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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저 산후 우울증인 것 같아요>

08. 경력 단절, 엄마라면 감수해야 하나요?

by BOOKCAST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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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잃었나

임신하자마자 직장에서 재계약이 배제됩니다. 연 단위 계약직이었기에 육아 휴직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재계약에서 배제된 일은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알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돌아갈 곳도, 나를 기다리는 곳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잃는 기분입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 상담 공부를 시작해서 좋겠어. 젊으니까 교수도 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은 기대감과 함께 부담감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상담사로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을 취득하려면 수백 시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은 대부분 주말이나 저녁에 이루어지고 한 번에 장시간 진행됩니다. 주말에 아이를 맡기고 공부하러 간다? 최소한 10년 후에 가능할 것처럼 요원하게 느껴집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었던 저는 내가 도달할 수 있는 목표,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최댓값마저 잃은 기분입니다. 내가 육아에 매진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경력을 쌓고, 더 배우고 승진할 거로 생각하면 나는 그만큼까지는 성장할 수 없을 거라고 체념하게 됩니다. 존재감마저 잃을 것 같아 불안이 요동칩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고,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 과거의 제가 쉽게 이야기하고 판단했던 것들 또한 파도를 만난 모래성처럼 스르르 무너졌습니다. ‘이런 삶들이 있었다고’ 도처에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고도 보지 못했던 충격, 친구라는 이름으로 또는 상담사라는 이름으로 엄마의 역할을 판단하고 조언했던 것들이 후회되고 부끄러워집니다. 그간 말하던 것들을 주저함과 후퇴 없이는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정체성의 상실과 혼란에 더불어, 가치관의 혼란까지 맞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가’의 판단 기준이 상실된 상태. 양수와 함께 아이가 빠져나와도 여전히 힘없이 늘어져 있던 배처럼, 내 안은 새로운 가치관과 판단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덩그러니 빈 상태로 남았습니다.

많은 것을 잃었다는 느낌에 압도된 산모에게, 그 누가 울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네가 한 선택이니 감내하라는 말 이전에, 삶에서 각자가 겪은 상실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소중하고 보석 같은 아기는 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다시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고,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하지만, 잃은 것은 잃은 것이니까요. 눈물이 나는 것은 나는 것이니까요.

윌리엄 워든은 ‘이 상실의 현실에 대한 수용은 인지적 수용뿐 아니라 정서적 수용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시간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합니다. 머리로는 ‘이제 엄마가 되었으니 감내할 수 있어. 몰랐던 거 아니잖아. 남들 다 이렇게 키워’ 하며 되뇌면서도 정서적 수용은 오랜 시간 고통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변에서는 알 수 없이 치솟는 분노와 박탈감, 억울함, 그리움, 슬픔, 불안감, 허망함과 같은 감정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아빠라고 왜 잃은 게 없겠습니까? 육아를 공동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아내를 배려하는 남편이라면, 많은 것을 잃습니다. 요즘은 많은 남성이 아내와 함께 육아하기를 최우선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역시나 주말 늦잠과 휴식, 퇴근길에 술 한잔하는 자유를 잃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겪는 임신과 출산으로 몸의 변화와 체형의 변화, 신체 기능의 쇠퇴, 초기 양육으로 인한 경력의 단절 등을 겪으며 더 많은 것을 잃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성이 더 많이 잃느냐, 남성이 더 많이 잃느냐를 비교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잃은 것들, 함께 잃은 것들을 애도하고 서로가 채워 줄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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