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쏟아져 나왔지만 그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것 같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만났을 때는 특히 더 그랬다. 차라리 해외 다른 나라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서울에 있는 관계자들과 소통이라도 원활했을 텐데, 평양과 서울 간 소통은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아서 많은 관계자들이 애를 먹었다. 서울에서 평양의 화면이 전송돼 오기만을 기다리던 기자들도 갑갑하긴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평양에서 2박 3일간 회담과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시키는 건 더 어려웠을 거다. 실제 그랬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전화 한 통이면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이 평양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평양을 다녀온 관계자들에게 뒷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기간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남북 정상 내외의 ‘백두산 트레킹’일 것이다. ‘백두산 트레킹’은 처음부터 각본에 짜둔 일정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때 백두산에 오르고 싶다는 희망을 밝힌 바 있긴 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이 당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환영만찬을 할 때 건배사를 통해 “제가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는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이 이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바람을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 기간에 들어준 것이다.
다만 사전에 모든 계획을 짜고 계획대로 이행할 수 있는 일정은 아니었다. 회담 마지막 날의 계획이었으니, 그전에 진행된 다른 일정들이 모두 순조롭게 진행될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회담이 잘 안 풀렸는데 마지막 날 두 정상이 손잡고 백두산에 오르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모든 분위기가 맞아떨어져야 이행 가능한 일정이었던 거다. 날씨 또한 큰 변수였다. 백두산에 올라가려면 일단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비가 오거나 하는 등의 기상변수가 있으면 일정 수행이 불가능하다. 실제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하루 전날 ‘백두산’ 일정을 공개하면서 “구체적인 일정은 현재 협의 중”이라며 “일단 백두산 남쪽 정상인 장군봉까지는 올라갈 예정이고, 날씨가 좋으면 내려가는 길에 천지까지도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백두산까지 가는 방법도 평양에 간 청와대 관계자들과 북측 관계자들 간에 구체적인 조율이 필요했다. 현장에서 모든 조율이 이뤄져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백두산 일정을 하루 앞둔 19일 저녁, 문 대통령 내외는 저녁식사를 위해 평양 ‘대동강 수산물 식당’을 찾았다. 평양 시민들이 이용하는 일반 식당이었다. 당초 계획은 북측 실무진과 함께 방북한 경제인들을 식사에 초청할 계획이었는데, 문 대통령 내외가 식사 중이던 북한 주민들에게 ‘음식 맛있습니까’라고 말을 건네며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김 위원장 내외가 등장했다. 예정에 없던 김정은 위원장 내외의 합류로 식사자리는 정상 친교 자리가 됐다.
정상 간 저녁자리가 이어지는 동안, 남북 양측 관계자들은 얼마나 분주했을까. 실제 이 수산물 식당에서 실무자들이 논의한 사항 중 하나가 바로 백두산까지 가는 교통편 문제였다. 백두산을 가려면 삼지연 공항에 내려서 올라가야 하는데 삼지연 공항에는 문 대통령의 전용기 1호기가 착륙할 만한 공간이 안 나온다는 것이 문제였다. 활주로가 짧아서 보잉 747기종인 공군 1호기가 내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1호기보다 작은 공군 2호기를 타고 가야 했다.
그런데 2호기만 이용할 경우, 필요한 수행원들이 다 탈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기껏해야 70명 정도밖에 못 타는데 대통령이 한번 움직일 때 필요한 인원은 그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특히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는 기업인 등 문 대통령을 따라간 ‘특별수행원’들도 많았기 때문에 70여 명은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런 점을 북측 실무진들과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 김종천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다. 음주운전 문제로 오점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나긴 했지만 김 비서관은 북한과 협의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북측 관계자들과도 금세 친해졌다고 한다.
어쨌든 당시 급했던 사안은 백두산 천지 이동을 위한 비행기 한 대를 공수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식당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이 문제를 논의했다. 논의 끝에 김종천 전 비서관이 북측 관계자들에게 고려항공을 이용하는 방안을 꺼냈다. 김 비서관은 김여정 부부장에게 직접 다가가 문제를 논의했고, 20분 뒤 고려항공을 북측으로부터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김 비서관 특유의 친화력이 빛을 보았다고 알려진다. 아무튼, 그렇게 20분 만에 빌린 비행기 덕분에 특별수행원들도 고려항공을 타고 삼지연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당시, 남북 정상은 공개 석상 외에 비공개 자리에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게 관심 있게 물어본 분야 중 하나가 ‘의전’이었다고. 문 대통령에게 ‘해외 의전은 어떻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봤다고 한다. 또 이런 대화가 오갈 때는 북측 참모진에게 “저리 가 있으라”며 대화를 듣지 못하게 했다. 우리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북한의 의전이 아직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북한의 의전은 아직 ‘촌스럽다’라는 인식이 김 위원장에게도 있는 듯했다는 거다. 본인이 스위스 유학파인 만큼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훨씬 외국 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깨어 있고 보고 배운 것도 많았을 것이다. 또 해외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한다.
'사회 > <청와대 마지막 대통령, 5년의 외교 비하인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 북한 영변의 과학자들이 폭풍 눈물을 흘린 이유 (2) | 2022.06.30 |
---|---|
04. ‘하노이 결렬’ 초강수 둔 미국의 진짜 속내 (2) | 2022.06.29 |
02. 카톡으로 알려진 2차 남북 정상회담 (1) | 2022.06.27 |
01. 제가 잘하고 있는 거죠? 도보다리 브로맨스 (1) | 2022.06.24 |
00. <청와대 마지막 대통령, 5년의 외교 비하인드> 연재 예고 (1) | 2022.06.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