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알 사건이 있고 나서 열흘 정도 지나자 불길한 일이 또 일어나, 어머니를 더욱 깊은 슬픔에 빠뜨렸고 끝내 명을 앞당겼다.
내가, 불을 낸 것이다.
내가 불을 내다니. 내 생애 그토록 무서운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어려서부터 지금껏 꿈에서조차 한 번도 생각해본적 없었는데.
불을 소홀히 하면 불이 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도 알지 못할 만큼, 나는 소위 ‘공주님’이었던 걸까.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현관 칸막이 옆까지 갔는데, 욕실 쪽이 환했다. 무심코 들여다보니 욕실 유리문이 새빨갛고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잰걸음으로 달려가 욕실 쪽문을 열고 맨발로 밖에 나가 보니, 욕실 아궁이 옆에 쌓아 올린 장작더미가 맹렬한 기세로 타고 있었다.
정원과 맞닿은 아랫집 농가로 달려가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나카이 씨! 일어나요, 불이에요!”
나카이 씨는 이미 잠든 듯했지만,
“네! 금방 가요!”
하고 대답했다. 내가 “제발 빨리요!” 하고 말하는 사이, 그는 유카타 차림으로 집을 뛰쳐나왔다.
우리 두 사람은 불난 곳으로 달려가 양동이로 연못 물을 퍼 올려 불에 끼얹는데, 방 안 복도 쪽에서 어머니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양동이를 내던지고 정원에서 복도로 뛰어들었다.
“어머니, 염려 마시고, 괜찮으니 쉬고 계세요.”
쓰러질 듯한 어머니를 부축해 자리로 모셔서 누인 다음, 다시 불난 곳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욕조 물을 퍼서 나카이 씨에게 건넸다. 나카이 씨는 그 물을 장작더미에 퍼부었지만, 불길이 너무 세서 그런 식으로는 도저히 잡힐 것 같지 않았다.
“불이야! 불이야! 별장에 불이 났다!”
아래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마을 사람 네댓 명이 울타리를 부수고 뛰어 들어왔다. 그러고는 울타리 아래 용수로의 물을 릴레이식으로 퍼 나르며 2, 3분 만에 불길을 잡았다. 자칫하면 욕실 지붕으로 불이 번질 뻔했다.
다행이다, 하고 안도한 순간, 나는 이 화재의 원인을 깨닫고 섬찟했다. 그제야 비로소 이 불 소동이, 저녁에 내가 욕실 아궁이에서 타다 남은 장작을 꺼내, 다 꺼진 줄 알고 장작더미 옆에 뒀다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눈물이 복받쳐 멀거니 서 있는데, 앞집 니시야마 씨네 며느리가 울타리 밖에서, 욕실이 아주 그냥 다 탔네, 아궁이 불단속을 대체 어찌했길래, 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게 들렸다.
촌장인 후지타 씨, 니노미야 순경, 소방단장인 오우치 씨 등이 찾아왔다. 후지타 씨는 여느 때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놀라셨죠? 어떻게 된 겁니까?”
“다 제 탓이에요. 장작 불씨가 다 꺼진 줄 알았는데…….”
말을 꺼내다 너무 비참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통에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있었다. 경찰서에 끌려가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에 잠옷 바람으로 흐트러진 내 모습이 갑자기 낯부끄러워서 바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렇군요, 어머님은요?”
후지타 씨가 위로하듯 나직이 물으셨다.
“방에서 쉬게 해드렸어요. 너무 놀라셔서…….”
“그래도 뭐.”
젊은 니노미야 순경도 위로하듯 말했다.
“집에 불이 안 번져서 다행입니다.”
그러자 아랫집 나카이 씨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와서는,
“그냥 장작이 좀 탔을 뿐입니다. 화재랄 것도 없어요.”하고 숨을 헐떡이며 내 어리석은 과실을 감싸주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촌장 후지타 씨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니노미야 순경과 뭔가 조용조용 의논하더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머니께 안부 전해주세요.”하고는 그대로 소방단장인 오우치 씨 및 다른 분들과 함께 돌아갔다.
니노미야 순경만 남아 내 앞에 와서는 속삭이듯 말했다.
“암튼 오늘 밤 일은 따로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니노미야 순경이 돌아가자 나카이 씨가 물었다.
“니노미야 씨가 뭐라던가요?”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 긴장한 목소리였다.
“보고하지 않으시겠대요.”
내가 대답하자, 아직 울타리 쪽에 남아 있던 이웃분들이 내 대답을 알아들은 모양인지, 그래? 다행이네, 다행이야, 하면서 슬슬 발길을 돌렸다.
나카이 씨도, 그럼 이제 좀 쉬십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 혼자 멍하니, 타버린 장작더미 옆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어느새 새벽이 오고 있었다.
욕실에서 손과 발, 얼굴을 씻고, 어머니 보기가 어쩐지 겁이 나서 머리를 매만지며 꾸물거리다가, 부엌으로 가서 날이 꼬박 밝을 때까지 애꿎은 식기들을 정리했다.
날이 밝아 발소리를 죽이고 방 쪽으로 살며시 가보니, 어머니는 이미 말끔히 옷을 갈아입고, 응접실 의자에 몹시 지친 듯 앉아 계셨다. 나를 보고 싱긋 웃으셨는데, 그 얼굴이 놀라우리만치 창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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