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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도/<육백 리 퇴계길을 걷다>

04. 단양에서 영주로_대재를 넘어 허허벌판 고난의 길을 지나

by BOOKCAST 2022.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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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샛골

죽령폭포 위의 다리를 건너가면 음지마을에서 잠시 만났다가 헤어졌던, 퇴계 선생이 말을 타고 오르던 진짜 옛길과 만난다.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지나는 위험한 길도 곳곳에 있는데, 지금은 나무판자를 까는 등 여러 조치를 취했다. 그럴 때마다 길 위의 바위를 자세히 보면 재밌는 것을 발견한다. 바위 면이 반들반들하다. 문경새재에서도 반들반들한 바위를 보았다. 2천 년 동안 사람들이 그 바위를 밟고 넘어 다닌 흔적이다. 단양군에서 새로 만든 죽령옛길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죽령천가를 따라가는 진짜 옛길을 400m쯤 걸어가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시골길이 나온다. 이 길 또한 옛길인데, 왼쪽으로 꺾어 올라 돌아가면 갑자기 밭이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사과밭 풍경이 펼쳐진다. 비록 마즈막재 계곡에 비해서는 아주 작지만 산속에 있어 온통 사과밭으로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충주에 이어 마침 사과밭에는 4월의 사과꽃이 한창이고, 간간이 자란 복사꽃이 만개해 화사하게 어울린다. 가을철에 걸어갈 때는 길가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붉디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 사과꽃이 한창인 죽령 오름의 사과밭
 

사과밭 사이를 지나 길이 급격히 굽어 도는데, 길가에서 2013년 1월 11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는 안내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이름은 ‘죽령옛고개마을’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억새 따위를 가리키는 새란 풀이 많아 부른 샛골[召也里]이다. 일제강점기 음지말, 양지말, 텃골, 매바위, 샛골을 함께 묶어 용부원리로 편제했다가 나중에 나누어지면서 용부원2리가 되었다. 지금은 샛골이란 옛 이름은 사라지고 용부원2리 마을회관의 이름이 길가는 나그네들의 눈에 들어온다.
 
 
바람 소리 새소리 가득한 길

대재 정상의 영주 땅은 단양 쪽보다 훨씬 좁지만 고갯길을 걸어서 오른 나그네에겐 추억 만들기가 더 좋더라. ‘영남관문죽령(嶺南關門竹嶺)’의 거대한 표지석 앞은 기념사진 촬영하기에 적당하고, 초가지붕의 죽령주막은 고갯길 힘들게 오른 다리를 쉬면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 걸 치며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기에 편안하다.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의 현판이 걸린 죽령루는 잠시 올라 영주시 풍기 땅을 전망하기에 막힘이 없다.

죽령루에서 바라본 경상도의 땅은 겹겹의 산과 산줄기만이 이어지던 충청도의 땅과는 다르더라. 풍기의 넓은 들판이 쭉 이어졌다. 그렇 다고 전라도 너른 평야처럼 막힘이 없다는 건 아니다. 소백산(1,439m)에서 뻗어나간 산과 산줄기가 풍기의 너른 들판을 감싸고, 저 멀리 들 판 끝으로도 산과 산줄기가 겹겹이 아득하다. 그 사이 어딘가에 육백 리 귀향길의 도착지인 도산서원이 숨어 있을 텐데, 어디쯤인지는 가늠할 수가 없다.

* ‘영남제일관’ 누각과 영남 산세
 

충청도 단양 쪽의 죽령옛길은 2/3가 새로 만든 것인데 반해 경상도 영주 쪽은 전 구간이 죽령옛길 그대로 따라간다. 단양 쪽에 비해 경사가 급하고 길이가 훨씬 짧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신작로가 죽령옛길을 완전히 벗어나 만들어졌고, 중앙선 철도와 중앙고속도로도 모두 땅속의 터널을 통과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걸어서 넘어 다니던 죽령옛길이 전혀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덕분에 지금 우리 일행은 퇴계 선생이 말을 타고 내려가시던 그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다.

* 죽령루에서 바라본 경상북도 백두대간
 

죽령루의 계단에서 시작된 내리막길은 가파르다. 대재 정상에서 합류한 이태호 교수에겐 꽤나 힘든 길인데, 지팡이에 의지해 내려가는 와중에도 여기저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으시다. 고갯길의 경사가 약해지고,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었다. 길가엔 주막 옛터의 돌담이 우리를 맞이하고, 산딸기와 산뽕나무를 곳곳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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