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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려라 메로스>

00. <달려라 메로스> 연재 예고

by BOOKCAST 2022.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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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새로운 매력이 담긴
아홉 개의 반짝이는 조각들

 

역자 후기

이 작품집에는 표제작인 「달려라 메로스」를 포함하여 다자이 오사무가 1935년부터 1943년까지 발표한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각각 독립된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집이라 사실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다자이의 미묘한 내면의 변화를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에 소개된 작품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먼저 첫 번째 단편 「다스 게마이네」는 1935년 10월 <문예춘추>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다스 게마이네(Das Gemeine)’란 독일어로 ‘통속성, 비속성’을 뜻합니다. 이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한 제1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자 네 명이 <문예춘추>의 청탁을 받아 쓴 것으로, 소설 속에도 ‘해적’이라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주인공인 스물다섯 살의 대학생, 독특한 음대생 바바 가즈마, 바바의 친척이자 미대생인 사타케 로쿠로, 신인 작가 다자이 오사무라는 네 명의 청년이 잇따라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다스 게마이네」가 발표된 1935년은 다자이 생애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해였습니다. 신문사 입사 시험에 낙방해서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고,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복막염을 일으키면서 이때 사용된 진통제 때문에 약물중독에 빠지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다자이 나이 26세 때 일입니다. 그래서 「다스 게마이네」에는 그런 청년기 다자이의 불안과 자의식 및 정체성 혼란 등이 담겨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1937년 또 한차례 자살을 시도하지만 역시 미수에 그치고 1년여간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마침내 1938년에는 그런 침체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 「만원」입니다. 같은 해 9월 <문필>에 발표된 굉장히 짧은 분량의 단편으로, ‘만원(満願)’이란 일정 기한 동안 신이나 부처에게 기원하고 마침내 그 날짜가 다 차는 것을 뜻합니다. 여름의 이즈를 배경으로 해서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지며 다자이 오사무의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엿보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일 것으로 추측되는 ‘나’와 의사 부부, 그리고 젊은 부인의 정겨운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읽고 나면 덩달아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38년 11월에 이부세 마스지의 주선으로 다자이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좀 더 안정을 되찾게 된 그는 적극적으로 집필 활동을 해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작품이 「다스 게마이네」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편의 작품입니다. 모두 다자이의 삶에 대한 희망, 의지가 깃든 작품들로 대체로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평소 다자이 오사무를 우울하고 어두운 작가라고만 생각하셨다면, 이 작품들을 통해 다자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부악백경」은 1939년 <문체>의 2월호와 3월호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여기서 ‘부악’은 후지산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 단편은 다자이 오사무가 실제로 장편소설 집필을 위해 후지산과 가와구치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천하다옥’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며 그곳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설화한 것으로, 후지산을 통한 다자이 오사무의 정신적 성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현재 ‘천하다옥’의 2층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기념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다자이 오사무가 묵었던 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여학생」은 1939년 4월 <문학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1938년 9월에 19세 여성 독자가 다자이 앞으로 보내온 일기를 소재로 썼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작품은 사춘기에 겪는 자의식 동요와 불안정한 심리를 14세 소녀의 독백체로 섬세하게 풀어나가며 가와바타 야스나리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다자이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직소」는 1940년 2월 <중앙공론>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직소’란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윗사람이나 상급 관청에 직접 호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작품은 아내 미치코가 다자이의 구술을 받아 적어 완성한 것입니다. 유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누군가에게 호소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큰 틀로는 자신을 따스하게 품어주지 못하는 예수에 대한 원망과 부정적인 시각이 담겨 있지만, 유다 자신조차 예수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뒤섞여 무척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의 표제작인 단편 「달려라 메로스」는 1940년 5월 <신조>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주인공 메로스가 사람을 믿지 못하는 디오니스 왕에게 참된 믿음과 우정을 일깨워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전설과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바탕으로 다자이만의 독특한 개성을 담아 창작한 작품이며 일본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소설입니다.

「도쿄팔경」은 1941년 1월 <문학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도쿄에서 보낸 10년을 단편으로 엮은 소설입니다. 다자이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도쿄의 풍경이 아닌 그 풍경 속의 자신을 담아냅니다. 형의 죽음, 약물중독,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과 이별, 세 번의 자살 시도 등의 어둡고 우울한 내용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결혼, 일에 대한 의욕과 희망의 메시지가 보이며 점차 밝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저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귀거래」는 1943년 6월 <야쿠모(八雲)>에 발표되었고, 「고향」은 1943년 1월 <신조>에 발표되었습니다. 두 작품은 연작 형식을 띤 자전적 소설입니다. 「귀거래」는 고향과 의절하고 지낸 주인공이 나카하타 씨와 기타 씨라는 두 사람의 도움으로 10년 만에 고향집을 찾게 되어 이들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는 내용이고, 「고향」은 고향집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고향집을 찾게 되는 내용입니다. 온 가족이 어머니의 병환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이면서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평소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즐겨 읽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그의 작품들은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A라는 작품에선 미처 몰랐던 사실이나 등장인물의 감정이 B라는 작품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C작품에서 궁금했던 부분이 D라는 작품에서 밝혀지기도 하는 식입니다. 이를테면 이 작품집 『달려라 메로스』만 보더라도 「귀거래」와 「고향」이 한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도쿄팔경」에서는 ‘음지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음지 일’이 뭐지? 하는 궁금증이 생길 것입니다. 이 음지 일에 대한 설명은 다자이의 유명한 장편 『인간 실격』에서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또한 「도쿄팔경」에서는 다자이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장면을 깊게 다루지 않지만 『인간 실격』에서 주인공 ‘요조’의 시선으로 그때 느낀 다자이의 깊은 슬픔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이런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언젠가 다자이 오사무의 전 작품을 읽고 번역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그럼 저도 아직 미처 다 찾지 못한 퍼즐 조각을 찾게 되지 않을까요? 독자 여러분도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재밌게 읽으셨다면 앞으로 이 여정을 저와 함께 해나가면 역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 역자 장하나 -

 


 

저자 l 다자이 오사무

1909년 출생. 본명은 쓰시마 슈지. 현 내 굴지의 대지주 집안이긴 했지만, 후계자와는 무관한 여섯째 아들인 그는 부모님의 애정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그의 삶은 실로 파란만장했다. 1929년 스무 살이 되던 해 첫 자살 시도를 시작으로 살아 있는 동안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던 그는 1948년 다섯 번째 자살 시도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인과 함께 강에 뛰어든 그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6월 19일, 그의 마흔 번째 생일이었다.
그는 1930년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공산주의 운동 가담 등의 이유로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아 제적당했다. 1933년, 처음으로 ‘다자이 오사무’라는 필명으로 『열차』를 발표했고, 1936년 첫 단편집 『만년』을 출간했다. 자전적 소설인 『인간 실격』은 그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로 그의 사후 출간되었다. 누적 판매 부수 천만 부 이상을 기록하며 다자이 오사무를 일본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그의 생전에 가장 많이 사랑받은 작품은 『사양』으로 1947년 출간되자마자 ‘사양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이번 작품집 『달려라 메로스』는 일본에서 수천 회 연극으로 공연된 표제작 「달려라 메로스」를 비롯하여 다자이 오사무의 색다른 매력이 담긴 단편들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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