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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바람이 되어서라도 한 번만>

00. <바람이 되어서라도 한 번만> 연재 예고

by BOOKCAST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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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몸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버린 지 4년,
혼자 억누르던 이야기들을 세상으로 날려 보낸다

 

프롤로그

새가 노래한다

편안하다. 가슴 깊이 숨겨두었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혼자 오십 년을 넘게 그것들을 꼼짝 못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라도 하는 날이면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풀이 꺾여 다시 숨어버린 이야기들. 이제 가볍고 아름다운 날개를 달아 밝은 세상으로 날려 보내려 한다.

언제나처럼 따라다니던 엄마의 삶 그리고 그 일부가 되어버린 내 삶.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엄마가 아주 먼 길을 떠나고, 이젠 가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내 어깨를 두 팔로 살포시 보듬고 조용히 속삭여준다. 수고했다고, 이제 다 지난 과거라고. 울보는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다.

한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엄마. 당신도 다 버리고 갔는지 내 꿈에서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지겹고도 한스러웠던 이생, 그러고도 남을 만하다. 나도 당신을 조금씩 놓아주려 한다. 마음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제 당신 때문에 울지 않을 것이다. 깃털보다 가볍던 몸은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버린 지 4년. 가끔, 문득 허전함에 온몸의 세포들이 멈추어버릴 만큼 그립다.

사연 없는 삶은 없다. 그 사연을 스스로 묶어두지 말아야 한다. 내가 숨겨두었던 것들을 끄집어낸 이유도 그런 것이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조용히 눈을 맞추고 움츠린 어깨를 쓰다듬으며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 말해주고 싶다.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드라마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혼자 울어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스스로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한다. 난 쉰이 넘어서 일어날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이제 당당하게 내 속을 까뒤집어 보여주려 한다. 긴 밤, 잠 못 이루고 베개를 옆구리에 낀 채 이곳저곳에 몽롱한 몸을 맡기고 새우잠을 청하던 내가 아니다. 날개를 달고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감추기 바빴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모든 우울함을 가져가버렸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구름도 바람도 조금 전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잠시 후면 지난 시간에 불과하다. 지난 것은 그저 옛이야기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추억의 보따리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울부짖던 내 울음도 이제 희미해져간다.

오늘따라 멀리 숲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 조용하다. 간간이 삶에 뛰어든 누군가의 오토바이 소리만 따가운 햇살에 열을 받아 부르릉거린다. 난 지금껏 작은 새들의 지저귐도 운다고만 여겼다. 가벼운 날갯짓도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들렸을까? 노래를 부를 수도, 기쁨에 넘쳐 이리저리 날뛰며 환호를 만끽했을 수도 있는 것을. 이제 그들의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노랫소리로, 때로는 사랑을 속삭이는 달콤한 소리로 느껴진다. 창밖에서 쪼르르 한 마리의 새가 노래한다. 밝고 유쾌하다. 예전에 듣던 소리와는 다르다.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나도 살포시 웃는다. 같이 웃으니 웃음소리는 배가 되어 맑은 허공으로 퍼진다.

2022년 5월. 세상이 낮잠을 자는 듯 조용한 어느 날 오후에

 


 

저자 l 신윤

[한국산문]으로 등단하였다.(2018) 이지엘가족 복지 재단 가족사랑수기 우수상, [세명일보] 신춘문예 수필부 준당선, 제7회 금샘문학상 수필부 금상을 수상하였고, 2022년 부산문화재단 예술지원금 선정되었다. 동인지 『맑은 날 슈룹』, 『귀퉁이를 잡아 당기면』, 『오늘은 날이 참 따시다』, 『목요일의 오후』가 있다.
"새들은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절절히 사랑했던 엄마를 보내고서야 알았습니다. 이제 모든 생명의 지저귐이 경쾌하게 들립니다. 이 노랫소리를 많은 이들과 함께 들으며 삶 속을 거닐고 싶습니다."

 


 

[연재 목차]

01. 사랑의 온도 36.5도
02. 사랑의 티켓
03. 반피와 반피가 만나면
04. D라인의 여유
05. 비늘구름 뜨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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