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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도/<육백 리 퇴계길을 걷다>

01. 서울의 경복궁을 출발하다.

by BOOKCAST 202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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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만 있는 풍경

광화문에게 인사를 마치고 세종대로를 남쪽으로 걷다가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문득 뒤를 한번 돌아본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봄의 풍경이 펼쳐진다. 하얀색의 거대한 화강암 북악산이 녹음의 봄빛으로 단장한 채 우뚝 솟아 있고, 뒤로는 북한산 보현봉의 뾰족한 바위 정상이 아스라이 겹쳐진다. 그 아래 방금 떠나왔던 광화문이 다소곳하서쪽으론 백호(白虎인왕산이 폭 안아준다.
 

* 광화문 뒤로 우뚝 솟은 백악산과 멀리 보이는 북한산 보현봉 정상
 

가깝게 중국에도, 일본에도, 동남아에도, 인도에도 없는 풍경이다. 멀리 이슬람 지역에도, 유럽에도, 아프리카에도 없는 풍경이다. 아주 멀리 중앙아메리카에도, 남아메리카에도 없는 풍경이다. 그들 나라와 지역에서 궁궐은 산이 저 멀리 달아난 완전 평지, 언덕이나 낮은 야산 위에 하늘 높이 솟아 있다. 그러니 궁궐 뒤쪽에 웅장한 산이 보일 리 없다.
 
우뚝 솟은 웅장한 산, 그 아래 궁궐이 다소곳 아담에게 폭 안겨 있는 풍경.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이지만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풍경이다. 풍수가 좋든 나쁘든 우리 조상들이 풍수의 논리로 저 풍경을 만들어놓았기에, 지금 우리의 수도 서울은 산이 도시 깊숙이 들어와 사람과 자연이 늘 함께 하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저 풍경을 만들어준 우리 조상께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이태호, 인왕산 봄 타고, 2021.4, 면지에 수묵, 24×64cm
 


 
동호대교를 건너서

두뭇개나루터공원에서 10분간 휴식 후 다시 길을 떠난다. 퇴계 선생은 이곳에서 배를 탔지만 우리는 걸어서 그 길을 따라가기에 동호대교 위로 한강을 건넌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 동호대교로 올라가는 길은 조금 어렵다. 5호선 옥수역 5번 출구에서 계단을 오르는데 옥수역 역사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오르면 바로 동호를 가로지르는 동호대교 위에 이른다.
 
한강 위에는 수많은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한 번도 건너보지 않은 사람에게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것은 좀 무섭기도 하다. 동호대교의 가운데에는 3호선의 지하철이 지나가고 양쪽으로 자동차도로와 인도가 있다. 인도를 따라 걸으면 안전하니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남산 오른편으로 이어진 매봉과 두뭇개나루터. 현재 동호대교가 가로지른다.
 

광화문에서 광희문까지, 광희문에서 두뭇개나루터공원까지 빌딩숲 아파트숲을 지나며 탁 트인 먼 풍경을 만나지 못했다. 먼 풍경의 첫 번째 만남이 동호대교다. 동서로 넘실거리며 흐르는 푸른 한강물과 저 멀리 굽이굽이 이어진 관악산과 청계산의 초록색 산줄기가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옷 사이를 스며든다.
 
동호대교 중간쯤에서 뒤로 돌아 북쪽을 한번 바라본다. 지금은 아파트숲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북쪽의 매봉(鷹峯)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좌우로 둘러싼 아늑함이 조금은 남아 있다. 남산 오른편으로 북한산 능선들이 아스라이 겹쳐지며 아직도 봐줄 만한 한 폭의 그림이다. 해질녘 하늘 아래 보현봉과 삼각산 능선이 아름답다.
 
그 옛날 두뭇개나루 앞에는 거대한 모래섬 저자도(渚子島)가 있었고, 나루와 섬 사이의 한강은 호수같이 깊고 잔잔해서 뱃놀이를 하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이곳을 서울 동쪽에 있는 호수란 뜻의 ‘동호(東湖)’라고 불렀다. 동호에 배 띄우고 저자도 모래섬에 내려 이별시를 주고받던 풍경, 지금으로부터 450여 년 전인 1569년 3월 5일 오전, 떠나가는 퇴계 선생과 떠나감을 아쉬워하던 고위 관료들 사이에 벌어졌던 풍경이다.
 
1970년대 모래섬 저자도는 홍수 때 한강의 물길을 틔워주기 위해, 그리고 강남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를 지을 모래를 공급하게 위해 파내면서 사라졌다. 지금 동호대교의 한강은 옛날에 비해 세 배는 넓다.
 
 
동호대교에서 봉은사까지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광희문과 두뭇개나루터공원을 거쳐 동호대교에 이르는 길은 복잡하다. 그래서 혹시라도 헤맬까 걱정되어 소개가 자세하고 길어졌다. 반면에 동호대교에서 봉은사 가는 길은 거의 국토종주 자전거길만 따라가면 되기에 눈과 마음 시원하게 정화하며 편안하게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길이다.
 
동호대교 밑을 지난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한강가에는 어릴 적 고향 동네의 뒷산에서 흔하게 보았던 아기사과나무가 100m 이상 줄지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봄이면 빨간 꽃이 녹음 짙은 잎과 어우러져 선명하고, 초가을이 되면 다닥다닥 붉은색 작은 아기사과가 가지마다 휘어질 듯 그득하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그 예쁜 모습에 취해 늘 걸음을 멈추었다. 붉은 꽃과 열매 그리고 푸른 잎이 한강과 아파트숲과 북한산과 겹쳐지면 정말 멋지고 아름답게 변하더라.
 
곧이어 성수대교 밑을 지나면 한강의 반대편이 서울숲이다. 앞쪽으로는 멀리 영동대교가 보이는데 언제 저기까지 가려나 살짝 걱정이 된다. 하지만 간혹 푸득거리는 오리, 물위로 솟구쳐 오르는 물고기, 길가 여기저기 피어난 노란 들꽃의 한강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다 보면 금새 영동대교 밑이다. 두뭇개나루터공원부터 대략 4km 1시간, 한 번쯤 쉬어갈 타임이다. 다리 밑의 그늘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잠시 쉰다.
 

* 광진교 가는 길 남단 신작로 미루나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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