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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저 산후 우울증인 것 같아요>

04. 대상관계 이론으로 바라보는 부모와 자녀 사이

by BOOKCAST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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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충분한 엄마 노릇이라고?

결혼 전 인간의 심리적 어려움과 성장을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심리치료 이론 중 좋아했던 것은 ‘대상관계 이론’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심리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프로이트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개인의 내적 욕동에 관심을 가졌던 프로이트 이론을 ‘한 사람 심리학’이라고 부른다면, 대상관계 이론은 ‘두 사람 심리학’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닌 관계 욕구를 기본으로 가정하고, 유아가 태어난 이후 주 양육자와 관계를 맺으며 세상에 대한 이미지, 관계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 나간다는 이론입니다. 제가 이 이론을 좋아한 이유는 유아의 출생 시점부터 내면에서 일어나는 단계적 변화와 관계 속에서의 경험을 매우 섬세하고 신비롭게 그려내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많은 점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양육자 역할의 비중을 높게 두고 있기에 출산 이후에는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이론의 대부분이 결국은 제가 해야 하고, 제가 주의해야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론에서는 말합니다. ‘이만하면 충분한 엄마 노릇(good enough mothering)’이라고. 책에 기술된 그 ‘이만하면’이란, 충분히 아이를 먹이고 재우며, 불안할 때 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정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충분히 먹였는지 알 수 없고, 졸려 하는데 잘 안 재워지고, 아이가 불안할 때 위로와 공감보단 내가 먼저 불안해서 위로가 필요한 초보 엄마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를 못 해주면 불충분한 건가? 이만하면 괜찮은 정도도 안 되는 건가? 그러면 결국 ‘bad’ 혹은 ‘not good enough’인 건가’?


이후 영유아 발달에 관한 한 강의에서 강사님께 질문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한’에서 이만하면에 대한 지표가 있으면 좋겠다고, 어느 정도면 내가 잘하고 있다고 알 수 있느냐고요. 그러자 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를 생존하게 하고, 아이가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고, 아이가 힘들 때 힘들다고 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 아닐까요? 그리고 아기를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는 마음속에, 그래도 ‘너무 밉다’보다는 ‘예쁘다’라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기본적으로 사랑한다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한창 육아로 남편과 갈등하던 당시에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섬세하게 반응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버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발견한 아래의 글귀에서 이에 대한 시원함과 느꼈습니다.

전통적인 가족에서 투정은 아버지와 있을 때보다 어머니와 있을 때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데, 아마도 예전의 공생 파트너의 거부가 훨씬 더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가끔 이런 상황을 오해해서 그들이 아내보다 아이를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오해는 부모 간의 불화를 낳을 수 있다.
_조지 해밀턴, 《대상관계 이론의 실제, 자기와 타자》 중에서

대상관계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엄마인지 나쁜 엄마인지 구분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창기 인간은 나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해로운지 구분하는 일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살 만한 환경이라고 파악되면, 한 대상에게도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도 있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이것이 정상 발달입니다. 나 자신에게도 그것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나는 전적으로 좋기만 한 엄마도 아니고, 전적으로 나쁘기만 한 엄마도 될 수 없다. 내 안에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강한 면과 약한 면이 공존한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나까지 끌어안아야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분석심리학과도 일치하는 맥락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그릇을 키우고, 아이들을 안고 담을 수 있게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릇을 키우려다 보니 성장통이 수반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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