작은 기계가 있어서 식료품이나 빨래를 주방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기계를 덤웨이터(dumb waiter: 벙어리 웨이터라는 뜻)라고 불렀다. 우리 가족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살았으므로 덤웨이터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기 위한 아주 유용한 장치였다.

어머니는 덤웨이터를 나눠 쓰던 이웃과 몇 번이나 언쟁을 벌이셨다. 매번 왜 싸움이 벌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중 한 번의 큰 다툼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이제 막 깨끗이 빨아서 창가 빨랫줄에 널어놓았던 어머니의 옷에 이웃의 구두약이 온통 튀어버린 일 때문이었다.

두 가족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크게 다투었고, 그 후 나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시는 그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에게는 그 집 아이와 다시는 놀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복도에서 서로를 마주치더라도 안녕이라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고, 특별한 날에도 휴일 잘 보내라는 말도 하지 않았으며, 화낼 때 빼고는 옆집 사람들과 전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당시 어머니의 말씀이 생생히 떠오른다. “용서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다.”

용서의 대가인 아이들과는 달리 우리 가족은 원한의 대가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아버지는, 어머니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여동생과의 대화마저 단절해버리셨다. 나의 사촌누나는 말도 안 되는 사소한 불화를 이유로 자기 남동생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렸으며, 친척 가운데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부모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리기도 했다.

우리 가문의 어른들은 몇 년이고 원한을 몰고 다녔고, 아주 작은 일로도 관계를 완전히 파괴해버리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화를 내더라도 곧 극복한다. 아이들은 원한을 품지 않는다. 만약 화가 나면 그 화를 표현한 다음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짜증이 나면 아이들은 떼를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분출한다. 칭얼거리거나 울거나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하고 때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그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더 이상은 화를 내지 않는다. 오늘 경험한 화를 내일로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다.



언제까지 썩은 감자를 들고 다닐 것인가?


스테파니 카노비츠는 딸에게서 용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내 딸은 친구에게 장난감이나 쿠키, , , , 레고 따위를 빼앗기고 순수한 슬픔에 빠져 울지도 모르지만, 몇 분만 지나면 다시 함께 모여서 논다.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친구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

아이들은 어떻게 친구를 용서할까. 카노비츠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어느 날 친구와 놀던 딸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친구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나는 딸아이의 입장에 서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문제의 핵심은, 딸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세워놓은 놀이 계획을 친구가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나는 절충점을 찾아보라고 딸과 친구에게 제안했다. 코를 훌쩍이면서 딸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잠깐 놀고, 그다음에 네가 원하는 대로 놀면 어때?’ 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었다. 딸은 그 후에도 이제는 쟤랑은 안 놀 거야라든가 진짜 못된 애야라는 식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친구를 꼭 안아주며 또 만나자라고 작별 인사를 했을 뿐이다.”

어느 교사는 용서하지 않는 삶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학생들에게 감자를 한 봉지씩 나누어주고 감자마다 자신이 용서하지 못한 사람의 이름을 적으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신을 몹시 화나게 만들었던 사람이나 따돌린 사람, 뒤에서 험담을 한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교사는, 이제 이름이 적힌 감자를 다시 봉지에 담고, 그 봉지를 들고 교실을 돌아다녀 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곧 용서하지 않음이 그 자체로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과거 우리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무겁게 들고 다니던 감자를 내려놓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용서의 동그라미


아프리카 남부의 어느 원시부족은 누군가 무책임한 행동을 했을 때 그를 용서해주기 위한 놀라운 의식을 거행한다. 남자와 여자, 아이들까지 모든 부족민들이 그를 둘러싸고 커다란 원형을 만든다. 원 한가운데에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홀로 서 있다.

다음으로는 모든 부족민들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한 사람씩 차례로 말을 건넨다. 다만,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평생 동안 베풀었던 선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사건과 모든 경험을 다시 떠올린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갖춘 모든 긍정적인 특징과 선행, 장점, 친절함에 대한 대화가 아주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의식은 많은 경우 며칠씩 이어지기도 한다.

의식이 끝나고 나면 마지막으로 즐거운 축하파티가 열린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렇게 다시 부족의 일원으로서 정식으로 환영받는다.

부정을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용서하는 데 이만큼 감동적이고도 긍정적인 방식이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용서를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만약 당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누군가에게, 그들이 저지른 나쁜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좋은 속성과 선행과 장점들에 대해 말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을 향한 당신의 적대감이 훨씬 더 빠르게 누그러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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