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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바람이 되어서라도 한 번만>

04. D라인의 여유

by BOOKCAST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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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천을 걸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모두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그들 속에 스며들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걷다 물고기가 있으면 한참 동안 멍하니 보기도 하고, 한가로이 서 있는 왜가리의 눈길을 따라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며 시간 속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 아름다운 광경에 미소까지 머금고 눈길을 빼앗겼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유모차를 밀며 걷는 젊은 엄마였다. 비가 내려도 개의치 않는 여유로운 걸음이었다.
나도 유모차와 속도를 맞추며 한참을 따라갔다. 아기 엄마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놀랬죠?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 저기서부터 뒤따라왔어요.”
겸연쩍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우산을 받쳐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에고, 비가 와서 어쩌노. 아기가 놀라겠어요.”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유모차 앞부분 투명 비닐에 모여서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빗방울을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 번 생긋 웃어 주었다.
“어차피 젖을 것 같아 저기 다리 밑까지만 가려고요. 그곳에서 비 그치면 돌아가려고 그냥 걷고 있었어요.”

아기 엄마는 내 궁금증을 짐작한 듯 먼저 답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지하철 한 구간을 함께 걸었다. 마치 처음부터 동행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첫째 아이 임신 때 몸의 변화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날씬하던 몸매는 뚱뚱한 볼품없는 몸으로 변했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화난 복어같이 느껴졌단다. 한동안 그런 모습이 무서워 거울도 보지 않았고,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으며 몸무게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불어 버렸단다. 마침내 심한 우울증에 임신중독증까지 걸려 그 당시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아기가 자신을 망가트린 것 같아 정이 가지 않았고, 미운 마음마저 들어 결국 젖 한 번 물리지 않고 키웠다며 자책하는 어조로 말했다.

병원의 도움으로 건강을 조금씩 되찾아 가고 있단다. 그사이 둘째가 생겼다며 쑥스러워했다. 첫째 아이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둘째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 중이란다. 병원에서 일러준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 표현하기, 규칙적인 수면 습관 유지하기, 다른 산모들과 유대감 느끼기’ 등의 방법도 중요했고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이더란다. 이제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햇볕을 받으며 걷는 산책이 기분 전환에 효과적이라 하루에 20~30분씩 걷는단다.

인도의 시인 카비르의 시 「그대 안의 꽃」에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 말라. 그대 몸 안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연꽃이 한 송이에 수천 개의 꽃씨를 안고 있듯 임산부는 고귀한 생명을 잉태한 위대한 사람이다. 몸의 선은 비록 볼품없는 D라인이지만 그 몸 안엔 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꽃송이가 있다. 짧은 인고 뒤에 찾아올 행복은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다. 두고두고 내 이름 석 자 기억해 줄 나의 분신을 품고 있으니 참으로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심으로 그 젊은 엄마가 아름다워 보였다.

난 1991년에 첫아이를 가졌다. 그해 부산에는 태풍 글래디스의 영향으로 하루에 439mm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산사태로 인명 피해와 많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토목 설계를 하던 나는 그 현장을 다니느라 바빴다. 하루에 무너진 흙더미를 몇 군데나 오르내려도 힘들지 않았다. 혼자가 아닌 뱃속에 꼬물거리는 아기와 동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가끔 지쳐 있으면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발길질하며 위로했다. 그렇게 우리는 교감을 주고받았다.

그때가 가장 신기하고 행복했다. 배 속 아이가 영향을 받을까 봐 매사 조심해서 행동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 무단으로 건너다니던 길도 한참을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름다운 것만 보려 노력했고, 좋은 말만 들으려 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배 속 아이에게 많은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D라인의 여자들은 겉과 속이 같이 아름답게 성숙해져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엄마’라는 멋진 이름을 갖기 위한 준비 기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여자들은 참 이상하죠? 산통을 느낄 때면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요 꼬물거리는 천사를 보면 금세 또 잊어버리니 말이에요.”

그 행복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그녀의 미소와 굴러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아기의 미소가 닮았다.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았다. 다행히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다. 언제 그칠지 모를 빗속에 무작정 둘 수가 없어 함께 걸었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라 멋진 하루였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가벼워 보였다.

돌아오는 길, 객지에 있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나처럼 그리움이 촉촉하게 배어 있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빗소리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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