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길, 남한강가 가장 아름다운 정원길
비내쉼터에서의 점심 식사가 끝났다. 이제부터 육백 리 귀향길은 국토종주 자전거길과 또 이별한다. 비내섬은 동쪽이 남한강의 넓은 본류고, 서쪽이 좁은 지류다. 비내쉼터에서 비내섬으로 연결된 다리는 지류 위에 놓여 있어 아주 짧다. 그 다리를 넘어갈 때 함께 걷는 이들에게 흐르는 물을 바라보라 권한다.
다리 밑의 물은 꽤 거세다. 그런데 그렇게 거센 물은 청계천에서도 봤고, 계곡에서는 훨씬 더 거센 물을 봐서 그런지 별 호응이 없다. 옛날 뱃사공들이 저렇게 거센 물을 거슬러 배를 끌고 올라갔다는 사실을 떠 올릴 수 있다면 그렇게 호응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 내 욕심이다. 거기까지 상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비내섬은 전체가 물억새 세상이다. 물억새 사이사이로 길을 냈는데, 가을날 그 길을 걸으면 이 세상과 분리된 딴 세상을 만난다. 이런 비내섬이기에 역사극에서는 전투나 결투 장면이,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여주인공이 북한군과 함께 한적한 강가에서 고기를 잡아 모닥불에 구워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충주시에서 앞으로 대규모 개발을 하려는 듯한데, 물억새 딴 세상을 파괴하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길 바랄 뿐이다. 물억새 딴 세상이 비내섬 최고의 장관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 믿는다.
4월 봄날 비내섬의 물억새는 아직 자라기 시작한 터라 가을날 딴 세상의 추억은 아니다. 그래도 흙길, 자갈길 골라가며 거대한 모래섬 속 자연스러운 물억새 길을 걷는 그 자체로 낭만이다.
복여울교를 지나면 내가 육백 리 귀향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는 비내길이 시작된다. 남한강가를 따라가는 완전한 숲속 길이다. 물가를 바짝 따라가지만 남한강은 숲속 나무와 능수버들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하다. 곳곳에는 벤치가 마련되어 충분히 쉴 수 있고, 오르내리고 구불구불하기를 반복하는 길가에는 크고 작은 각종 꽃이 수줍은 듯 피어 있다. 지루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길이다. 맨 끝은 장미터널이 장식한다. 비내길 전체가 그야말로 꿈속의 정원길이다.
남한강 물이 다시 멈추다
장자늪과 사랑바위를 뒤로하고 1km쯤 걸어가면 길고 길었던 섬의 남쪽 끝이다. 그리고 충주댐의 보조댐인 조정지댐이 바로 코앞이다. 오늘 하루 먼 일정의 마무리가 가까워오는 느낌이다. 중앙탑주유소의 편의점에 들러 화장실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마지막 에너지를 충전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중앙탑사적공원이고, 아직 4km 조금 더 남았다.
조정지댐을 지나면서 남한강 물은 호수가 되어 다시 흐름을 멈추었다. 여기서 육백 리 퇴계길은 국토종주 자전거길과 완전히 이별하여 또 하나의 색다른 길을 펼쳐 보인다. 찻길 옆 호숫가에 나무판자로 산책길을 만들었는데, 붕 떠 있는 길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우거진 벚나무 덕분에 온통 그늘 천지다. 벚꽃이 한창일 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 같다. 우리가 걸어갈 때는 벚꽃이 다 떨어져서 한적함을 실컷 맛보며 걸을 수 있는 길로 변했다.
1.5km 정도 호숫가를 붕 떠서 가는 기분을 느끼며 걷는 이 길이 꽤나 낭만적이다. 육백 리 퇴계길 중 짧게 산책할 수 있는 좋은 길을 뽑으라면 이 길도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멋지다. 그 길 끝에 모텔 하나가 나왔 다. 아직 중앙탑사적공원까지 2.5km 정도 남았는데, 모텔을 보니 다리가 불편하신 이태호 교수의 피곤이 갑자기 급상승하는 것 같다. 오늘의 일정은 그 모텔 앞에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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