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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행복 합의>

02. 가치 : 무엇으로도 측량, 대체할 수 없는 절댓값

by BOOKCAST 2022.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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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약한 자들에게는 불가능이고, 겁 많은 자들에게는 미지이며, 용기 있는 자들에게는 기회이다. 
- 빅토르 위고


미혼인 20대 후반의 어느 초가을 날, 백화점에서 빨간색 닥스 트렌치코트를 샀다. 베이지와 레드 중에서 고민하다 더 화려해서 예쁘고 얼굴을 잘 살려줄 레드로 골랐다. 당시 새벽이면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딸에게 옷을 물려주는 엄마’ 이야기를 듣고 예측 불가한 미래의 내 딸에게 물려줄 요량으로 조금 센 금액을 주고 질렀던 것이다(천만다행으로 10년 이내에 딸이 두 명이나 태어났다!!). 얼마 전 엄마가 이제 당신은 입을 일 없다며 베이지 닥스 트렌치코트를 주셨다! 아,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대를 이은 물림! 엄마는 50대 중반에 사신 거라니 그땐 이미 20대 중반의 당신 딸이 존재해 있었다. 머지않은 날에 나에게 물려줄 생각을 분명히 하셨으리라. 나는 심지어 확률 0%의 미지의 모녀 인연에 대해서도 투자를 했는데 말이다! 내가 딸이고 나에게 딸이 있어 참 좋다.

엄마가 물려주신 옷이 많았다. 그런데 취향에 안 맞거나(그랬으면 소신껏 받지 않는 것이 현명했으련만) 막상 입고 나가려 하면 안 예쁘게 느껴지고 가산을 줄여가는 잦은 이사로 둘 데가 마땅찮아 많이 버렸다. 그걸 건건이 뒤늦게 아신 뒤로 “너는 좋은 걸 줘도 가치를 모른다.”라는 지청구를 적잖이 들어야 했다. 

요사이는 지하철 환승 중에 만나는 가판 옷 가게에서 5천 원, 만 원 하는 윗도리나 바지들을 손쉽게 잘도 산다. 꼭 필요한 거라서. 옷은 몸을 가리거나 보호하는 기능만 하면 되는 거라 판단해서. 다행히 여럿 중에서 좋은 것을 잘 고르는 귀한 안목을 지녔다, 나는. 그것도 전광석화와 같이 척척 잘도 고른다. 내 눈에 들어오는 사람, 내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귀하다. 

롱패딩이 유행일 때 특이한 것 좋아하는 기질에 따라 보라색 경량 패딩을 샀었다. 옷장에 바로바로 넣지 않고 밖에 빼놓고 있던 관리 소홀로 강아지가 몇 번 물어 그 횟수 이상의 구멍이 났다. 수선 집 갈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작은 구멍에서 쉼 없이 거위털이 빠져나와 처참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미련 없이 매정하게 옷 수거함에 내다 버렸다(일반 쓰레기 봉지에 버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어느 알뜰한 손에 들어가 재 탄생되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서 패딩의 주머니 쪽에 옷과 같은 색깔의 패치워크를 붙여 입은 사람을 보았다. 그도 작은 구멍을 그렇게 덮은 것이겠지. 마치 상흔을 덮은 훈장처럼 여겨졌다. 횡단보도 이쪽과 저쪽에서 걸어오며 만난 사이였다. 스치는 순간에 내 과오가 번뜩 떠오르며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후에도 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강아지의 흔적이 남은 물건이 몇 생겼다. 그래도 이제는 함부로 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약간의 손질을 가하면 오히려 더 정스러운 물건으로 변화하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외양적 결함보다 나와 그것이 함께한 시간과 인연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오래전, 시집간 딸에게 그녀가 태어나던 달의 달력을 사각 펜던트(3월의 16일 날짜에는 작은 큐빅이 박혀 서 빛이 났다)로 한 순금 10돈짜리 목걸이를 엄마가 맞춰 주셨다. 10돈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목이 무겁고 아팠다. 그래서 집에 고이 모셔두었던 시간이 오래, 그 중량을 감내할 수 있겠고 금붙이가 몸에 닿는 안정감을 느끼고자 기분 좋게 걸고 다닌 것은 그보다 짧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것이 내 목과 손을 부질없이 떠나갔다. 지금의 금값 고공행진을 보면 그때의 행동에 대해 망연자실해지지만 누가 미래를 알 것인가. 그 어떤 가치보다 당장의 생활이, 생계가 우선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  

최근 십수 년 간 외양을 치장하는 것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고 살았나 보다. 재정적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 한 것일 수도 있겠다. 맞다, 인정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물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눈을 떴기 때문일 수가 있다. 물질에서 고통이 있어서 다른 가치인 영혼의 영역에 눈을 돌렸을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풍요로웠다면 다른 것에 눈 돌릴 이유와 여유가 있었을까?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케다 가요코 구성)에 따르면 나는 마을에서 여덟 명 안에 드는 부자다.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들어 있고, 집 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고 있으므로.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외면할 수 없는, 내면에서 지속적으로 외쳐대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것을 꾸준히 물었다. 
하늘, 땅, 천지기운 천지마음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작은 나에서 벗어나 보다 큰 의식으로 나와 민족과 인류를 위한 홍익을 하며 살고 싶다. 나의 진아(眞我)를 간절히 찾아 발견하였고, 때때로 느끼고 만나고 있으며 이제 그 빛을 발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믿는다. 진정한 가치는 보이지 않는 것에 있고 나의 존재는 이 세상 무엇보다 가치롭다. 생명은 최고의 경이이고 나는 지금 살아 있다. 


먼 훗날, 측량도 대체도 불가했던 고유한 나의 가치는 세 아이들에게 붉은 마음(丹心) 한 조각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러나 미래는 멀고, 언제나 오늘 지금 반짝반짝 빛나기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어린 왕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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