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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간 실격>

02. 저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by BOOKCAST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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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수기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저는 도호쿠 지방의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꽤 자란 다음에야 기차를 처음 보았습니다정거장에 있는 육교를 오르내리면서도 그것이 선로를 건너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전혀 몰랐지요선로는 그저 정거장의 구내를 외국의 놀이시설처럼 복잡하고 즐겁게유행에 맞게 만들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저는 육교를 오르내리는 행동을 상당히 세련된 놀이이자 철도 서비스 중에서도 가장 멋진 서비스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나중에 그것이 단순히 여행객들이 선로를 건너가게 만들어 놓은 굉장히 실용적인 계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흥이 깨졌습니다.


, 어릴 때 그림책에서 지하철이라는 것을 보고도 이것 역시 실리적인 필요에 의해 고안된 것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지상에 다니는 차를 타는 것보다는 지하에 있는 차를 타는 편이 색다르고 재미있지,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자주 몸져누웠습니다. 누워있으면서 요 위의 천, 베갯잇, 이불 홑청은 정말 쓸데없는 장식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무 살 무렵 그것이 의외로 실용품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인간의 알뜰함에 암담함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또 저는 공복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 말은, 제가 의식주가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그런 재수 없는 뜻이 아니라, ‘공복이라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다는 말입니다. 이상한 소리지만, 저는 배가 고파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주변 사람들이 에고, 배고프겠다. 우리도 그랬던 기억이나. 학교 갔다 오면 정말 배가 고팠거든. 아마낫토 좀 줄까? 카스텔라나 빵도 있어 하면서 소란스럽게 굴었기 때문에, 저는 타고난 아부 실력을 발휘해서 , 배고파라고 중얼거리며 아마낫토 열 알 정도를 입에 던져 넣었지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복감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도 굉장히 잘 먹긴 했지만,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은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특이하거나 호화스럽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 남의 집에 갔을 때 내어주는 음식은 무리를 해서라도 거의 다 먹었습니다. 그랬던 어린 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우리 가족의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제 시골집에서는 열 명 정도의 가족이 전부 제각각 밥상을 두 줄로 마주 보게 늘어놓고 식사를 했습니다. 막내인 저는 당연히 가장 끝자리였는데, 식사를 하던 방은 어둑어둑했고, 점심 식사 때 열 명 남짓한 가족이 그저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는 늘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시골의 예스러운 집안이라 반찬도 대부분 그게 그거라서 특이한 음식, 호화스러운 음식은 바랄 수도 없었기에 점점 저는 식사 시간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어두컴컴한 방의 끝자리에서 추위에 덜덜 떠는 기분으로 입에 억지로 밥을 조금씩 밀어 넣으면서, 인간은 왜 하루에 세 번씩이나 밥을 먹는 걸까, 참 다들 엄숙한 얼굴을 하고 먹는구나 생각했지요. 식사라는 건 가족들이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두고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서 나란히 밥상을 늘어놓고, 먹고 싶지 않아도 말없이 밥알을 씹으면서 고개를 숙인 채 집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를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밥을 안 먹으면 죽는다는 말은 제 귀에는 그저 짜증 나는 위협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미신은(지금도 저는 왠지 미신처럼 생각됩니다만) 늘 저에게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했습니다. 사람은 밥을 안 먹으면 죽어. 그래서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거야, 라는 말처럼 난해하고 어렵고 협박처럼 느껴지는 말은 없었습니다.
 
즉 저는 아직까지도 인간의 생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는 말이 되겠네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과 세상 모든 이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이 완전히 어긋나 있는 듯한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마다 뒤척이고 신음하며 미칠 뻔한 적도 있습니다. 과연 저는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행운아 소리를 곧잘 들어왔는데요, 정작 저는 항상 지옥에 있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에게 행운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더 평안해 보였습니다.
 
저에게는 열 가지 재앙 덩어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라도 주변 사람이 짊어지게 된다면, 그 한 개만으로도 충분히 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즉 모르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이 지닌 괴로움의 성질이나 정도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실용적인 괴로움, 그저 밥만 먹을 수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괴로움.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고통이고, 제가 말한 열 가지 재앙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처참한 아비지옥일지도 모르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고, 절망도 하지 않고 굽히지도 않으면서 삶을 위한 싸움을 잘도 계속하지요. 그런 걸 보면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요? 완벽한 이기주의자가 되고, 게다가 그걸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면서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한 적이 없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참 속 편하겠네요. 하지만 인간이란 다들 그런 거고, 또 그걸로 완벽한 게 아닐까요? 잘 모르겠네요……. 밤에는 푹 잠들고, 아침에는 상쾌할까요? 어떤 꿈을 꾸는 걸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요. 인간은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거지, 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돈을 위해서 산다, 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군요. 아니, 하지만 어쩌면…… 아니에요,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생각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고, 저만 혼자 특이한 사람 같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힐 뿐입니다. 저는 주변 사람과 대화가 잘 안됩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건, 개그였습니다.
그건 인간에 대한 저의 마지막 구애였지요.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인간을 단념할 수 없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개그라는 한 가닥의 선으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끊임없이 웃는 얼굴을 만들면서도 속으로는 필사적으로,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한 위기일발의 식은땀 나는 서비스를 구사했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가족에 대해서조차,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또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렵고, 그 어색함을 견딜 수 없어서 일찍부터 저는 이미 뛰어난 개그맨이 되었습니다. 즉 어느샌가 진실은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있던 겁니다.
 
그 무렵,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다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저 혼자만 꼭 기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저의 유치하고 서글픈 개그의 일종인 것이지요.
 
또 저는 가족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들어도 한 번도 말대꾸를 한 적이 없습니다. 약간의 잔소리는 마치 벼락처럼 강하게 느껴져서 미칠 것 같았기 때문에 저는 말대꾸는커녕 이 잔소리야말로, 말하자면 대대로 내려오는 인간의 진리임이 분명하다, 나에게는 그 진리를 행할 능력이 없으니까, 이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건 아닐까, 라고 믿어버리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말다툼도 자기변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게 뭐라고 하면 정말 제가 엄청 잘못 생각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항상 그 공격을 잠자코 받아들이면서도 속으로는 미칠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야 뭐 누구라도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면 기분 좋을 사람은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훨씬 더 두려운 동물의 본성을 보았습니다. 평소에는 그 본성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가도 어떤 계기로, 가령 소가 초원에서 느긋한 모습으로 자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배 위의 말파리를 철썩하고 쳐서 죽이듯이, 갑작스러운 분노를 통해 인간이 숨겨둔 무서운 정체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저는 항상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는 듯한 소름을 느꼈고, 이 본성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자격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저 자신에 대한 절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항상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었고, 또 인간으로서 제 말과 행동에 조금도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 혼자만의 고민을 가슴속 작은 상자에 숨긴 채 그 우울감과 예민함을 꽁꽁 숨기고 감추면서, 그저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척을 하면서 저는 차츰 익살스럽고 특이한 아이로 완성되어갔습니다.
 
뭐든지 좋으니까 웃기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내가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의 바깥쪽에 있다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테지, 어쨌든 그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면 안 돼,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거야, 바람이야, 허공이야, 이런 생각만 점점 심해져서 저는 재미있는 척을 하며 가족을 웃겼고, 또 가족보다도 더 알 수 없어서 두려운 하인과 하녀에게까지 필사적으로 개그 서비스를 했던 것입니다.
 
저는 여름에 유카타 안에 털로 된 빨간 스웨터를 입고 복도를 걸으면서 가족을 웃겼습니다. 좀처럼 안 웃는 큰형도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요조, 이런 날씨랑 안 어울린다고라며 귀여워 죽겠다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 물론 저도 한여름에 털로 된 스웨터를 입고 돌아다닐 정도로, 그렇게 추위를 구분 못 하는 괴짜는 아닙니다. 누나의 레깅스를 양팔에 끼우고, 팔을 유카타 소매 밖으로 꺼내서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보이게 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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