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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룰루레몬 스토리>

08. 파워 우먼과 슈퍼걸

by BOOKCAST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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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의 발달은 일종의 성적 혁명(The Sexual Revolution)을 촉발하며 성적으로 왕성한 40대 이상의 모든 사람의 성생활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과거와는 다르게, 여성은 자신의 임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낳는다면 몇 명을 낳을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출산 시기까지 스스로 정하면서 자신의 삶을 훨씬 주도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뛰어들 기회도 얻게 되었다.

반면 남성의 삶은 피임약의 등장으로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 독립성이 커진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여성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는 이혼의 일상화를 가져왔다. 이혼율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최고조에 달했다.(이후 이혼율은 완만한 감소 추세이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이혼과 성평등을 둘러싼 새로운 대중적 인식이 형성되었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소비시장이 형성되었다. 나는 이들을 파워 우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들은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깨끗한 자신만의 집을 가지고 있고, 자녀에게는 이혼 전과 다름없는 사랑과 관심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사회생활과 운동, 삶의 균형, 그리고 충분한 수면을 사이에서 늘 시간의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피임약에 호르몬 성분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과도한 호르몬 성분 복용에 수면 부족과 업무 스트레스, 그리고 나쁜 식습관까지 더해져 90년대의 유방암 발병률이 증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파워 우먼들은 그들의 아버지들의 사업성공의 사례를 따라가고 싶었고, 그들의 추진력은 물론 건강하지 않은 생활방식까지 모방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파워 우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고, 심지어 생명까지 위협했다.

파워 우먼의 등장으로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여성들은 투자를 유치하고, 정상에 오르고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했다. 여성이라고 해서 24세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오랜 과거의 일이 되었다.

또한 80년대에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가 형성되었다. (남성들이 정장에 넥타이를 매는 것이 일반적인 것처럼) 어깨에 큰 패드가 들어간 파워 수트(Power Suit; 여성성보다는 실용성과 고상함이 강조된 여성 직장인 패션)를 입은 파워 우먼들을 회의실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그들의 자신감과 새로운 위치를 웅변하는 듯했다.


이 파워 우먼들은 자신이 낳은 딸들도 장차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려면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정과 직업을 동시에 조화시키려면 교육과 상당한 수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딸들 가운데 많은 수는 주말에는 이혼하여 따로 사는 아버지들과 보냈는데, 이 아버지들은 이혼 후 혼자 사는 데 상당히 서툰 사람들이었다. 이 아버지들은 대개 딸들이 스포츠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지지를 보내고, 격려하고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들의 코치이자 멘토 역할도 했다.

나는 이 소녀들이 어린 시절, 신축성 있는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망토를 걸친 남자들이 활개 치며 세상을 구해내는 토요일 아침 시간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80년대에 들면 이런 슈퍼 애니메이션에 여성도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 여성 주인공들도 몸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은근히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강한 여성 주인공들이 남자아이들과 모든 면에서 경쟁을 하는 소녀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머니 세대의 복장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드레스 코드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있었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경쟁한다고 해서 옷을 소년이나 남성처럼 입을 필요는 없었다. 애니메이션에서 슈퍼 히어로들은 성별과 상관없이 동등하게 묘사되고 있다. 나는 이런 소녀들이 또 다른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고, 그들을 슈퍼걸(Super Girl)이라고 이름 붙였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 슈퍼걸들은 성의 불평등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적어도 그들의 어머니 세대와는 다른 경험을 하며 자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남성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았고, 오히려 우대받으면서 자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슈퍼걸들은 여자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여성 공로상 같은 것을 받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큰물에서 놀면서 남성과 여성을 통틀어 최고가 되고 싶어 했다.

내가 이들을 염두에 두고 설정한 명제는 디자인과 브랜드 구축에 효과가 있었다. 나는 딱 한 명의 가상의 여성을 염두에 두고 그를 위한 브랜드와 디자인을 만들기도 했다, 이 가상의 여성의 이름은 오션(Ocean)이며, 생일은 9월 28일로, 나이는 32살로 설정했다. 1998년 당시의 설정이지만 그녀는 세월이 흘러도 하루도 더 늙거나 젊어지지 않는다. 나이키가 특정 프로스포츠의 남성 선수를 후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의 모든 오션을 후원하게 될 것이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사람이 제품에 열광하게 만들지 못하면, 세상의 다른 소비자도 제품에 열광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나이키나 룰루레몬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22세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모두 32세쯤 되었을 때 탄탄한 경력을 쌓고 눈부시게 건강한 신체를 갖는 꿈을 꾼다고 가정했다. 그녀는 사업상의 이유나 여가를 즐길 목적으로 여행을 하며, 콘도를 소유하고, 고양이를 키운다. 그들은 패션에서도 앞서가고 매우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릴 능력이 있다. 32세쯤 되었을 때, 원한다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계속해서 풀타임으로 일을 할 수도 있고, 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 둘 수도 있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2~3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42세의 여성은 32세 때의 자신의 모습을 여유 있고, 시간 많고, 엄마로서의 스트레스도 없고, 건강을 유지하기도 쉬웠던 시절이라 생각하며 그리워한다.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볼 때, 나의 이상적인 고객은 1998년 당시에는 32세가 아니었다. 1998년 당시 그녀는 24세였다. 그러니까 나는 이상적인 고객이 세상에 출현하기 8년 전부터 그녀를 상상한 것이고, 그리고 8년 후에 그녀가 될 그 사람을 위해서 디자인했다. 슈퍼걸은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였고, 나는 그들이 바쁜 삶 속에서도 완벽하게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왜 여성들은 우리 제품에 
3배를 더 지불할까?

버티컬 리테일을 통해서만 판매될 우리 제품의 가격은 단스킨 요가복보다 3배나 비쌌지만, 품질만큼은 최고일 것이다. 이는 스타벅스가 그들의 커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자부심과 비슷한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로는 품질이 더 좋다고 해서 세 배씩이나 비싼 돈을 지불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는 슈퍼걸들은 그 정도의 돈은 충분히 쓸 수 있는 전문직업인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필요하다면 옷을 구입하는 데 얼마든지 지갑을 열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룰루레몬의 제품을 한 5년 정도 사용한 여성이라면, 우리 옷을 구입한 것이 자신이 한 최고의 투자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많은 소득이 있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서, 유기농 식품을 찾고, 운동을 즐긴다. 그들은 건강했고, 대학 졸업 후 첫 출산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이전 세대보다 4~8년쯤 더 길었다. 그래서 임신으로 인해 체형이 변할 걱정은 접어 두고 옷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슈퍼걸들은 자신이 스타일을 오래 유지해 줄 고품질의 의류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양질의 재료로 만든 까다로운 제품에 기꺼이 돈을 썼다.

우리의 옷은 헬스클럽이나 요가 수련장 밖에서도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운동하기 전, 운동복을 입은 채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쇼핑도 하고, 커피를 마시러 갈 수도 있다. 룰루레몬이 나오기 전에는 여성들이 운동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했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들은 나의 이상적인 고객이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구상한 바를 현실에서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슈퍼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나는 이들 여성이 내 마음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는 디자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믿었지만, 앞서 경험했듯이 내가 목표로 한 시장에 정확하게 맞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나는 지금까지 패션을 주도하던 동부 해안의 패션업체들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높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지 못하고, 진정성을 바탕으로 구축된 브랜드가 아닌, 억지로 구축한 가짜 이미지와 평범한 품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패스트푸드 같은 브랜드의 생명력이 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여성을 위한 패션 상품인 만큼 이미지와 품질에 더하여 미적인 요소까지도 탁월해야 한다.


회사 이름

나는 애슬레티칼리 힙(Athletically Hip) 등 20여 가지의 회사 이름과 로고를 생각해 보았다. 그 가운데는 룰루레몬 애슬레티카(lululemon athletica)도 있었는데, 이 이름에는 나름 역사가 있다.

웨스트비치 시절 우리는 홈리스 스케이트보드(Homless Skateboards)라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인수했다. 우리는 2~3년 동안 홈리스 제품을 제작했고,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그곳에서도 상표 등록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의외의 장애물을 만났다. 홈hom(또는 옴므homme)이 프랑스어로 남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상치 않게 이상한 어감을 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기는 어려웠다.

당시는 스케이트보드가 이미 정점을 찍었고, 스노보드의 시대가 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유통업자들과 직원들에게 홈리스 스케이트보드는 이미 끝났다고 선언했다. 나는 더 이상 그 브랜드나 스케이트보드에 불필요한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인들에게는 그들 특유의 독특한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이 2년 동안 수입했던 제품의 공급이 중단되자, 일본 소비자들은 그 제품을 마치 희귀 아이템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고, 두 배의 가격으로 거래된 것이다. 그 해인 1990년에 나는 웨스트비치의 새로운 스노보드 의류샘플을 들고 일본인 바이어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대뜸 “윌슨 씨. 홈리스 제품은 안 가져 왔나요?”라고 물었다.
이에 나는 “이제 더 이상 홈리스 브랜드 제품을 만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듬해 일본에서는 스노보드 의류의 인기가 크게 높아졌고, 일본 바이어들은 내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윌슨 씨. 홈리스 제품은 없나요?” 나는 다시 똑같은 대답을 해야 했다. 당시 엔화 가치는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고, 일본 자본은 훗날 2018년에 중국인들이 했던 것처럼 북미주의 호텔과 부동산, 그리고 각종 브랜드를 거침없이 인수하고 있었다. 일본 바이어로부터 전화가 왔다.

홈리스 브랜드를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홈리스’ 상표를 내 이름으로 등록하지도 않았고, 웨스트비치도 공식적으로 이 브랜드를 소유하지도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별생각 없이 말도 안 되는 높은 가격을 불렀음에도 그들은 망설임 없이 그 가격을 받아들였다. 나는 정말 놀랐다. 내가 이제까지 벌어들인 돈 가운데 가장 쉽게 벌어들인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일본 바이어들이 왜 그렇게 홈리스라는 브랜드를 사들이고 싶어 했는지 가끔 생각해 보았다. 당시 일본 소비자들은 ‘진정한’ 미국 문화에 열광하고 있었고, 일본의 대형 무역회사들은 북미 혹은 서구에서 탄생한 브랜드에 큰 매력을 느낀 것 같았다.

여기에 더하여 이름의 음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홈리스라는 이름에는 알파벳 L’이 들어 있는데 일본어에는 그런 발음이 없기 때문에 이름에서 미국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는 것이다. L이 들어 있는 브랜드 이름에 일본 소비자들, 특히 20대 소비자들은 북미, 혹은 서구의 느낌을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이 점에 착안하여, 나는 이후에도 알파벳 L이 들어간 이름을 계속 떠올린 것이다. 내 노트에 그런 이름을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요가 의류 브랜드를 개발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노트에 적어 놓은 수많은 이름 가운데 하나가 룰루레몬이었다.

그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80년대, 디트로이트에서 생산된 레몬(Lemon)이라는 이름의 자동차가 소비자로부터 악평을 받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룰루레몬이라는 이름은 좀 위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레몬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신선함을 주는 어감이 있다. 일단 나는 포커스 그룹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나는 남성 중심의 운동복 회사나 브랜드보다는 부드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룰루레몬이라는 이름은 소문자 엘(l)로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또 포커스 그룹과 토론하면서 만든 많은 로고 스케치 초안 토대로 그래픽 아티스트인 스테판 베넷(Stephen Bennett)과 함께 디자인 작업을 했다. 그는 내 스케치를 토대로 알파벳 대문자 A 주변에 원을 그린 도안을 디자인했다. 이 디자인은 애슬레티칼리 힙이라는 이름을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다.

회사의 이름을 등록하려면 브랜드명에 브랜드의 성격을 설명하는 이름이 붙어야 한다. 즉 룰루레몬이라는 이름과 함께 회사의 성격을 설명하는 단어가 붙어야 한다. 가장 무난한 단어는 운동이라는 의미의 애슬레틱(Athletic)이었지만, 이 단어에는 왠지 무겁고 덜 위생적이기까지 한 남성용 스포츠 매장이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룰루레몬은 미국 서부해안의 기술과 유럽 특유의 패션 감각이 어우러진 제품이었기 때문에 애슬레틱에 소문자 에이(a)를 더 붙여 애슬레티카(Athletica)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약간 세련된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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