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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바람이 되어서라도 한 번만>

01. 사랑의 온도 36.5도

by BOOKCAST 202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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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10분. 오늘도 어김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안다.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받았다. “밥은 먹었나? 난 국수 먹었다. 뭐 물 꺼고? 어여 먹어라.” 쩝쩝거리며 하는 말이다. 남편이다.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일주일 정도 출장을 가야 한단다.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들뜬 목소리가 탄로 날까 봐 깊이 숨을 한 번 쉬며 “하는 수 없지 않으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혼자 있기 싫어 투덜거리던 내가 남편을 위로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젠 혼자의 시간을 차츰 즐겨보려 한다. 언제나 함께 움직여 왔기에 홀로 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오후 비행기로 출장길에 오른 남편을 배웅하고 오는 길에 먼저 친구들에게 자유로움을 알렸다. 혼자된 첫날, 저녁으로 간단하게 햄버거를 먹고 영화를 봤다. 열 시. 나처럼 혼자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늦은 시간에도 거리는 활기찼다. 평소 같으면 난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임에도 밤거리는 밝았다. 낮보다 찬란한 빛을 발했고, 요란했다. 그 속에 나도 들떠 있었다.

다음 날,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빨리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니 즐거웠다. 시간도 여유를 부리며 더디게 갔다.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며 웃음 한 보따리 풀어헤치고 늦게 헤어졌다. 그렇게 며칠을 하고 싶은 대로 지냈다. 하루 종일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잠옷 바람으로 뒹굴기도 했다. 식사는 대충 냉장고에 얼려둔 밥을 녹이고 반찬은 김장 김치와 김으로 끼니를 때우는 수준이었다. 중간중간 밥을 먹었냐는 그의 전화에 혼자 무섭다며 엄살을 좀 떨어주기도 했다.

며칠이 지난 아침,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부엌에 갔다. 냉기가 흘렀다. 가스레인지 위엔 음식을 한 흔적이 없이 굳어 있었다. 몇 번을 데워 먹은 김치찌개 냄비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설거지통에도 빈 밥통 몇 개와 수저가 찬물에 오들거리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혼자 지낼 이 시간을 즐길 생각에 부엌은 애당초 머릿속에 없애버린 탓이다. 몸은 아직 반수면 상태로 잠옷을 입고 멍했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져 버린 사늘함에 한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자유로움이 허전함으로 변해갔다.

온기가 사라진 집은 빈집 같았다. 보일러는 쉬지 않고 소리를 내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추웠다. 36.5도의 체온이 혼자일 때 그 이하로 느껴짐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이제 그 추웠던 어린 시절의 겨울이 따뜻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단칸방에 옹기종기 서로 몸 비비며 살아온 탓에 방 안 공기는 더 포근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외풍에 방에 놓아둔 걸레가 얼어도 그리 춥지 않았다. 노곤하게 달아오른 아랫목에 발을 모으고 서로를 느끼며 잠들면 따뜻했다. 함께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대부분 외가에서 보냈다. 외할머니 방은 언제나 한기가 돌았다. 군불을 넉넉히 넣어 아랫목은 시커멓게 타 있어도 코가 시릴 정도로 썰렁했다. 옹기종기 화롯불에 모여 앉아 손을 쬐며 외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강생이들이 있으니 사람 냄새가 난다. 방이 훈훈해서 좋다.” 하셨다. 그 방을 들어설 때 도는 냉기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 혼자만의 공간을 꿈꾸던 나였기에 그 썰렁함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할머니의 해묵은 하소연으로 가볍게 넘겨버렸다.

혼자일 때 느끼는 한기에는 나이가 없는 모양이다.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혼자 생활하는 아들도 그랬다. 딸아이가 결혼하고 난 뒤부터 집 안이 썰렁해서 보일러 사용료가 장난 아니게 나온다고 투덜거린다. 그래서 가족이 필요하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열기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우연히 생기진 않은 모양이다. 혼자가 되어서야 동생은 누나의 빈자리에서 새어 나오는 냉기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하나 아니면 둘인 요즘 아이들.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열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지 모르고 지낼 것이다. 마음이 힘들고 몸이 아플 때 느끼는 오한이 따뜻한 말 한마디에 누그러지는 여유도 마찬가지다. 혼자의 시간을 꿈꾸던 나도 쉰다섯이 되어서야 느꼈다. 외할머니 방이 왜 그리 추웠는지, 혼자 있을 때의 거실과 그 공간을 채우는 누군가와 함께일 때 거실의 온도 차가 얼마나 큰지를 말이다.


드디어 남편이 오는 날이다. 온기가 사라진 집 안의 냉기를 쫓아내려 아침부터 분주해졌다. 햇살을 받으려 동쪽으로 난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가라앉은 부엌의 온도도 높였다.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올리고 압력밥솥엔 밥을 안쳤다. 굳어 있던 가스 불이 칙칙 거리더니 금세 활기를 찾았다. 일주일 만에 자기의 일에 충실한 밥솥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삑삑거렸다. 36.5도의 온도로 예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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