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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폐의 세계사>

09. 미소의 나라에 숨겨진 통치 신화

by BOOKCAST 2020.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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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현재 세계의 주권 국가는 유엔 회원국을 포함해, 주권 성명을 제창했지만 국제사회의 보편적 승인을 얻지 못한 국가까지 총 207개가 존재한다. 그중 ‘전제군주제’인 나라가 8 개국이고 영국, 일본, 태국 등 ‘입헌군주제’ 나라가 40개국이다. 이는 전 세계 국가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가는 민주주의 사상과의 충돌에 어떻게 대처할까? 우리는 지폐 디자인에서 그 힌트를 엿볼 수 있다.

1992년 5월 20일 태국은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전 세계에 방송했다. 짜끄리 왕조의 제9대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9세)이 옅은 갈색 양복 차림으로 소파에 엄숙히 앉아있고, 그 앞에 두 명의 정치인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모습이었다. 한 사람은 1년 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수상 자리에 오른 수찐다 끄라쁘라윤(Suchinda Kraprayoon)이었고, 또 한 사람은 민중을 이끌고 군사정부에 반대한 지도자이자 전 방콕시장 잠릉 스리무앙(Chamlong Srimuang)이었다.

3일 전 군사정부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태국 국민들은 가두시위를 벌이며 수찐다의 독단적인 만행을 규탄했다. 그 과정에서 군대가 출동해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는 총 52명이 사망하고 3500명이 체포되는 참혹한 폭력 사태로 번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과 학생 약 2만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세계의 매체들은 모두 이 상황에 긴밀한 관심을 갖고 태국이 어떻게 국면을 수습할 것인지 지켜보았다.

얼마 후 전 세계는 감동적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푸미폰 국왕은 수찐다와 잠릉을 궁으로 불러들인 다음 두 사람을 엄하게 꾸짖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리에 앉아 평화 회담을 나누고 국가의 사태를 안정시키라고 명했다. 결국 수찐다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반대파도 입장을 바꾸어 태국 사회는 평화를 되찾았다.

 

 

1955년 태국이 발행한 1바트 지폐. 1946년 즉위 후 라마9세는 변하지 않는 지폐의 주제가 되었다.

 


이는 푸미폰 국왕의 현명함과 지혜, 성인의 경지에 이른 ‘신왕’으로서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태국국민들의 마음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오랜 기간 태국은 가뭄, 장마, 기근, 역병, 충해 등 자연재해를 비롯해 군사적 충돌 혹은 정치적 위기가 닥쳐 국민이 고충에 빠질 때마다 국왕이 나서서 처리해주기를 바랐다. 국왕이 나서면 마치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다고 믿는 것 같았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 때문에 태국 국민은 어릴 때부터 ‘존왕(尊王)’의 개념을 깊이 지니고 성장한다.

‘존왕’의 근원은 역사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중세에 흥성했던 크메르 제국은 13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의 정세가 격변하고 과도한 소비에 기후 변화까지 겹쳐 쇠락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에이야와디 강변에 위치한 미얀마의 바간 왕조는 몽골의 침입으로 쇠약해졌다. 두 강대한 문명 사이에 끼어 있던 타이족은 이러한 형세를 이용해 궐기했고, 그 결과 북방에 라나 왕국과 남방에 수코타이 왕국이 세워졌다.

14세기 들어 수코타이 왕조의 세력은 약화되었고, 그 틈을 타 아유타야 왕국이 들어섰다. 아유타야 왕국은 1782년 짜끄리 왕조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 계속되었다(라나 왕국은 훗날 짜끄리 왕조에 의해 통합된다). 왕조가 어떻게 변하든 태국 사람들은 ‘자유’를 핵심적인 가치라 믿었다. ‘타이(Thai)’라는 말이 바로 ‘자유’를 의미한다.

19세기 들어 서양 제국주의의 손길이 뻗쳐오자 몽꿋 친왕(라마 4세)과 그의 아들 쭐랄롱꼰(훗날 라마5세)은 평생 저항했다. 그들은 태국의 현대화에 힘썼으며, 시암(태국의 옛 이름)이 열강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했다. 특히 라마5세는 태국인들의 마음속에 지금도 ‘데바라자(Devaraja, 신왕)’라는 신성한 법치자로 자리한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한 데다 힌두교와 상층부의 불교 신앙이 결합된 신권 사상 때문에 태국 국왕은 반인반신(Demigod)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우리는 태국 곳곳에서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모습과 왕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부적을 볼 수 있다.

‘데바라자’의 법적 정통성을 계승한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에 즉위해 2016년 10월 사망할 때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국가원수였다. 1946년 최초로 지폐에 등장한 이래 그는 줄곧 태국 지폐의 영원불변한 주제가 되고 있다. 지폐를 통해 전 국민에게 슬기와 지혜, 뛰어난 지도력을 지닌 국왕의 위대한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발행한 ‘라마9세 탄생 60주년 기념 지폐’의 뒷면에는 국왕이 만민의 추대를 받는 따스한 장면이 실려 있다.

1996년 발행한 ‘라마9세 즉위 50주년 기념 지폐’에는 푸미폰 국왕이 농지 수리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태국국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국왕의 모습이다.

 

1987년 발행한 액면가 60바트 ‘라마9세 탄생 60주년 기념 지폐’. 각 변의 길이가 15.9센티미터에 달하는 대형 정사각형 지폐다.

 

 

1996년 발행한 ‘라마9세 즉위 50주년 기념 지폐’

 


2007년 발행한 ‘라마9세 탄생 80주년 기념 지폐’를 통해서는 태국 정부가 자애로운 아버지로서의 푸미폰 국왕 이미지를 정성껏 만들어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지폐에는 출생에서 80세에 이르기까지 국왕의 삶의 여정이 담겨 있다.

2011년 발행한 ‘라마9세 탄생 84주년 기념 지폐’에는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사랑을 베푸는 푸미폰 국왕의 면모가 묘사되어 있다.

세계의 입헌군주제 국가와 태국의 차이점은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무한한 애정과 신권 숭배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태국 정부는 맹렬한 기세로 국민들에게 교조를 주입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왕실 모욕법’을 제정했다. 그럼으로써 범접할 수 없는 국왕의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고 국민이 왕실을 숭배하도록 격려했다. ‘미소의 나라’의 배후에는 사실 아직도 절대왕정의 통치 신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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