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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폐의 세계사>

06. 공포스런 독재자의 광기

by BOOKCAST 202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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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재스민 혁명(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발생한 민주화 혁명. 튀니지의 국화(國花)인 재스민의
이름을 따서 재스민 혁명이라 불린다. 아랍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민중봉기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첫 사례로서 이집트, 시리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로 민주화운동이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의 영향으로 2011년 리비아 내전이 발발했다. 42년 동안 이어진 군사 독재로 카다피는 아랍 세계의 최장기 집권 독재자가 되었지만, 사실 그는 1969년 종교와 호국을 부르짖는 민족 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해 중하계급 장교와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었다. 시르테 주의 초라하지만 고도로 신격화된 카다피 기념관(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에서 당시의 열광적인 숭배를 느낄 수 있었다.

기념관에서는 카다피가 녹색 혁명 당시 행한 격앙된 연설 녹음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위대한 리비아 인민이여! 자유에 대한 갈망과 고귀한 희망을 실현하려면 개혁과 청렴을 요구하고 혁명과 저항을 부르짖으라. 당신들의 군대는 반동적이고 부패하고 낙후된 정권을 전복시켰고, 암흑의 시대는 과거로 사라졌다. 지금부터 전지전능한 알라의 이름으로 리비아는 자유민주공화국이 되었음을 선포한다.”

하지만 공화국이라는 최초의 이상은 중도에 부패해버렸고, 리비아 정부는 결국 군사 과두정권이 되었다. 카다피는 1980년대에 정식으로 지폐에 등장했다. 리비아 독립의 아버지 오마르 알 무크타르(Omar el Mukhtar)의 종적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카다피는 지폐에 인쇄된 자신의 초상화를 진보적이며 자유롭고, 마치 이웃집 아저씨처럼 민중과 함께하는 소탈한 모습으로 특별히 설정했다. 그러다 2002년 발행한 20디나르에서는 안하무인격인 자부심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지폐의 앞면은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공정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Great Man Made River: GMMR)’. 리비아 대수로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파에톤(Phaëton)이 태양신의 전차를 몰다가 추락했다는 이글거리는 대지, 바로 오늘날의 시리아에서 수단으로 이어져 에티오피아의 사하라 내륙까지 연장되는 관개 시설로, 우주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관개 시설은 17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불모지대에 시원한 물줄기를 가져다주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는 대략 250억 달러의 자금이 투입되었는데 이는 리비아가 유럽 각국과의 석유, 중공업 및 무기 교역을 통해 마련한 것이다. 뒷면은 1999년 아프리카 통일연맹 정상회의 때 카다피가 석유 수출에 힘입어 혁명 지도자이자 리더들의 형제로서 아프리카 지역의 리더를 자처하고 있는 모습이다.

카다피의 독재 정치 체제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위선자의 관용 및 거짓된 자유경제를 바탕으로 굳건히 세워진 것이었다. 2008년 카다피는 더욱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를 강하게 긍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일삼았다. 밑으로 늘어진 입언저리와 선글라스는 리비아 독재자의 교만과 난폭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3년 후 전 세계는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독재자의 말로를 지켜보았다.
 
김일성, 후세인, 카다피와 이디 아민(우간다의 전 대통령으로 스코틀랜드 왕이라고 자칭했음), 니아조프(투르크멘의 전 대통령), 모부투(지금은 사라진 자이르공화국의 전 대통령) 등의 독재자들은 항상 다양한 모습으로 지폐에 출현했다. 이들은 지폐를 통해 자신을 영리하게 드러내는 한편 교묘하게 숨겼다. 그들은 더 이상 국민들을 외부 세계와 단절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표면적이고 계획된 자유를 더 많이 부여해 허구의 민주주의에서 살아가게 만들었다.
 
독재자가 인쇄된 지폐는 항상 우리를 일깨운다. 세상은 이렇듯 불완전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가능성이 있고 이를 위해 분투할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2002년 리비아에서 발행한 1디나르.

 

 

2009년 신판 20디나르.

 

 

2008년의 50디나르. 세 지폐 모두 독재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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