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귀의 고름을 닦아주고 다케이치가 저에게 여자들이 반할 거라는 바보 같은 아부를 했을 때, 저는 그저 얼굴을 붉히며 웃었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실은 어렴풋이 짚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이 너한테 반하겠어’라는 속된 말을 듣고 거기에 대고 우쭐대는 느낌으로 ‘듣고 보니 짚이는 게 있어’라고 말하는 건, 만담에 나오는 부잣집 도련님의 대사로도 못 써먹을 만큼 오글거리는 감회를 드러내는 일이기에, 절대로 저는 그런 우쭐대는 마음으로 ‘짚이는 것이 있었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남자보다도 여자가 훨씬 더 난해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고 친척 중에도 여자가 많았습니다. 또 앞에 말한 ‘범죄’를 저지른 하녀도 있군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여자들하고만 놀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그 여자들과 지내온 겁니다. 대부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리무중 상태로 가끔 호랑이 꼬리를 밟는 실수를 하고 지독한 상처를 입었는데, 그건 남자에게 맞는 채찍과는 또 달라서 내출혈처럼 굉장히 불쾌하게 내면을 공격하는 바람에 좀처럼 치유되기 힘든 상처였습니다.
여자는 나를 끌어당겼다가도 홱 밀쳐내곤 한다, 혹은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나를 무시하고 차갑게 굴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꽉 끌어안는다, 여자는 죽은 듯이 깊이 잠든다, 여자란 잠들기 위해 살아 있는 게 아닐까. 그 외에도 이미 저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에 대한 여러 가지 관찰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똑같은 인류인 것 같으면서도, 남자와는 전혀 다른 생물처럼 느껴지고, 이렇게 이해할 수 없고 방심할 수 없는 생물이 기묘하게도 저를 돌봐주더군요. ‘반하다’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제 경우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고 ‘돌봐준다’라는 말이 그런대로 실상을 설명하는 데 적당할지 모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웃음에 너그러웠습니다. 제가 웃기는 연기를 하면 남자들은 언제까지고 낄낄 웃어주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저도 남자에게는 오버해서 개그를 던지면 실패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적당히 수위를 조절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듯이, 언제까지고 계속 제게 개그를 해보라고 요구하고, 그 끝없는 앙코르에 응하다 보면 저는 녹초가 되곤 하는 겁니다. 여자들은 정말 잘 웃습니다. 아무래도 여자는 남자보다 쾌락을 잔뜩 입안에 넣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신세를 진 그 집의 자매들도 틈만 나면 2층의 제 방에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매번 튀어 오를 정도로 흠칫 놀랐고 두려워할 뿐이었습니다.
“공부하니?”
“아니요.”
하고 책을 덮으면서,
“오늘 있잖아요, 학교에서 말이죠, 막대기라고 불리는 지리 선생님이 있는데요.”
이렇게 제 입에서는 마음에도 없는 웃기는 이야기가 술술 나왔습니다.
“요조, 너 안경 좀 써봐.”
어느 날 밤, 셋짱이 아네사와 같이 제 방에 놀러 와서 저에게 개그를 다 시킨 후에 말했습니다.
“안경은 왜?”
“그냥 좀 써봐. 언니 안경 빌려서 써보라고.”
늘 이런 식의 난폭한 명령조로 말합니다. 개그맨은 순순히 아네사의 안경을 썼습니다. 안경을 쓰자마자 두 자매는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완전 똑같아. 해럴드 로이드하고 똑같잖아.”
당시 해럴드 로이드라고 하는 외국인 희극배우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일어서서 한 손을 들고,
“여러분, 이번에 일본의 팬 여러분께…….”
이렇게 말하면서 한바탕 인사말을 늘어놓아서 그들을 더 크게 웃게 만들었지요. 그러고는 동네 극장에서 해럴드 로이드의 영화를 상영할 때마다 보러 가서, 몰래 그 배우의 표정 등을 연구했습니다.
어느 가을밤, 제가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네사가 새처럼 재빠르게 방으로 들어오더니 갑자기 제 이불에 쓰러져 우는 겁니다.
“요조, 나 좀 도와줄 거지? 그렇지? 이런 집구석, 나랑 같이 나가버리는 게 좋겠어. 도와줘. 도와달라고.”
이런 식으로 격한 말을 내뱉더니 또 울더군요. 하지만 여자가 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아네사의 과격한 말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그 진부함과 별것 없음에 김이 빠졌습니다. 저는 가만히 이불에서 빠져나와 책상 위의 감을 깎아서 아네사에게 한 조각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네사는 훌쩍훌쩍하면서 감을 먹더니
“뭐 재미있는 책 없어? 빌려줘.”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책장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꺼내주었습니다.
“감, 잘 먹었어.”
아네사는 민망한 듯이 웃으며 방을 나갔습니다. 아네사 뿐만이 아니라 도대체 여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를 추측하는 것은, 지렁이의 생각을 살피는 것보다도 까다롭고 번거롭고 왠지 기분 나쁘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저는 여자가 그렇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 뭔가 달달한 걸 건네주면 그걸 먹고 기분이 풀린다는 건 어려서부터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또 셋짱은 제 방에 자기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제가 여느 때처럼 공평하게 모두를 웃게 만들고 나면 친구가 돌아간 다음에 꼭 그 친구의 험담을 하는 겁니다. 아까 걔는 불량한 애니까 조심하라는 식으로요. 그럴 거면 굳이 데리고 오지 않으면 될 텐데, 아무튼 덕분에 제 방에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다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다케이치의 아부성 발언이었던 ‘너한테 홀딱 반하겠어’라는 말이 벌써 실현된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직 저는 일본 도호쿠의 해럴드 로이드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다케이치의 바보 같은 아부가 꺼림칙한 예언으로 생생하고 불길한 형태로 나타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다케이치는 저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거 괴물 그림이야.”
언젠가 다케이치가 제 2층 방에 놀러 왔을 때, 그는 우쭐거리며 컬러판 그림 한 장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라? 그림을 본 순간, 제가 갈 길이 정해졌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그림이 반 고흐의 자화상일 뿐이라는 걸요. 우리가 소년이었을 무렵, 소위 말하는 프랑스 인상파 그림이 일본에서 유행한 터라 서양화 감상을 대부분 이때쯤부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시골 중학생이라도 고흐, 고갱, 세잔, 르누아르 등과 같은 화가들의 그림은 대부분 사진으로 봐서 알고 있었지요. 저도 고흐의 컬러판 그림을 꽤 많이 봐서 독특한 터치와 색채의 화려함에 흥미를 느끼고는 있었는데, 그걸 보고 괴물 그림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건 어떠려나? 역시 괴물 같으려나?”
저는 책장에서 모딜리아니의 화집을 꺼내, 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 여인의 누드화를 다케이치에게 보여줬습니다.
“굉장하네.”
다케이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습니다.
“지옥의 말 같아.”
“역시 또 괴물이야?”
“나도 이런 괴물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훨씬 더 무서운 요괴를 두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어 하는 심리, 신경질적이고 쉽게 겁을 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보다 강력한 것을 바라는 심리. 아아, 이 많은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괴물에게 당하고, 위협받고 끝끝내 환영을 믿다가 대낮의 자연 속에서 또렷이 요괴를 보게 된 거구나. 게다가 그들은 그걸 얼렁뚱땅 속이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거구나. 다케이치의 말마따나 과감하게 ‘괴물 그림’을 그려버린 거야. 내 미래의 동료들이 여기에 있었네 하며 저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벅차올라서, “나도 그릴 거야. 괴물 그림을 그릴 거야. 지옥의 말을 그릴 거라고”라고 왜 그랬는지 엄청 목소리를 낮추어 다케이치에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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