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지폐의 세계사>

07. 속세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앙코르의 미소

by BOOKCAST 2020. 6. 5.
반응형

 


 



캄보디아

 

자욱한 안개 속 신비한 미소는 아스라한 저녁노을 아래 멀리 퍼 져나갔다. 마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잔잔한 물결이 한 차례씩 몰려와 넓은 하늘을 조용히 배회하는 듯했다.

앙코르의 고도는 반세기에 걸쳐 자신감과 긍지를 유지해왔다. 쇠퇴한 성벽, 황폐한 수로, 몰락한 사원이나 얼룩덜룩한 황궁보다 넝쿨 사이로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거대하고 장중한, 그리고 온화하면서도 풍부한 매력을 지닌 앙코르의 미소가 여행자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기둥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앙코르와트 사원의 긴 복도

 

미소 짓는 ‘자야바르만7세의 두상’ (파리 기메 미술관 소장)

 

바이욘에 있는 ‘앙코르의 미소’

 


1996년 여름, 나는 가난하지만 낙천적인 고대 왕국의 메마른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철없는 청춘이었던 나의 영혼을 뒤흔들고 깊은 충격을 주었다. 오랜 전쟁에서 막 벗어난 나라는 수줍은 자태로 나를 맞아주었다. 캄보디아는 신기하고도 낯선 외부 세계의 문화가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몽유병자 같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마치 이탈리아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가 묘사한 내면극의 등장인물처럼 유서 깊은 대지를 제멋대로 노닐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것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여행자들에게 앙코르의 미소라 불리는 유적이었다. 미소의 주인공은 자야바르만7(1125-1218), 크메르 제국의 가장 명성 높은 통치자였다. 그는 다란인드라바르만2세의 장자였지만 왕자의 난에 서 동생 야소바르만2세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무능했던 새로운 왕은 나랏일에 무지했고, 대규모의 민란과 쿠데타가 연이어 발생했 다. 결국 야소바르만2세는 집권 6년 만에 권세를 잡은 신하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1177년 참파국(현재의 베트남)의 군왕 자야 인드라바르만4세는 난을 틈타 크메르 제국을 침략해 당시 국왕이었던 트리부바나디티야바르만을 죽이고 수도와 황궁을 약탈했다. 이때 이미 50세가 넘었 던 자야바르만7세는 사람을 모아 참파국 군대에 대항했다. 4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쟁 끝에 자야바르만7세는 참파국 군대를 국 경 밖으로 몰아냈고, 이때부터 왕좌에 올라 이후 30여 년간 지속된 문치무공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문헌에 따르면 자야바르만7세는 9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기나긴 삶의 여정에서 그는 태평성대를 누리기도 했고, 망국의 슬픔과 무정한 살육도 겪었다. 그러나 크메르 제국은 결국 그의 손에서 흥성했고, 중세 최후의 찬란한 시대를 맞이했다.
 
어쩌면 그는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그저 눈을 감고 잠깐이라도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을 누리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자야바르만7세는 앙코르톰(Angkor Thom)을 증축했고, 부친과 모친을 기리기 위해 각각 프레아칸(Preah Khan)과 타프롬(Ta Prohm)을 건설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바이욘(Bayon)을 지었다. 바이욘은 대승불교 사원으로, 캄보디아 최후의 국가 사원이자 유일한 대승불교 사원이다.

총 길이가 1200미터에 달하는 바이욘의 부조에는 1 2000명의 인물이 생동적으로 묘사돼 있다. 중앙 사당에는 사면체 얼굴상 탑 49 (현재는 37대만 잔존)가 자리하고 있고, 주위의 문탑 5대를 합하면 총 54대의 사면체 얼굴상 탑이 세워져 있다. 자야바르만7세를 모델로 한 216개의 앙코르의 미소는 번잡한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다. 비록 크메르 제국은 멸망했지만 밀림 깊은 곳에 자리한 자야바르만7세의 미소는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캄보디아는 1887년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대(1887-1954)에 발행된 피아스터(Piastre) 지폐는 앙 코르의 미소를 새로운 주제로 삼았다. 1954년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뒤에는 화폐 단위를 리엘(Riel)로 변경했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도 여전히 앙코르의 미소를 지폐의 도안으로 애용했다.

1973년 발행된 1,000리엘은 조금 다르다. 지폐의 뒷면은 여전히 앙코르의 미소가 주제지만, 이는 모두에게 익숙한 바이욘이 아닌, 타솜(Ta Som)이라 불리는 다란인드라바르만2세의 묘다.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Henri Mouhot, 1860년 앙코르 와트를 발견해 유럽에 알린 인물.)가 앙코르 유적지에 들어갔을 때도 수많은 두상이 이처럼 넝쿨에 뒤엉킨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위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1932년 발행한 5피아스터. / 아래 - 1939년 발행된 20피아스터 / 두 지폐 모두 지배국과 현지의 문화 요소가 융합되어 있으며, 뒷면은 '앙코르의 미소'를 주제로 삼았다.

 




위 - 프랑스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후 캄보디아 왕국이19 55년 발행한 100리엘. / 아래 - 1962년 발행된 5리엘. / 식민지 시절 뒷면에 인쇄됐던 ‘앙코르의 미소’가 앞면으로 이동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