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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바람이 되어서라도 한 번만>

03. 반피와 반피가 만나면

by BOOKCAST 2022.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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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말해준다. 분명 목적지가 코앞이었는데 잠깐 사이에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가끔 있는 일이라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다.

“남의 동네 왔으면 한 번쯤은 헤매 주는 것이 예의다, 예의. 내 말이 맞나? 아이가?”

남편의 천연덕스러움에 할 말이 없다.

“아, 예에. 맞습니다. 맞고요. 어련하시겠습니까.”

조금은 비꼬는 투로 답하고는 웃어넘긴다. 정말 우리는 답이 없다. 길을 몰라서도 헤매고, 둘이서 이야기하다 길을 놓치기도 한다. 아는 길도 그러기 일쑤니 우리는 남보다 30분 정도는 일찍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약속 시간을 얼추 맞추어 갈 수 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친구들은 어서 오라는 인사보다 길을 헤매고 오지 않았는지를 먼저 묻는다. 뽀로통한 내 모습에서 오늘도 역시나 하며 한바탕 웃는다.

5월의 캠퍼스. 등나무는 연초록빛 잎을 달고 연보라색 꽃송이를 늘어뜨리고 있다. 그 아래 시커먼 촌놈 여덟 명과 촌년 두 명이 모여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머리는 남잔지 여잔지 모르게 모두 귀를 덮고 있다. 제법 멋을 부렸지만, 아직 어설프다. 여자 둘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며 남자 여덟 명은 모두 고향이 다르다. 조금은 모자라는 개성들 열이 모여 ‘진로’라는 진취적인 이름 아래 새내기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다들 시골에서 용돈이 올라오는 날이면 회식 날이었다. 학교 앞 고갈비 고모 댁에 모여 우리의 상징 ‘진로(친구들이 즐겨 먹던 소주 이름이다.)’를 앞에 두고 인생살이를 논하고 유행하는 노래도 부르곤 했다.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토목과. 나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우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옆에서 항상 아홉 명의 친구들이 위로를 해주었다. 그렇게 몰려다니다 그중 한 명과 나는 스무 살에 남몰래 눈이 맞아버렸다.

노래 가사처럼 몰래 한 사랑은 감질이 났다. 학창 시절 선생님 몰래 교과서 밑에 만화책 두고 보던 재미. 주어진 문제를 풀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어수선한 수학 시간에 몰래 먹던 도시락 맛. 지루한 물리 시간에 과자 소리 내지 않고 입안에서 녹여 먹던 그 스릴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몰래 손가락 걸고 다니다 뿌리치는 짜릿함은 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가까이 앉지도 않았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눈을 맞췄다. 눈으로 사랑을 속삭였다.

나는 우리 과에서 유명 인사였다. 남자들 사이에 여자 둘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나를 믿는다나 어쩐다나. 한술 더 떠 지금 실컷 까불라며 앞에서 알짱거리기까지 했다. 그런 사랑을 해서일까 요즘 데이트 폭력이라는 기사가 나오면 안타깝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살아온 환경과 생각이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심에서 생기는 일이다.

사랑도 좀 아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그렇지 않고 자유롭다. 사귄다는 소리만 나오면 여행을 떠난다. 나도 딸과 아들이 있다. 조심시키려 말을 하면 다 저마다 생각이 있고, 알아서 한다며 꼰대 같은 소리 다른 곳에 가서는 하지 말라고 오히려 나더러 조심하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요즘엔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서기 전까진 모른다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 그렇게 숨기는 것과 지켜야 하는 것들이 쉽게 무너져버리고 나면 구속도 생기고 잘 보여야 하는 기대감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너무 편안한 사이가 되어버려 그런 안타까운 기사가 나오는 것이 아닌지 하는 것이 내 노파심이다.

우리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만나 요란한 사랑을 할 줄 몰랐다. 남친 군대에 보내고 울어본 경험도 없다. 외동아들이라 군대 면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다 나이를 먹고 말았다. 그냥 그렇게 서로 편한 날 결혼식 날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스물여섯 어린 나이에 가족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또 시아버지 돌아가신 후 울 엄마까지 모셨다. 그렇게 물 흐르듯 세월은 흘렀다.

가난하고 바쁜 사랑을 했던 탓일까, 아직도 같이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온피가 되지 못했다. 등나무꽃이 수줍게 피는 오월이면 내 순수했던 때가 떠오른다. 등나무가 두 개의 줄기를 서로 꼬아 뻗어가는 모습을 닮고 싶다. 혼자 서 있는 나무보다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연리지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혼자가 외로워 둘이라고 했다.

 


“아이고, 이 반피(반편이의 경상도 방언)들아, 반피, 반피 모여서 그만큼 살았으면 이제 온피가 될 때도 됐구마는, 언제쯤 될래?”

남의 동네에 대한 예의를 갖추느라 조금 헤매고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친구들은 오랜 세월을 같이해도 발전이 없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제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냐며 언제쯤 헤어질 계획인지 미리 알려 달란다.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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