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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룰루레몬 스토리>

09. 에듀케이터와 앰배서더

by BOOKCAST 2022.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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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조해 내고, 사업 초기의 조각들을 제자리에 배치하고, 그 퍼즐들을 맞춰서 완전하고 독창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룰루레몬 애슬레티카는 처음부터 기존의 다른 브랜드 소매점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선례로 삼을 만한 모델이 없었다. 평생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총동원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매장의 표준이 될 만한 매장, 즉 콘셉트 매장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키칠라노의 웨스트4번가 말고는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웨스트비치의 밴쿠버 매장이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해변 바로 위였다. 나는 룰루레몬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등장한 우리 회사가 키칠라노,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랐다. 웨스트4번가라는 위치는 우리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룰루레몬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이 도시만의 독특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절반쯤은 히피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의 대학생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는 매장을 임차할 만한 충분한 자금도 없었고, 아직은 상품도 충분히 다양하게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대로변 매장 대신 뒷골목의 칙칙해 보이는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한 공간을 찾아냈다.

위치상으로는 웨스트4번가의 중앙이지만 외진 곳인 이곳을 최대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공간을 개방형 사무실과 물류창고를 겸한 전시매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나는 이 공간을 찾아온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디자인연구실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재봉실도 만들었다. 우리는 고객들이 디자인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시각적 경험을 하고, 그 특별한 경험에 대한 입소문을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능성 디자인

포커스 그룹에 참여한 여성들은 시간 활용에 매우 민감해했다. 나는 이 점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여성 고객이 매장에 들어와 옷을 한 벌 선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만일 그 시간에 그 여성이 직장에서 일한다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인 패션 매장과는 달리 외관이나 색상보다는 철저하게 기능성을 중심으로 매장을 설계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서 팬츠 월(Pants Wall : 룰루레몬 각종 팬츠를 원단과 활동 강도에 따라 매장 내 한쪽 벽면에 진열한 공간)은 바쁜 고객들이 각자의 운동 방식에 맞춰 기능적 요소, 크기, 그리고 색상을 한눈에 보면서 신속하게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매장의 크기, 위치, 층마다 배치할 에듀케이터의 수, 탈의실 수, 계산대 수, 그 밖의 매장의 다양한 요소와 가격, 품질까지 조화를 이루어 매장을 구성하는데 몰두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가치 있는 활동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룰루레몬 매장은 애플과 티파니에 이어 단위면적당 매출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로고

어렸을 때 나는 큰 로고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때는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주목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말수가 적고, 심리적으로 좀 위축되어 있던 어린 시절, 나는 로고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었을 때도, 내가 입은 옷의 로고가 크면 나를 멋진 사람으로 생각하며 주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서핑 보드나 스케이트보드, 그리고 스노보드 시장의 고객들은 14~18세의 소년들을 주 고객이므로 큼직한 로고가 필요 했다. 또 선수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그 옷들을 입히고 있었기 때문에, 로고가 쉽게 눈에 띄면 선수들을 따라 옷을 입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광고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자신감이 생기고 신체의 성장이 멈추면서 좋은 품질의 옷을 오래 입게 되면, 더 이상 큰 로고가 박힌 옷을 원하지 않게 된다. 몇 번 입다 버릴 티셔츠나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옷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의류 브랜드 자체가 내가 상상하는 품격 그 자체를 대변해 주기를 원했다.

교육 수준이 높고, 마케팅을 좀 아는 소비자라면, 거액을 지불하는 스폰서 계약의 본질을 꿰뚫어 볼 안목이 있다고 믿는다. 운동을 즐기는 세련된 소비자는 품질은 좋고, 로고는 작게 디자인된 제품을 찾는다. 롤루레몬이 처음 등장했을 때 옷에 붙거나 인쇄된 로고의 크기는 1인치였다. 그다음에는 0.5인치로 줄여서 옷의 등판에 붙였다. 다만 그 로고가 햇빛에 반사되도록 디자인했다.


에듀케이터

웨스트비치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을 무렵, 경쟁사들이 우리 주변으로 하나둘씩 몰려와 자리를 잡으면서 키칠라노는 세계적인 스포츠 의류 소매 타운이 되어버렸다. 나는 룰루레몬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다른 매장에서와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의류 매장처럼 판매직원이 고객들에게 다가가 고객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은 저것이라고, 더 싸고 좋은 제품은 이것이라고, 마지막 할인에 들어가 특별히 싸게 살 수 있는 제품이라고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초창기에는 고객에게 어떤 것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을 영업의 원칙으로 삼았다. 똑똑한 고객은 굳이 그런 말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말로 하는 패션 영업은 우리 고객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뿐이다. 오히려 고객을 기만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판매직원을 통해 우리 제품의 기능성을 고객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직원을 훈련할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었다. 또 매장에서 사용하는 명칭을 우리의 독특한 경영철학에 맞게 모두 바꾸고 싶었다. 나는 매장 직원을 ’판매사원‘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작정하고, 고객을 속이는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노보드 재킷을 만들 때도 나는 고객이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기능성을 가진 옷을 만들고 싶었다. 홀세일을 통해 제품을 공급 받는 매장에서는 판매직원들의 설명과 품질이 표시된 태그만으로는 우리가 만든 옷 특유의 기술력과 기능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반면 직영 매장에서는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기술적인 특징을 고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고객들은 가격이 높아도 그 타당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버티컬 리테일 영업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고, 매장 직원들은 고객을 교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아버지가 교사로 일하면서 적은 월급으로 고생하셨던 것을 생각하며, 나는 버티컬 리테일을 통해 에듀케이터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고 싶었다. 중간 상인의 마진을 없애면 직원들, 즉 에듀케이터들에게 다른 곳의 판매직원들보다 30%는 높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산상으로는 매니저급 에듀케이터들에게는 공립학교 교사의 두 배 정도의 급여를 지급할 수 있었다.


1호 매장

1999년 3월, 룰루레몬 애슬레티카의 첫 매장이 열렸다. 애매한 위치에 있는 건물의 2층에 있었던 덕분에 접근성은 떨어졌지만,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첫날 온 사람들은 포커스 그룹에 함께 한 사람들과 그들의 친구들, 그리고 요가 관련 종사자들 정도였다.

첫 매장은 콘셉트 매장의 기능도 했다. 장차 다른 곳에 또 다른 매장을 낸다면 이 매장을 표본으로 삼자는 생각이었다. 고객들과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생각이 깨어 있는 선수들에게 우리 제품의 장점 알려서 ‘앰배서더(Ambassador)’라고 부르는 홍보 대사로 삼자는 생각이었다.

사진: 룰루레몬 앰배서더
 

룰루레몬 의류에는 각각의 고유한 이름과 정체성을 부여했다. 나는 제품마다 이름을 붙이면 고객이 제품의 이면에 숨겨진 정신과 기술적 우월성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처음 만든 요가 팬츠 제품은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검은색 라이크라 소재의 플레어 핏 팬츠였다. 우리는 그것을 부기 팬츠(Boogie Pants)라고 이름을 지었다. (2017년 뉴욕의 MoMA; Museum of Modern Art는 ‘패션은 현대적인가Is Fashion Modern?’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패션쇼에서 부기 팬츠를 선보이면서 사회 변화의 촉매제라고 소개했다.)

그 특별한 디자인의 요가 팬츠는 여성의 엉덩이에 헐렁하게 걸쳐진 히피 스타일 벨트에서 영감을 받아, 약간의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 벨트를 장착한 그루브 팬츠(Groove Pants)로 발전되었다. 엉덩이가 움직이면 장착된 벨트도 움직인다. 처음에는 잘 팔리지 않았는데, 무릎까지 다리를 슬림하게 하고, 발목 부분을 좀 더 퍼지는 모습으로 디자인을 바꿨다. (이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행동에 옮긴 디자이너는 앞서 언급한 섀넌 그레이였다.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몇 년 후에 그녀와 결혼을 했다.)

벽은 산뜻한 색상의 페인트로 칠했고, 산이 바라보이는 전망은 좋았고, 뭔가 좋은 기운도 느껴졌지만, 웨스트4번가에 위치한 2층 매장은 내가 걱정한 대로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 문제였다. 직원들은 계단 바닥에도 샘플 의상을 걸어둘 이동식 옷걸이를 설치하고, 행인들을 상대로 제품에 대해 홍보하는 등 행인들의 발걸음을 매장으로 끌어 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다. 소수이지만, 직원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초창기부터 이윤을 남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고객들에게 필요한 운동과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데 집중했고, 고객이 실제로 무언가를 사느냐 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업무 모델의 성패는 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들이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데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이전처럼 자주 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지 않고, 매일 아침 사무실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더 오래, 더 건강하고, 더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룰루레몬의 원래 비전이었다. 내 마음속의 그림은 그렇게 간단했다.

그리고 일단 우리가 만든 옷을 한번이라도 입어보고 그 기능성을 이해하고 피부의 감촉을 느껴보게 되면, 누구나 단골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계산상으로는 하루에 구입 고객이 3~5명만 꾸준히 유지되면 손익분기점은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재고가 빨리 소진되지 않는 것은 문제였다. 규모의 경제라는 요소를 고려할 때 스타일별로 500~2,000벌씩 생산해야 하는데 그 생산비가 모두 재고로 묶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판매가 더 늘어나지 않으면 다양한 스타일을 제작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직영점 시스템의 문제였다. 성공하려면 더 많은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 왜 대부분의 기업이 직영점 방식의 영업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룰루레몬에 관한 입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매장 내 요가 수업

피오나 스탕은 론 잘코(Ron Zalko: 1970년대 후반 캐나다 밴쿠버에서 피트니스 사업을 개척한 인물 체육관)에서 여전히 요가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곳은 실내 온도가 좀 낮아서 파워 요가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불편했다. 나는 우리 매장에서 수업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아침과 저녁 시간에 매장 내의 옷걸이들을 한쪽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피오나가 요가를 가르칠 수 있게 했다. 엎질러진 방향제에서 나는 향내에 어우러진 땀 냄새는 룰루레몬 매장의 상징이 되었다.

다행히도 피오나는 그 지역의 유일한 요가 선생이었다. 요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우리 매장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요가 수련장에서 의류도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서 상품을 둘러보았다.

나는 여성들이 매장을 방문해 우리가 만든 요가 팬츠를 입어보면, 진심 어린 입소문이 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입소문은 룰루레몬을 확장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브랜드의 명성을 구축하는 길은 멀고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확산속도가 빨라져 수요와 생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리라 생각했다.

“칩은 모든 사람, 특히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을 매장으로 끌어드리는 방법을 기막히게 잘 알고 있었어요. 기발한 아이디어였어요.” 피오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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