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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간 실격>

01. 서문

by BOOKCAST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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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을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남자의 유년 시절이라고 해야 하나?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사진인데, 그 아이가 많은 여자에게 둘러싸여(아마 그 아이의 누나들, 여동생들, 그리고 사촌들인 것 같다) 정원의 연못 근처에서, 굵은 줄무늬 하카마를 입고 고개를 30도 정도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고 서서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흉하게? 하지만 무딘(말하자면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귀여운 꼬마네요.’

라고 적당히 입에 발린 말을 해도 아주 빈말로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귀여움’이 그 아이의 얼굴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얼굴을 한 번 보고 바로,

‘뭐지, 불쾌한 아이네.’

라고 매우 기분 나쁜 듯이 중얼거리면서 송충이라도 털어낼 법한 손놀림으로 그 사진을 냅다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뭔지 모르게 불쾌하고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 애초에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는 게 그 증거다. 사람은 주먹을 꽉 쥔 채로 웃을 수 없다. 원숭이. 웃는 얼굴의 원숭이다. 그저 흉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뿐이다. ‘쪼글쪼글 꼬맹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정말 기묘하면서도 추한, 괜히 욕이라도 한마디 뱉고 싶게 만드는 표정의 사진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표정의 아이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두 번째 사진은 또 얼굴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바뀌어 있다. 학생의 모습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인지 대학교 시절의 사진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아주 잘생긴 외모의 학생이다. 하지만 희한하게 이번 사진도 살아 있는 사람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는 교복 가슴 쪽 주머니에 하얀 손수건을 꽂고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서 다리를 꼰 채 역시나 웃고 있다. 이 사진 속의 웃는 얼굴은 쪼글쪼글한 원숭이의 웃음이 아니라 꽤 자연스러운 미소였지만, 인간의 웃음과는 어딘가 다르다.

피의 무게라고 해야 하나, 생명의 깊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한 충실감이 조금도 없다. 말하자면 새처럼 가벼운 정도가 아니라 깃털처럼 가벼운, 그저 흰 종이 한 장처럼 가볍게 웃고 있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어진 느낌이다. 거슬린단 말로는 부족하다. 경박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끼 부리고 있다고 하기에도 부족하다. 멋쟁이라고 하기에도 역시 부족하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잘생긴 학생에게도 어딘지 모르게 괴이한 불쾌함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외모의 청년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지막 사진이 제일 기괴하다. 이건 언제 적 사진인지도 모르겠다. 머리에는 어느 정도 흰머리가 생긴 것 같다. 그는 엄청 지저분한 방(벽 세 군데 정도가 무너져 내린 것이 그 사진에 또렷이 찍혀 있다)의 구석에서 조그만 화로에 양손을 쬐고 있는데, 이번에는 웃지 않는다. 아무런 표정도 없다. 말하자면 앉아서 화로에 두 손을 쪼이며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듯한, 정말 꺼림칙하고 불길한 냄새가 묻어나는 사진이다. 기괴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 사진에는 비교적 얼굴이 크게 찍혀 있어서, 나는 찬찬히 그 얼굴 생김새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마는 평범, 이마의 주름도 평범, 눈썹도 평범, 눈도 평범, 코도 입도 턱도 평범하다. 아, 이 얼굴에는 표정만 없는 게 아니라 인상조차 없구나. 아예 특징이 없는 거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사진을 보고 눈을 감았다 치자. 그럼 나는 이미 그 얼굴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사진 속 방의 벽이나 조그만 화로는 떠올릴 수 있는데, 그 방의 주인공 얼굴은 싹 사라져서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얼굴이다. 만화도 뭣도 안 되는 얼굴이다. 눈을 뜬다. 아, 이런 얼굴이었구나, 생각나서 느끼는 기쁨조차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눈을 뜨고 다시 그 사진을 본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불쾌하고 짜증 나고 나도 모르게 사진에서 시선을 돌리고 싶어진다.

흔히 말하는 ‘죽을상’에도 뭐랄까 좀 더 표정이라든가 인상이라는 게 있을 텐데, 사람 몸에 짐을 실어 나르는 말의 목을 붙이면 이런 느낌이 날까? 아무튼 딱히 이유도 없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싹하고 기분 나쁘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얼굴의 남자를 본 적은 역시나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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