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수기
저희 아버지는 도쿄에 업무가 많은 분이어서 우에노의 사쿠라기초에 별장을 갖고 계셨습니다. 한 달에 반 정도는 도쿄의 그 별장에서 지내셨지요. 그리고 돌아올 때는 가족과 친척에게까지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은 선물을 사다 주시는 것이 뭐랄까, 아버지의 취미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도쿄에 가시기 전날 밤, 아버지는 아이들을 응접실에 모아두고 이번에 돌아올 때는 어떤 선물을 갖고 싶은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웃으며 물으시고는 그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을 하나하나 수첩에 적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아이들을 다정하게 대하는 건 드문 일이었습니다.
“요조는 뭘 갖고 싶니?”
아버지가 이렇게 물으시자 저는 말문이 막혀서 우물거리고 말았습니다.
뭐가 갖고 싶냐는 질문을 들으면 저는 아무것도 갖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나를 기쁘게 하는 물건 따위 없는데, 얼핏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다른 사람에게 받은 물건이 아무리 제 취향이 아니더라도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하며 마치 남의 걸 훔치듯이 전혀 누리지 못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습니다. 즉 저에게는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는 능력조차없던 것입니다. 이것이 훗날, 저의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의 중대한 원인이 된 하나의 성향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말없이 머뭇머뭇했더니 아버지는 살짝 언짢은 얼굴을 하시고 “역시 책이냐? 아사쿠사 절 쪽의 상점가에 정월 사자춤에 쓰는 탈을 팔던데. 아이들이 쓰고 놀기에 적당한 크기였어. 그거 갖고 싶지 않니?”
갖고 싶지 않니?, 라는 말이 나오면 끝입니다. 재미있는 대답이고 뭐고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개그맨 역할은 완전히 탈락입니다.
“책이 좋겠지요.”
큰형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냐?”
아버지는 김빠진 표정으로 제 건 수첩에 적지도 않으시고, 수첩을 탁 덮어버렸습니다.
어쩌다 이런 실수를 한 걸까. 나는 아버지를 화나게 만들었고, 그에 대한 복수는 분명 무시무시할 거야. 지금이라도 만회할 수 없는 걸까? 하며 그날 밤 이불 속에서 덜덜 떨며 생각하다가 저는 몰래 일어나 응접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까 수첩을 집어넣은 책상 서랍을 열고 수첩을 꺼내어 팔랑팔랑 넘겨서 선물 리스트 부분을 찾아, 연필로 신중하게 ‘사자춤’이라고 적어두고 잤습니다. 저는 그 사자탈을 전혀 갖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책이 나을 지경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제게 그 사자탈을 사주고 싶어 하시는 걸 눈치채고, 아버지의 의향에 맞춰드려서 기분을 풀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굳이 깊은 밤 응접실에 몰래 들어가는 모험을 무릅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대단한 모험은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대성공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아버지가 도쿄에서 돌아오셔서 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저는 아이들 방에 있다가 들었지요.
“글쎄, 아사쿠사 장난감 가게에서 이 수첩을 펼쳐봤더니, 이것 좀 봐. 여기에 사자춤이라고 쓰여 있지? 이게 내 글씨가 아니란 말이지. 요조 그 녀석은 내가 물어볼 때는 히죽히죽거리고만 있더니 나중에 아무리 생각해도 사자탈이 너무 갖고 싶었나 보지? 하여간 웃기는 녀석이라니까. 관심 없는 척하더니 여기에 똑바로 써놨더라고. 그렇게 갖고 싶었으면 말하면 될 것을. 장난감 가게 앞에서 어찌나 웃었던지. 빨리 요조를 불러와요.”
또 저는 하인과 하녀들을 서양식 방에 불러 모아, 하인 한명에게 대충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게 하고(시골이었지만, 그 집에는 웬만한 건 대부분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 엉터리 곡에 맞춰 인디언 춤을 춰 보이며 모두를 크게 웃게 만들었습니다. 작은형은 플래시를 터뜨리며 제 인디언 춤을 찍어댔지요. 나중에 사진이 나온 걸 보니 제가 허리에 두른 천(오색무늬의 보자기였습니다)의 이음매 사이로 작은 고추가 보이는 바람에 또 온 집안을 깔깔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이것 또한 의외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매달 신간 소년잡지를 열 권 넘게 읽고 있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책을 도쿄에서 주문해서 묵묵히 다 읽고 있었지요. 그래서 잡지에 나오는 엉터리 박사님이나 신비한 박사님 이야기 같은 건 완전 빠삭했고, 그뿐만 아니라 괴담, 야담, 만담, 에도 옛날이야기 같은 종류도 꽤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지한 얼굴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해서 가족을 웃기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 학교!
저는 학교에서 존경받을 뻔했습니다. 존경받는다는 개념 또한, 저를 굉장히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깝게 다른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누군가 한 명에게 간파당하고 산산조각 나서 죽기보다 더한 개망신을 당한다, 이것이 ‘존경받는다’는 상태에 대한 저의 정의였습니다. 다른 이들을 속이고 ‘존경받는다’ 해도 누군가 한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곧 그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면, 그들은 자신들이 속은 걸 깨닫게 되겠지. 그때 인간들이 느끼는 분노, 그리고 복수는 과연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입니다.
저는 부잣집 아들이라는 점보다도, 흔히 말하는 ‘공부를 잘한다’는 점 때문에 학교에서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한두 달이나 혹은 한 학년 가까이 자리에 누워 있느라 학교를 쉰 적도 자주 있습니다. 그래도 병이 나으면 그 몸으로 인력거를 타고 학교에 가서 기말고사를 보곤 했는데, 반의 누구보다도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몸 상태가 좋을 때도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학교에 가도 수업 시간에 만화나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반 친구들에게 그 만화를 보여주고 설명을 들려주면서 그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또 작문에는 웃기는 이야기만 써서 선생님이 주의를 주셨지만 저는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사실 선생님도 은근슬쩍 제가 쓴 웃기는 이야기를 기대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어느 날, 저는 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도쿄로 가던 중에 기차에서, 객차 통로에 놓여 있는 가래 뱉는 항아리에 소변을 본 실수담(하지만 그때 제가 그런 용도의 항아리인 걸 모르고 한 건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뽐내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을 일부러 슬픈 필치로 써서 제출했습니다. 선생님이 반드시 웃으실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교무실로 향하는 선생님의 뒤를 몰래 쫓아갔습니다. 선생님은 교실을 나서자마자 곧장 제가 쓴 글을 골라내서 복도를 걸어가며 읽기 시작하시고 큭큭 웃으시더니, 이윽고 교무실에 들어가서 마저 다 읽으시고는 얼굴이 새빨개지실 정도로 큰 소리로 웃으시며 다른 선생님들에게 제 글을 읽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굉장히 만족했습니다.
장난꾸러기.
저는 남들 눈에 소위 장난꾸러기처럼 보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존경받는 것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 성적표는 전 과목 10점 만점이었는데, 품행 과목만 7점이나 6점을 받아서 또 가족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본성은 그런 장난꾸러기 따위와는 완전 정반대였습니다. 이미 저는 그 무렵, 하녀와 하인을 통해 서글픈 일을 배웠지요. 동정을 잃었거든요. 저는 지금까지도 어린 소년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건,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 중에서 가장 추악하고 저질이고 잔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참았습니다. 이로써 또 한 가지, 인간의 특성을 보았다는 생각마저 들어서 무기력하게 웃기만 했습니다. 만약 제게 진실을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면, 떳떳하게 그들의 범죄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호소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조차도 전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 방법에는 조금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호소해도, 어머니에게 호소해도, 경찰에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들이 기세 좋게 떠드는 소리만 듣게 되는 것 아닐까? 틀림없이 편파적일 게 뻔해서 어차피 인간에게 호소하는 건 소용없다. 저는 역시 진실은 하나도 말하지 않고 꾹 참으면서 개그나 계속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뭐야, 인간에 대한 불신을 말하는 거야? 저런, 네가 언제부터 크리스천이 됐니?’ 하며 빈정거릴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이 꼭 종교의 길로 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포함해서, 인간은 서로에 대한 불신 속에서 여호와고 뭐고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고,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제가 어렸을 때의 일인데요, 아버지가 속한 어느 정당의 유명인사가 이 마을에 연설을 하러 온다기에, 저도 들어보려고 하인들과 극장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이 마을에서 아버지와 특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와서 크게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연설이 끝나고 청중들은 삼삼오오 뭉쳐 눈 내리는 밤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오늘 밤의 연설회 험담을 마구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아버지와 굉장히 친한 사람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개회사도 별로였고, 그 유명인사의 연설도 무슨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소위 아버지의 ‘동지들’이 화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그 사람들은 저희 집 응접실에 들러서 아버지께 오늘 연설회는 대성공이었다고, 진심으로 기쁜 얼굴로 말했습니다. 오늘 밤 연설회는 어땠냐고 물으시는 어머니에게 굉장히 재미있었다고 하인들까지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겁니다. 돌아오는 길에 연설회처럼 지루한 건 없다고 한숨을 쉬었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건 정말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서로 속이면서도 어느 쪽도 상처받지 않고, 서로 속이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듯한, 그야말로 산뜻하고 맑고 밝고 쾌활한 불신의 사례가 인간의 삶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서로 속이고 있는 것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저도 개그맨인 척하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니까요. 저는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정의니 뭐니 하는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서로 속이면서, 맑고 밝고 쾌활하게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가는 자신감을 가진 듯한 사람이 난해한 겁니다. 사람들은 끝끝내 저에게 그 뛰어난 기술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만 알았더라면 저는 이렇게까지 인간을 두려워하거나, 필사적인 개그 서비스 따위를 하거나 하진 않았겠지요. 인간의 삶과 대립하며 밤마다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지는 않았겠지요. 즉 제가 하인과 하녀의 가증스러운 범죄조차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못한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 사상 때문도 아니고요. 인간이 저, 요조라는 사람에게 신용이라는 껍데기를 굳게 닫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조차도 저에게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신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못하는 제 고독의 냄새를 많은 여성들이 본능적으로 맡았고, 이것이 훗날 제가 다양한 여성들에게 휘말리는 요인 중 하나가 된 것 같습니다.
즉 여성들의 눈에 저는 사랑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남자로 보였던 겁니다.
'소설 > <인간 실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 “이거 괴물 그림이야.” (마지막 회) (1) | 2022.06.28 |
---|---|
04. 이제는 내 정체를 완벽히 은폐할 수 있겠구나 (1) | 2022.06.27 |
02. 저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2) | 2022.06.24 |
01. 서문 (1) | 2022.06.23 |
00. <인간 실격> 연재 예고 (1) | 2022.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