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에세이/<저 산후 우울증인 것 같아요>

01. 우리가 우울한 이유: ‘자기불일치 이론’

by BOOKCAST 2022. 8. 10.
반응형

 


 

엄마 되기를 책으로 공부하다

심리학에서 우울을 설명하는 이론 중 ‘자기불일치 이론’이 있습니다. 실제 자기와 당위적(의무적) 자기의 차이가 크면 불안이,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차이가 크면 우울함이 생긴다는 이론입니다. 저는 실제로 어떤 육아를 하게 될지 객관적 인식과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이상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우울과 불안이 예고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균열은 임신 기간에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임신하며 사회활동이 줄고 집 안에서 핸드폰으로 타인의 SNS를 훑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부른 배를 비스듬히 누이고 그것들을 보며 저의 순간을 초라하게 여겼고, 또 어떤 날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해 남편에게 “기저귀는 어떻게 가는 거지? 나 하나도 모르는데…” 라며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쯤 되면 눈치챈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저는 또래 중 유난히 세상 물정을 모르고 이상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성향도 현실적이기보다 직관적이며, 직접 해내며 그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기보다 안락하게 의존하며 지내온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안락함을 누리면서도 또 그에 대한 반발심에 갈등을 겪기도 했지요. 대학생 때는 뭣 모르고 덜컥 다단계 사업에 뛰어들거나, 도를 아시느냐 묻는 집단을 따라가 한복을 입고 절을 할 정도로 순진하다고, 아니 어리숙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육아에는 정말 무지했습니다. 형제자매가 아이를 낳아 가까이에서 육아를 지켜본 것도 아니었고, 지인의 경험담을 듣는다고 들었지만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흘려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누군가의 육아를 보고듣는다고 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게 엄마가 되는 과정이었겠지만요. 출산 경험부터도 그렇습니다. 《굴욕 없는 출산》에서 저자는 출산은 몸소 겪기 전까지는 절대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라며 ‘출산 이후에야 출산을 알게 된다’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이상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가 있습니다.
‘나는 내 엄마와 다르게 아이를 키울 거야’라는 부모를 향한 원망과 서운함에서 비롯한 다정하고 수용적인 자기, ‘나는 공부를 못해 힘들었으니 아이는 잘 가르쳐서 성공시킬 거야’라는 이상적 자기, ‘엄마라면 강해야 하고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해’라는 당위적 자기 등. 또한,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 사회와 문화가 ‘엄마’라는 역할 자체에 수많은 세월에 걸쳐 투영한 이상적이고 당위적인 기준도 있습니다. 그냥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엄마’의 역할이 이상화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엄마가! 엄마라는 사람이”라는 말부터 “엄마도 사람인데”라는 말까지 엄마는 평범한 사람 이상의 다른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레이철 시먼스(Rachel Simmons)는 ‘여성들은 특히나 모든 것에 있어 완벽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기준 속에 자란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더불어 늘 뛰어나야 한다고 압박받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으며,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비판받거나 실패 가능성이 큰일을 피하면서 성과 목표를 추구하다 보면 우울, 불안, 무력감이 생길 수 있으며, 성과 목표를 달성해도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더 불안하고, 타인에게 완벽하게 보이기 위한 치열함만 남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완벽주의 성향의 엄마라면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데에 대한 불안감에 휴식과 이완이 필요한 시기를 긴장과 경계 상태로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거대한 이상적 자기 그리고 당위적 자기와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만들어낸 것 이상으로, 거대하게 문화와 역사가 형성해 온 이상적이고 당위적인 엄마의 이미지와 함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