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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도/<육백 리 퇴계길을 걷다>

03. 원주에서 충주로_도도히 흐르는 남한강

by BOOKCAST 202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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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길, 남한강가 가장 아름다운 정원길

비내쉼터에서의 점심 식사가 끝났다. 이제부터 육백 리 귀향길은 국토종주 자전거길과 또 이별한다. 비내섬은 동쪽이 남한강의 넓은 본류고, 서쪽이 좁은 지류다. 비내쉼터에서 비내섬으로 연결된 다리는 지류 위에 놓여 있어 아주 짧다. 그 다리를 넘어갈 때 함께 걷는 이들에게 흐르는 물을 바라보라 권한다.
 
다리 밑의 물은 꽤 거세다. 그런데 그렇게 거센 물은 청계천에서도 봤고, 계곡에서는 훨씬 더 거센 물을 봐서 그런지 별 호응이 없다. 옛날 뱃사공들이 저렇게 거센 물을 거슬러 배를 끌고 올라갔다는 사실을 떠 올릴 수 있다면 그렇게 호응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 내 욕심이다. 거기까지 상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비내섬은 전체가 물억새 세상이다. 물억새 사이사이로 길을 냈는데, 가을날 그 길을 걸으면 이 세상과 분리된 딴 세상을 만난다. 이런 비내섬이기에 역사극에서는 전투나 결투 장면이,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여주인공이 북한군과 함께 한적한 강가에서 고기를 잡아 모닥불에 구워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 비내섬 갈대숲길, 충주 앙성면
 

충주시에서 앞으로 대규모 개발을 하려는 듯한데, 물억새 딴 세상을 파괴하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길 바랄 뿐이다. 물억새 딴 세상이 비내섬 최고의 장관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 믿는다.
 
4월 봄날 비내섬의 물억새는 아직 자라기 시작한 터라 가을날 딴 세상의 추억은 아니다. 그래도 흙길, 자갈길 골라가며 거대한 모래섬 속 자연스러운 물억새 길을 걷는 그 자체로 낭만이다.
 
복여울교를 지나면 내가 육백 리 귀향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는 비내길이 시작된다. 남한강가를 따라가는 완전한 숲속 길이다. 물가를 바짝 따라가지만 남한강은 숲속 나무와 능수버들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하다. 곳곳에는 벤치가 마련되어 충분히 쉴 수 있고, 오르내리고 구불구불하기를 반복하는 길가에는 크고 작은 각종 꽃이 수줍은 듯 피어 있다. 지루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길이다. 맨 끝은 장미터널이 장식한다비내길 전체가 그야말로 꿈속의 정원길이다.
 

* 비내섬 풍경

 

 

남한강 물이 다시 멈추다

장자늪과 사랑바위를 뒤로하고 1km쯤 걸어가면 길고 길었던 섬의 남쪽 끝이다. 그리고 충주댐의 보조댐인 조정지댐이 바로 코앞이다. 오늘 하루 먼 일정의 마무리가 가까워오는 느낌이다. 중앙탑주유소의 편의점에 들러 화장실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마지막 에너지를 충전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중앙탑사적공원이고, 아직 4km 조금 더 남았다.

조정지댐을 지나면서 남한강 물은 호수가 되어 다시 흐름을 멈추었다. 여기서 육백 리 퇴계길은 국토종주 자전거길과 완전히 이별하여 또 하나의 색다른 길을 펼쳐 보인다. 찻길 옆 호숫가에 나무판자로 산책길을 만들었는데, 붕 떠 있는 길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우거진 벚나무 덕분에 온통 그늘 천지다. 벚꽃이 한창일 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 같다. 우리가 걸어갈 때는 벚꽃이 다 떨어져서 한적함을 실컷 맛보며 걸을 수 있는 길로 변했다.
 

* 저녁에 본 탄금호 호숫가
 
*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낭만적인 산책길
 


1.5km 정도 호숫가를 붕 떠서 가는 기분을 느끼며 걷는 이 길이 꽤나 낭만적이다. 육백 리 퇴계길 중 짧게 산책할 수 있는 좋은 길을 뽑으라면 이 길도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멋지다. 그 길 끝에 모텔 하나가 나왔 다. 아직 중앙탑사적공원까지 2.5km 정도 남았는데, 모텔을 보니 다리가 불편하신 이태호 교수의 피곤이 갑자기 급상승하는 것 같다. 오늘의 일정은 그 모텔 앞에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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